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대 l 축소

상 - 賞

고전번역학자 박황희 칼럼
누군가에게 상을 받는다는 것은 언제나 즐거운 일이다. 어제 우리 집 마님께서 ‘시장상’을 받아오셨다. ‘장관상’을 이미 세 번이나 받았는데 이번엔 ‘시장상’까지 받았으니 상복이 참 많은 사람이다.

300쪽이 넘는 보고서와 발전 계획 제안서를 작성하느라 밤이 늦도록 동분서주할 때 마님께 나는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하였다. 오히려 ‘나라를 혼자서 지킬 것이냐’며 회사 일은 회사에서만 하라고 역정을 내었었다.

물론 마님의 성정이 상을 받기 위해 일할 사람이 아니라는 것은 내가 아주 잘 알고 있다. 상을 받고도 가족에게조차 말해 본 적이 없거나 대개는 지나고 나서 우연한 기회에 알게 될 뿐이다. 아마 장인어른의 성정을 닮아서 그런 것 같다.

장인어른께서는 젊은 날 6.25 참전용사로서 ‘화랑무공훈장’을 받으셨다. 훗날 국가보훈처에서 ‘6.25 참전 국가유공자’로 지정하여 각종 서훈을 내렸지만, 장인께서는 끝내 수락을 거절하셨다. ‘동족’끼리 싸운 것은 부끄러운 일이지 자랑스러운 일이 아니어서 결코 명예가 될 수 없다는 신념에서이다.

어쨌거나 그러고 보니 나는 귀가 순해질 나이가 되도록 세상을 살면서 누구에게 상을 받아본 적이 거의 없는 것 같다. 상이라곤 고등학교 때 ‘반공 웅변 글짓기대회’에서 얼떨결에 교육감상 한 번 받은 것이 전부였던 것 같다.

그러나 곰곰 생각해보니 내가 받은 상이 뜻밖에 제법 많다는 것을 간과하고 있었다. 대체로 소략하여 친서민적이긴 하지만 내겐 매우 귀중한 상임에는 틀림이 없다. 행여 자랑거리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대략 이런 상들이다.

집에서 아침저녁으로 받는 ‘밥상’, 단골 주막에서 수시로 받는 ‘술상’. 지갑 분실하여 몰래 받은 ‘외상’, 군대에서 받은 ‘동상’, 교회에서 받은 ‘밉상’, 간혹 지인들로부터 받는 부고장의 ‘초상’, 요즘도 습관처럼 받는 설교 중에 ‘명상’, 시도 때도 없이 받는 독서 중에 ‘몽상’....걍, 뭐~ 대략 이런 정도이다.

어차피 이제는 남들에게 ‘상’을 받고 살기는 틀린 듯하니 ‘상’을 주는 인생이 되어 사는 것도 괜찮을 듯싶다. 올 겨울엔 주변의 지인들에게라도 상을 후하게 베풀어 보자.

/박황희 고전번역학자

이전화면맨위로

확대 l 축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