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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우리 사회에는 ‘사’자 들어가는 직업이 사회적으로 선망의 대상이 된 적이 있다. 세칭 ‘판사’, ‘변호사’, ‘의사’ 등 일군의 ‘사’자 들어가는 직업을 두고 하는 말이다.
위에 분류한 직업의 이른바 ‘사’자라는 것이 한글로는 발음이 모두 똑같지만, 한자로는 그 뜻과 의미가 전혀 다르다.
위의 직업들을 한자로 전환하여 표기하면 ‘판사(判事)’, ‘변호사(辯護士)’, ‘의사(醫師)’가 되어 ‘사(事)’、‘사(士)’、‘사(師)’의 군으로 나뉘게 된다.
첫째, 일 ‘사(事)’자로 분류되는 일련의 직업군은 판사(判事), 검사(檢事), 도지사(道知事) 등으로, 이때의 ‘사(事)’자의 의미는 ‘벼슬’에 방점이 있다. 신분과 지위를 나타내는 관직명이다.
‘事’자는 ‘일’이나 ‘직업’, ‘사업’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갑골문에는 ‘使’(부릴 사)자, ‘史’(역사 사)자, ‘事’(일 사)자, ‘吏’(관리 리) 자가 모두 같은 글자였다. ‘事’자는 그중에 정부 관료인 ‘사관’을 뜻했다. 사관은 신에게 지내는 제사를 주관했기 때문에 ‘事’자는 제를 지내고 점을 치는 주술 도구를 손에 쥔 모습으로 그려졌다. 허신(許愼)의 『설문해자(說文解字)』에 ‘史’는 ‘일을 기록하는 사람’, ‘吏’는 ‘사람을 다스리는 자’, ‘事’는 ‘직책’으로 구분하고 있다.
둘째, 선비 ‘사(士)’자로 분류되는 일련의 직업군은 변호사(辯護士), 세무사(稅務士), 변리사(辨理士) 등으로, 이때의 ‘사(士)’자의 의미는 ‘자격’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士’자는 ‘선비’나 ‘관리’, ‘사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갑골문의 ‘士’자는 허리춤에 차고 다니던 고대 무기의 일종인 도끼를 그린 것이다. 지금은 학문을 닦는 사람을 ‘선비’라고 하지만 고대에는 무관(武官)을 뜻했다. 후대에 와서 ‘士’자는 학식은 있으나 벼슬을 하지 않은 사람을 이르는 말이 되었다.
셋째, 스승 ‘사(師)’자로 분류되는 일련의 직업군은 교사(敎師), 목사(牧師), 의사(醫師) 등으로, 이때의 ‘사(師)’자의 의미는 ‘존경’의 의미를 내재하고 있다.
‘師’자는 ‘스승’이나 군사(軍士), 군대(軍隊)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師’자는 ‘阜’(언덕 부)와 ‘帀’(두를 잡)이 결합한 모습이다. ‘帀’자는 ‘빙 두르다’라는 뜻을 표현한 모양이다. 그러므로 ‘師’자는 언덕을 빙 두른 모습을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師’자는 본래 군대조직을 뜻하기 위해 만든 글자로 고대에는 약 2,500명의 병력을 일컫는 말이었다. 군인의 수가 언덕 하나를 빙 두를 정도의 규모라는 뜻이었다. 후대에 와서 가르침을 얻기 위해 스승의 주변에 제자들이 빙 둘러 앉아있는 것에 빗대어 ‘스승’이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그러므로 사람의 모범이 되어 남을 이끄는 사람 즉 ‘선생’이라는 뜻을 갖게 된 것이다.
판사와 변호사에게는 아무도 판사 선생님, 변호사 선생님이라고 부르지 않지만, 의사에게 만큼은 반드시 ‘의사 선생님’이라고 호칭을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서 교사(敎師), 목사(牧使), 의사(醫師) 등의 ‘사(師)’자 직업을 가진 사람에게는 존경을 표해야 한다는 암묵적 동의가 사회 전반에 형성되었을까?
그것은 ‘사(師)’자를 가진 직업이 생명이나 정신적 가치를 담당하는 ‘스승’으로서의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師)’자의 직업을 가진 사람은 반드시 두 가지 의무를 져야 한다.
첫째는 ‘지식 전수’의 의무요, 둘째는 ‘제자 양육’의 의무이다.
동서고금의 4대 성인 가운데 공자 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누구도 책 한 권 기록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만세의 사표요, 위대한 성인으로서 추앙받을 수 있었던 공통점은 무엇일까?
그것은 곧 삶의 현장에서의 학습과 체험을 바탕으로 한 ‘제자 양육’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공자의 공문십철(孔門十哲)과 예수의 12사도, 석가의 십대제자, 소크라테스의 일곱 제자 등으로 대표되는 일군의 제자뿐만이 아니라 2천 년이 지난 지금도 그들의 제자를 자처하는 문도들이 도처에 넘쳐난다. 역설적이지만 그들은 제자로 말미암아 더욱 위대한 스승이 되고 말았다.
선생이 ‘지식소매상’으로 전락하고 학생은 ‘지식소비자’가 되어, 더 이상 ‘스승’도 ‘제자’도 존재하지 않는 이 불온한 시대에 굳이 스승만을 탓할 일은 아니지만, 여전히 ‘사(師)’자 직업을 가진 사람에게 요구되는 덕목은 ‘필드에 대한 존경심’과 ‘제자 양육’이다. 이 두 가지 조건이 모두 충족되지 않는다면 ‘사(師)’는 언제든 ‘사(似)’로 변질 될 수 있다.
일찍이 김구 선생은 “열 개의 경찰서를 짓는 것보다 하나의 교회를 세우는 것이 낫다.”라고 하였는데, 모름지기 그것은 범죄를 막는 일보다 사람을 교화하는 일이 우선이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아마 지금 선생께서 살아계셨다면 검찰이나 언론 등의 권력기관 적폐보다 ‘종교계’와 ‘교육계’의 적폐를 더욱 우선시하였을지도 모르겠다.
/박황희 고전번역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