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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생각한다(1)

전 駐 노르웨이대사, LA총영사 최병효 칼럼
1. 절대적 시간에서 상대적 시간으로

코로나19 이후 공황 상태에 빠진 인류는 새로운 형태의 전쟁을 치르고 있다. 1918-1920년도의 스페인 독감 등 과거 펜데믹은 특정 대륙이나 특정 국가들에 국한된 것이었디. 그러나 20세기 후반 이후 인류역사상 세계화가 최고도로 진전된 현 상황에서 발생한 ‘코로나19’는 진정한 의미에서 인류사상 초유의 펜데믹이다.

앞으로도 이러한 유형의 세계적 유행병이 끊이지 않을 것으로 예측되므로 이러한 사태가 세계화 같은 인류역사 진행방향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 우려되는 바가 크다. 현재나 앞으로도 이러한 종류의 질병을 쉽게 막아낼 수 있는 국가는 없을 것이므로 세계화가 많이 진행될수록 인류사회가 발전된다는 근대 이래 지금까지의 일반적 믿음에 의문이 제기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인류 탄생 이래 꾸준히 진행되다가 산업혁명 이후 가속화 되어온 세계화의 시계를 늦추거나 되돌려 그 이전으로 되돌아 가기를 바라는 움직임도 발생할지 모른다. 그러나 시간을 되돌린다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시간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본다.

영어 사전에서 시간은 다음과 같이 설명된다. “시간이란 과거로부터 현재를 거쳐 미래로 향하는 분명히 되돌릴 수 없는 연속성 속에서 일어나는 끝없이 계속되는 존재와 사건의 진행이다”

이 설명은 현 수준의 과학이 제공하는 물리적 통찰에 근거하나 우리에게 흡족한 답을 주지는 못한다. 그리스어는 시간을 chronos와 kairos의 두 다른 원칙으로 표현한다고 한다. 전자는 순차적, 연대기적 시간이고 후자는 ‘적합한 또는 합당한 시간’으로 형이상적 또는 신적인 시간을 말한다. 신학에서 kairos는 질적이고 chronos 는 양적이다. 시간을 물리적 또는 영적으로 구분한 것이다.

시간의 개념은 우리가 만들어 낸 것인가, 아니면 처음부터 존재하는 것인가? 하는 시간의 존재론에 대한 생각은 잠시 미루고 인류가 시간을 인식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하는 인식론의 문제는 비교적 쉽게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지구가 빛을 발산하는 태양 주위를 돌며(공전), 동시에 자전을 하니 밤과 낮의 차이가 생기고 이를 구분하게 되었을 것이다. 밤이 지나면 태양이 떠올랐다가 지니 또 거기서 낮의 길이를 구분하게 되었을 것이다. 23.5도 기울어진 지구의 축 때문에 온대지방에서는 계절의 변화마저 느끼게 되니 더욱 변화해 가는 세월에 민감하게 되었을 것이다. 계절의 변화가 거의 없는 열대지방에 살아보니 주민들이 나이를 기억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점에 공감이 같다.

년내 덥고 푸른데 무엇으로 새로운 해를 기억할 것인가? 백야와 흑야가 각각 4개월 정도씩 계속되는 북극지방에 가보니 하루가 지나는 것을 무엇으로 기억해야 될지, 시간의 흐름에 둔감해질 것 같았다. 그러나 그런 시간에 대한 우리의 인식의 차이가 시간의 흐름을 막는 것이 아님은 자명하다. 이렇듯 시간은 우리의 감각기관을 통하여 감지되어 인식되고 또 이성으로 그 존재를 설명할 수 있다. 그렇다면 시간의 존재론에 들어가 그 근원은 무엇인가? 그것은 어디에서 연유하는 것인가? 를 생각해 본다.

고대 그리스의 헤라클레이토스(BC 535-475) 가 “만물은 변화하며 정지해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리고… 우리는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다”고 한 것은 시간과 변화를 동일시 한 결과였을 것이다. 고대인들도 시간의 존재를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고 변화가 시간 속에서 일어난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저명한 철학자들도 시간에 대한 두 개의 대조적인 견해로 나뉜다고 한다. 하나는 시간은 우주의 근본적 구조의 일부로서 사건과는 관계없는 차원 안에서 순차적으로 일어난다는 것으로 뉴톤(1643 ~ 1727 영국의 과학자) 은 이 견해에 동의한다.

뉴톤에 의하면 절대적이고 진정한 수학적 시간이 외부와의 어떤 관계도 없이 그 자신의 성질에 의하여 스스로 안정적으로 흐르며 이를 다른 이름으로는 지속이라고 부른다; 상대적이고 분명한 일반적인 시간은 일반적으로 진정한 시간 대신에 사용되며 운동의 방법에 의하여 지각되고 그 지속은 외적으로 측정(정확하든 불안정하든 간에) 된다. 이를 ‘뉴톤의 시간’이라고도 부른다. 뉴톤은 시간과 공간은 절대 변하지 않는 무대와 같다고 생각했다.

20세기 초, 아인슈타인은 시간과 공간을 하나의 단일한 실체인 ‘시공간’ 으로 통합함으로써 뉴턴의 관점을 깨뜨렸다. 특수상대성이론의 결론은, 같은 속도로 움직이는 서로 다른 관찰자는 시공간이라는 실체의 서로 다른 면을 보게 된다는 것이었다. 특정한 방향으로 움직이는 관찰자는 시간이 길어지고 공간이 줄어들거나, 반대로 시간이 짧아지고 공간이 늘어나는 우주를 보게 된다고 했다. 사실 이 때까지도 시공간이라는 단일한 존재 자체는 여전히 절대적인 것으로 간주됐다. 

그런데 아인슈타인은 특수상대성이론을 뉴턴의 중력이론과 결합(가속하는 우주선 안의 사람은 중력과 가속도를 구별할 수 없다는 ‘등가원리’)하면서 시공간도 물질의 영향을 받아 변한다는 결론을 도출했다. 이것이 바로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이다. 말하자면 뉴톤의 절대적인 시간 개념에서 아인슈타인의 상대적인 시간 개념으로의 변환이 일어난 것이다. 정적인 무대 역할만 하던 시공간이 동적인 대상으로 바뀌며 시공간아 우주를 구성하는 다른 많은 요소들과 연결된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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