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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힘을 비하하지 말라

전 駐 노르웨이대사, LA총영사 최병효 칼럼
2009년 로스앤젤레스 총영사로 36년 외교관 생활을 마친 필자는 1983년 10월 9일 오전 버마(현 미얀마) 수도 랑군의 한 호텔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서석준 부총리 등 한국인 17명이 사망한 ‘버마 아웅 산 묘역 폭탄테러’가 벌어진 날이었다.

나는 당시 전두환 대통령의 버마 등 서남아-대양주 순방 외교를 실무적으로 뒷받침한 외무부 서남아과 서기관이었다. 버마는 빠졌던 애초 순방 계획안(83년 5월)도 내가 만들었고 7~8년 전 기밀 해제된 ‘버마암살폭발사건 경위 및 처리결과 보고서’(84년 3월)도 직접 작성했다. 이런 인연으로 몇 년전 나는 40여년 전 북한 공작원들이 저지른 버마 테러 사건의 경위와 의문점을 세밀히 정리한 책 ‘그들은 왜 순국해야 했는가’(박영사)를 펴냈다.

버마암살폭발사건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룬 공직자로서 진실을 밝힐 의무가 있다고 판단했다. 사건이 발생하고 몇 년 후에 이 내용을 바탕으로 책을 쓰고 싶은 마음이 있었지만 2014년 문서가 공개되기 전까지는 비밀유지 의무에 걸려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다.
 
40여년 전의 버마암살폭발사건 얘기를 역사적 기록으로 남기는 책을 나름 빈틈없이 쓴다고 써보았지만 완전함에는 미치지 못함을 느낀다. 아직도 그 사건에서 자신의 잘못이 들어날까 봐서 진실을 밝히지 않고 있는 관계자들도 있고, 아예 그 지긋지긋한 사건은 잊어버리고 싶다고 아직까지도 침묵하는 사람도 있고, 또 밝혀진 사실들을 재구성하는 내 능력의 한계에서 오는 결함도 있어 완전한 원처럼 흠 없는 작업이 되지는 못한 것 같다. 현실에서 완전함을 달성하는 일은 애당초 가당치 않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인간은 자연 속에서 끝없이 진화해 왔지만 자연과 같이 완전한 경지에는 이르지 못한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우주의 138.5억년의 역사, 태양계의 45억년 역사나 지구의 44.5억년의 역사에 비추어서도 인류-영장류 수십만년-수백만년의 역사는 그야말로 땅콩 한 알도 못되기 때문이니 인간의 부족함을 절망만 할 일은 아닐 것이다. 그 대신 인간에게는 다른 동물에게는 없는 엄청난 무한대의 능력이 주어지지 않았는가. 상상력의 힘이다. 우리가 무엇을 상상하는 데에는 아무런 외적 제약이 없으니 그야말로 완전한 상상의 자유를 가지고 있지만 우리가 이를 얼마나 사용하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우리는 대부분 항상 짚고 서있는 땅이라는 중력의 현실에 억매인 채 순간순간을 보내는 경우가 많고 자유로운 영혼 속에서 중력을 벗어나 상상의 날개를 펼치는 시간은 짧다.

그래서 누군가는 “세상은 꿈꾸는 자의 것이다”라고 했을 것이다. 현실 세계에서 그 상상은 비전이라는 형태로 꿈이나 희망이라는 형태로 또는 공상이라는 형태처럼 여러 가지 모습을 가진다. 누구의 상상은 가끔은 다른 사람의 자유를 억압하는데 사용되기도 할 것이니 상상이 꼭 바람직한 현상이나 능력만은 아닐지 모르나 인류의 진보 발전에 상상력이 끼친 영향이 전부라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 같다. 버마사건의 역사적 기록 작업을 마무리한 뒤 남는 아쉬움을 나로서는 상상력의 힘을 빌려 보다 더 만족스럽고 나름 완전하게 정리하고 싶은 욕망이 있다.

그 형태는 재능이 전혀 없는 작곡이나 그림보다는 나로서는 아무래도 문학 쪽이 접근하기 쉬운 일이다. 호머나 괴테나 니체와 같은 서사시보다는 소설이 편할 것 같아 이리저리 구상을 해본다. 등장인물들은 가히 세계적이다. 김일성-김정일-북의 공작원들, 전두환-허문도-노신영-이범석-장세동, 네윈-버마 정보국, 미국과 소련의 정보기관들, 일본의 버마 코넥션… 상상만 해도 숨가쁜 국제 암살음모와 첩보전으로 가득한 얘기가 될 것 같다. 이러한 소설화된 역사의 결과가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를 줄까도 생각해 본다.

몇 년전 국회에 출석한 추미애가 법무장관이 당시 야당 의원들에게 ‘소설 쓰시네’라고 대응하자 일부 소설가들이 추 장관이 소설을 비하하고 ‘소설의 힘’을 너무 가볍게 언급했다고 비난하면서 당시 여당과 대통령에게 큰 부담을 주는 망언이라고 정치공세를 한 일이 있었다. 내가 보기에 당시 야당과 일부 언론이 소설을 쓴 것은 아마도 사실이겠지만 소설을 썼다고 이를 묵살하고 가볍게 본 결과는 어떠하였는가? 추 장관은 ‘사실의 힘’이 ‘소설의 힘’을 물리칠 것이라고 확신했음에 틀림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정치에서는 사실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것이 거짓이라고 하더라도 사람들이 사실이라고 믿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하지 않는가. 사실보다도 더 듣기 좋고 재미있는 것이 소설이니 대중이나 이를 추종하는 언론이 어느 쪽 힘을 더 믿었을 것인가는 명백하지 않았던가? 곰곰이 생각해 보니 개인적 생각으로 나는 당시 정치인으로써 추 장관의 단수가 낮고 인문학적 소양마저도 의심되는 발언이 아니었던가하는 아쉬움이 남아 간혹 이 발언을 떠올리면서 웃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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