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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중방우(雪中訪友)'는 '눈 속에 벗을 찾아간다.'라는 뜻의 고사성어이다. 서성(書聖)으로 일컬어지는 왕희지(王羲之)의 다섯째 아들 ‘왕휘지(王徽之)’와 그의 벗 ‘대규(戴逵)’에게서 비롯된 이야기다. 왕휘지 또한 아버지 못지않은 당대의 저명한 서예가였으며 대규는 금(琴)을 잘 연주하고 그림에도 조예가 깊은 문인 화가였다.
왕휘지는 산음(山陰), 지금의 소흥(紹興)에 살고 있었는데, 어느 겨울 함박눈이 내리던 밤에 잠에서 깨어 창문을 열어보니 세상이 모두 하얗게 변해 있었다. 큰 잔에 술을 가득 따라 붓고 좌사(左思)의 ‘초은시(招隱詩)’를 읊다가 불현듯 섬계(剡溪), 지금의 소주(紹州)에 사는 친구 대규가 보고 싶어졌다.
곧바로 작은 배를 띄워 섬계로 향하였는데, 아침이 돼서야 대규의 집 앞에 이르렀다. 그러나 왕휘지는 문을 두드려 주인을 부르지 않고 그곳에서 발길을 되돌렸다. 하인이 그 까닭을 묻자 그가 말하기를 “내가 본시 흥이 나서 왔다가 흥이 다해 돌아가는 것뿐이니, 어찌 굳이 대규를 만나야만 한단 말인가?”라고 하였다.
[吾本乘興而來, 興盡而返, 何必見戴.]
익히 잘 알려진 왕휘지의 ‘설중방우(雪中訪友)’의 고사이다. 이는 ‘세설신어(世說新語)’에 나오는 이야기로 ‘설야방대(雪夜訪戴)’ · ‘산음야설(山陰夜雪)’ · ‘승흥방우(乘興訪友)’ · ‘산음승흥(山陰乘興)’ · ‘산음방선인(山陰榜船人)’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왕휘지의 이와 같은 기이한 행위의 의미는 무엇이란 말인가. 결국, 그가 추구하고자 했던 것은 내면의 마음의 소리와 함께 형식과 격식에 구속되지 않는 자유분방함 속의 서정이었던 것일까? 혹여 이것이 도가적 풍취인지 신선도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만일 내가 대규였더라면 심정이 어떠했을까? 내 집 앞까지 왔다가 들리지도 않은 채 돌아 가버린 친구의 ‘도가적 흥취’에 대한 이해보다는 ‘유가적 우정’에 대한 서운함을 고집하지 않았을까 싶다. 내 집 앞까지 왔다가 들어오지 않고 가버린 친구가 매우 야속하여 아마도 ‘과문불입지죄(過門不入之罪)’를 물으며 힐난하고 말았을 것이다.
수일 전, 야심한 시각에 사나운 빗속을 헤치고 먼 나라 미국에서 나를 찾아온 목사 친구 부부가 있었다. 격조하던 차에 뜻밖에 친구의 방문은 오솔한 나의 집에 공곡족음(空谷足音)과 같은 반가움이다. 이 친구 부부는 지난겨울 변방의 촌놈인 나를 데리고 미 동부 10여 개 주를 휩쓸고 다니며 캐나다까지 사선을 넘나들었던 역전의 용사요 운명을 함께 하였던 동지였다.
그의 아내 스테파니 장은 지금 뉴저지의 현역 시의원인데 오는 11월 ‘펠·팍’의 시장 선거에 공화당 후보로 출마를 확정한 상태이다. 이번에 한국 정부에서 전 세계 선출직 정치인 140여 명을 초청하여 ‘글로벌 한인 정치 포럼’을 개최하였는데, 이 행사에 초대되어 방한하게 된 것이다. 그 바쁜 일정 가운데 며칠을 할애하여 나를 찾아 준 우의가 너무도 고마웠다.
며칠간의 짧은 만남이었지만 ‘유붕자원방래’의 기쁨이 충만하여 밤새워 종교와 철학과 인생에 대해 서로의 흉금을 터놓을 수 있었던 매우 행복한 시간이었다.
목사 친구와의 대담을 통해 성경의 문헌학적 고증과 더불어 팔레스타인의 풍속과 헬레니즘 문화의 안목을 넓히는 계기가 되었으며, 한국 기독교의 '기복'과 '은혜'에만 안주하는 반지성주의적 신앙에 대한 우려에 대해 서로 깊은 공감을 나누었다.
이는 비단 우리만의 기우가 아닐 것이다. 인격적 성숙과 신학적 지성을 도외시한 채 영성만을 강조하는 주술적이고 의존적인 신앙의 부작용을 우리 사회가 여실히 증명해 내고 있으니 더 보탤 말이 없다. 미국 이민 사회에서 상대 당 후보에게 무려 아홉 번의 고소를 당하고도 매번 무혐의로 기각되어 부도옹 같이 살아남은 그녀의 정치 역정이 가히 경이롭다. 그녀의 정치 행로에 있어 장도의 무운을 빌며, 이번엔 반드시 시장에 당선이 되기를 기원한다.
/박황희 고전번역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