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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원의 구도자들...왜 스키를 탈까

전 駐 노르웨이대사, LA총영사 최병효 칼럼
왜 그렇게 열심히 스키를 타는가? 스키장에서 만나는 이제는 나이 든 옛 청년들(old youth) 끼리도 서로 묻는다. 대한독립운동을 하는 것처럼 왜 이리 열심히 스키를 타는지 모르겠다고. 좀 정신 나간 짓 아니냐고. 10여 년 전 은퇴 후 묵은 스키를 꺼내든 것은 수 십년 만에, 실로 철 들고 처음 무한으로 주어진 자유로운 시간이 주는 무료함을 채우고자 하는 욕망이 단초일 수도 있다. 그러나 왜 다른 운동이 아니고 나이 들어서는 위험하다고들 피하는 스키인가? 현직에 있을 때 못다 한 아쉬움에서 오는 보상심리도 상당한 역할을 했을 것이다. 일종의 헝그리 정신이기도 하다. 그러나 왜 하필 스키를? 의문은 여전하다. 심리학자들처럼 좀 더 깊이 연구할 주제임에 틀림없어 보인다. 쉽게 말해서 좀 더 철학적으로 살펴 볼 일이라는 것이다.

나로서는 어려서부터 뭐든지 억지로 하는 일은 싫어했던 것 같다. 다섯 살 좀 넘어 들어간 초등학교에서도 선생이 매일 “나비야 나비야 이리 날라 오너라…”와 같은 노래와 춤만 가르치고 배움에 대한 큰 기대를 가지고 갔던 국어와 산수는 안 가르치는데 대한 불만으로 일주일 만에 결국 무단 뺑소니를 놓았다. 그러나 뺑소니 사실이 창피해서 이리저리 시골 길을 혼자 거닐다가 집에는 하교 시간에 맞춰서 들어간 끝에 결국 학교를 보이콧하고 한 해 뒤에 다시 들어 갔으니 그때 이미 재수를 경험한 셈이다. 왜 좋아하지도 않는 수학을 그리 열심히 해야 되는지 이해 못한 것도 그런 성격 탓일 것이다. 이런 자유주의적 성격은 남에게 해가 되지 않는 한, 무엇이든지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도록 도와주고 같이 놀아주던 할아버지 영향이기도 한 것 같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 짧은 인생에서 하고 싶은 일을 하기도 바쁜데 왜 싫은 일을 하며 살아야 되는지에 대한 의문이 일찍이 뇌리에 깊이 박힌 것 같다. 공부든 직장이든 운동이든 하고 싶은 것을 찾아서 해야지 남이 한다고 그저 따라 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컸으니 나는 위에서 심리학자가 말한 개인주의자이고 비추종자였던 것이다. 나는 남과 내기를 하는 운동보다는 나 자신의 능력을 시험해 보고 스스로 만족을 찾으려고 하는 편이다. 비교를 해서 우위에 있어야 행복을 느끼지는 않는다. 각자 타고 난, 또 개발한 성품과 능력에 맞는 일을 하고 거기에서 즐거움을 느끼면 되지, 남 하는 일을 하며 경쟁을 해서 이겨야 되는 것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점수를 놓고 내기를 하거나 경쟁하는 골프 같은 운동 보다는 혼자서나 동호인들과 같이 여유롭게 즐기는 스키나 바이킹, 등산이나 승마, 스노르클 같은 것이 훨씬 마음 편하고 즐겁다.

칸트는 행복은 일차적으로 고통의 회피이지 쾌락의 획득은 아니며 인간은 행복이 아니라 선을 추구해야 한다고 하면서 선한 삶은 인간을 “행복할 만한 가치가 있는 존재” 로 만든다고 한다. 스키는 경쟁 스포츠가 아니니 그의 “타인을 내 목적을 위한 도구로 사용하지 말라”는 정언명령(상황에 따라 바뀌는 것이 아닌 이성법칙을 따르는 것)에는 부합하는 것 같다. 그러나 스키가 단지 고통의 회피를 목적으로 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든다. 
스키는 현대인의 삶을 가장 잘 대변하는 스포츠라고도 한다. 기온과 바람과 스키어들의 활동에 따라 슬로프의 상태는 시시각각 끊임없이 변화하고 예측할 수 없게 되며, 이러한 변화무쌍한 지형을 뚫고 나가는 법을 마스터하는 동시에 자신과 타인의 안전을 지킬 정도로 의식을 가져야 한다는 사실을 지속적으로 상기시키기 때문이라고 한다. 스키는 한계를 지키고 원칙을 따르기 위한 스포츠가 아니라 자유를 경험하고 내면의 조화를 신뢰하는 스포츠이며, 다양함과 다름의 스포츠라고도 한다. 스키에서 지루함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변화무쌍함과 다양함과 더불어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발휘되는 집중력에 기인하는 듯 하다. 집중을 실행하는 것은 기본적인 인간의 자유를 되찾는 것이며, 집중력을 잃을수록 인간은 무력해지고, 결국 목표를 달성하거나 무언가를 즐기지 못하게 되고, 무엇보다도 사랑할 수 없게 된다고 한다. 우리가 누군가 또한 무언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거기에 집중한다는 의미이며, 누군가 또는 무언가에 집중한다는 것은 이를 사랑한다는 의미라고 한다.
소설가 김훈은 “삶은 우리를 완벽하게 장악하여 여백을 허용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최소한 스키장에서 만은 우리는 삶에 장악되지 않는 자유로움을 추구할 수 있으니 스키는 자유로운 영혼에게는 상상력을 현실화 시켜 주고 삶의 여백을 넓혀주는 사색활동이라고도 정의하고 싶다. 용평 최고령 스키어는 96세인데 60세에 은퇴하며 스키를 시작했다고 하니 경로라고 집에서 눈 구경만 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인간은 단순히 인간이라는 사실만으로 최대한 존중 받고 사랑 받을 자격이 있다는 주장은 모든 인간의 내면은 값진 것이고 인간의 가치는 그가 성취한 것과 비례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이러한 인본주의에 기초하여 스키를 기술로서보다는 인간 내면의 수양의 방도로서 대한다면 무거운 장비를 들고 움직이는 귀찮음이나 늘지 않는 기술에 좌절하지 않고 두려움을 극복하며 집중=사랑의 즐거움을 맛 볼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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