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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을 영원으로 (1)

전 駐 노르웨이대사, LA총영사 최병효 칼럼
영국통의 어느 지인이 한국 신문에 기고한 글을 보니 영국의 신경제재단(NEF)은 2008년 발표한 보고서에서 영국의 미래 신성장 동력은 '정신적 웰빙(Mental Wellbeing)' 강화를 통한 '멘털 캐피털(Mental Capital 정신적 자본)'의 축적에서 나온다고 하였다 한다. 

거창한 연구를 하지 않고서도 우리가 상식적으로 내릴 수 있는 결론이지만 빠른 선진국 진입을 위해 정치, 사회, 경제 등 각 분야의 급속한 발전을 최우선시함으로써 온갖 갈등을 야기하며 힘들게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한국인들에게는 뉴스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정신적 건강을 증진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이미 은퇴하여 유유자적한 삶을 보내고 있는 처지에서 정기적이고 즐거운 운동만한 것은 없을 것 같다. 

나는 평생 여러 종류의 운동에 관심을 가져봤지만 혼자서도 할 수 있는 운동을 좋아하는 편이다. 축구나 농구, 배구 등 팀 경기도 좋지만 아무 때나 쉽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골프도 국내에서는 팀 구성과 장소 예약, 이동이 힘들어서 은퇴 후에는 거기서도 은퇴하였다. 삼십여년을 즐겨온 승마도 나이 들며 말을 다루기 힘들어져 십여년전 사실상 은퇴하였다. 

남은 것은 등산, 바이킹, 스키인데 등산도 무릎 사정으로 근년에 사실상 은퇴하였다. 

다행이 등산 대신 바이킹을 작년 봄부터 본격적으로 재개하여 한강과 그 지류를 중심으로 최소 2천km는 달린 것 같다. 바이킹과 스키는 서로 시너지 효과를 주는 가장 잘 어울리는 운동 같아 만족도가 매우 높다. 스키는 크로스 칸츄리가 나의 주종목이나 무릎 사정과 국내 여건상 알파인에 집중하고 있다.

십년 전 은퇴 후, 한국외교협회에 스키동호회를 구성하여 정기적으로 옛 선배, 동료들과 한국과 일본 중심으로 알파인 스키를 즐기고 있다. 금년도 일본 원정지로는 3년만에 다시 나가노현의 시가고겐을 찾았다. 

시가고겐은 일본의 스키 발상지이고 최대 규모의 스키지역으로 1998년 나가노 동계올림픽을 같은 현 내의 하쿠바와 나누어서 개최한 바 있다. 

3년 전에는 우리 회원 7명이 5박6일을 하였는데 눈이 계속 쏟아져 이틀 정도만 제대로 탔기에 그 지역 전체를 섭렵할 수는 없었다. 이번에는 11명이 6박7일로 하루 더 여유를 가지고 갔다. 

1월2일 월요일 오후, 설국의 관문인 니가타 공항에 내리니 겨울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있었다. 

휴식겸 나가노시 Aeon쇼핑센타에 들려 니가타 지역의 명주라는 고시노간바이 두 병을 샀다. 두 번 쉬며 4시간 가까이 저녁 길을 달려 해발 1천미터 고원지대인 시가고겐에 들어서니 고대하던 눈이 내리고 있었다. 

일본도 금년에는 60년만의 눈 기근으로 예년 같으면 8m가 쌓였여야 할 눈이 겨우 1m 남짓이라 스키어들의 애를 태우고 있었으나 그날 밤새, 또 다음 날 종일 수십 센티의 눈이 내려 푹신한 쿠션으로 우리를 환영하였다. 

날씨도 스키 2일차부터 계속 청명하거나 흐리고 바람도 없어 최상의 조건이었다. 일본 스키장에서 이런 좋은 날씨를 4일 연속 즐긴다는 것은 드문 행운이었다.

1월3일 화요일, 스키 첫 날은 숙소인 프린스호텔 남관에서 바로 2천m 야케비타이야마 정상까지 올라가는 아침 8:30 첫 출발 제2 곤돌라에 모두 올랐다. 

세월이 무서워서 금년 만 85세를 맞이 한 두 회원은 전과 달리 정상에서 우측 아래의 제1 곤도라 쪽으로 내려가는 올림픽 자이언트 슬라롬 코스는 사양하고 자작나무 숲이 늘어선 좌측의 편안한 시라카바 코스를 택하였다. 

칠십 내외의 신중년들은 종일 계속되는 폭설을 무릅쓰고 산 뒤편 오쿠시가 지역으로 들어가 온 산을 누비고 다녔다. 

점심은 프린스호텔 서관으로 내려와 간단한 요기를 하였다. 그 후는 각자 도생이라 나는 혼자서 서관옆 리프트로 이치노세 다이야몬드 게렌데를 거쳐 이치노세 페밀리 스키지역으로 넘어가 4인승 리프트를 타고 이치노세 정상에 올랐다. 

3년 전에는 눈보라 속에 정설이 안된 블랙 코스를 내려오며 거의 그로기 상태였는데 이번에는 기술도 좀 늘었고 정설도 되어 있어 그런대로 내려올 수 있었다. 

마감시간 무렵에 도로 위로 연결된 슬로프로 이치노세 다이야몬드 지역으로 되돌아가 리프트로 오른 다음, 프린스호텔 서관쪽으로 가는 편안한 능선 길을 탔다. 

서관 옆에 도착하여 Rapid2 리프트로 산 중턱에 올라 호텔 남관으로 내려갈 수 있었다. 저녁 식사 전에는 잠시 시간이 있어 셔틀로 2분 거리인 프린스호텔 서관 욕탕에 들렸다. 

온센물은 아니나 바깥 경치를 보며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고 눈 내리는 노텐브로에서 하루의 피로를 풀 수 있어 만족하였다. 

종일 계속되는 눈 속에서 모두 무사히 하루를 보내고 저녁 6시 호텔내 식당에 모여서 푸짐한 일식 부페를 들며 그날의 무용담을 나눴다. 

물샐틈 조차 없을 정도로 빡빡한 하루를 보낸 탓으로 녹초가 되어 식사 후에는 모두들 바로 방으로 돌아가 침대에 들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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