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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4일 수요일, 이틀 차에는 날씨가 흐렸으나 눈은 거의 그쳤다. 엊그제 보다 스키어들도 부쩍 늘었고 중국말을 쓰는 이들도 상당수였다.
우리 모두 역시 8:30 첫 출발 제2 곤돌라로 일단 야케비타이야마 정상에 오른 후 좌측 파노라마 코스로 내려오다가 다시 우측의 시라카바 길을 따라 프린스호텔 서관쪽으로 갔다. 모두들 일단 리프트로 이치노세 다이야몬드 지역으로 올라갔는데 연로한 회원들은 흐린 시야속에서 정설이 안된 가장자리로 내려가다가 깊은 눈 속에 빠져 고생한 후 다시 야케비타이야마 쪽으로 후퇴하였다.
나는 이들을 구조하느라 잠시 지체된 후 페밀리 지역으로 넘어가서 Quad로 이치노세 정상에 올라 3년전 폭설과 바람 때문에 생략했던 그 위쪽의 테라코야 정상으로 향했다.
테라코야 지역은 2천미터의 완만한 고원지대로 정설이 안된 슬로프도 편안했다. 약간의 눈보라 속에서 몇 번 연습 후 왼쪽으로 나가노 올림픽 다운힐 경기가 열렸던 히가시다테야마 지역으로 향했다.
도중에 조그만 신사도 만나며 스기로 꽉 들어찬 울창한 산림지대를 그린코스로 편안하게 한참을 내려가니 험난한 다운힐 코스가 나왔다. 급경사에 정설이 안되어 있기에 이에 도전하는 대신에 옆의 편하고 긴 숲속 길을 따라 호뽀부나다라 스키장을 거쳐 다테야마-호뽀부나다라-자이안트 스키장이 모두 만나는 베이스로 내려갔다. 거기서 우리 일행 몇을 만났다. 프린스호텔에서 셔틀로 이치노세를 지나 온천마을 유다나카 방향으로 가다 보면 다카마가하라 도로변에서 넓고 긴 그 슬로프가 탐스럽게 보였었으나 전에는 가지 못했던 매혹적인 모습의 자이안트 코스로 모두들 올라갔다.
그러나 그것은 사이렌의 유혹이었던가? 보기와는 달리 눈을 정설해 놓지 않은 자연모굴(mogul=스키 탈 때 점프해서 넘을 수 있도록 높게 다져 놓은 눈 더미) 상태에 곳곳이 얼음이어서 하강은 이 두 어려운 상대와의 매우 힘든 교섭이었다.
상급 스키어들도 빨리 내려가다가 곳곳에서 눈에 처박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들 모두 사이렌의 노래 소리에 홀려 격랑에 뛰어든 오디세우스의 병사들 같았다.
돛대에 몸을 묶고 귀를 틀어 막은 채 유혹을 이겨나가는 오디세우스의 처절한 항해처럼 우리는 살아남기 위한 어려운 투쟁을 전개하였다. 격전이 끝난 후에 주린 배를 채우러 베이스에 있는 Aspen이라는 식당에 들어가니 페네로페는 보이지 않았지만 고대하던 이타카 왕국 같았다.
온화한 영국 팝 분위기에서 돼지고기 국수와 커피 한잔을 즐기며 잠시 쉰 다음, J대사의 제의로 셋이 오른편의 자이안트 정상을 거쳐 비교적 편안한 가족 스키지역인 하수이케, 마루이케와 Sun Valley로 넘어가서 슬로프들을 한번씩 점검하였다. 시가고겐에 다시 오더라도 이곳에는 다시 올 필요가 없도록 점검하자는 취지에서였다.
무슨 숙제를 풀고자 온 것처럼, 이번 기회에 이곳의 모든 스키지역을 섭렵해 두지 않는다면 궁금증이 남아 있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하수이케 정상에서 내려오다가 오른쪽으로 터널로 연결되는 눈 길을 좀 걸으면 호뽀온센 동네 아래 자이안트 슬로프 중간으로 진입할 수 있다는 J대사의 말을 믿고 그를 리더로 하여 스키를 들고 걷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리더가 길을 자꾸 헷갈리는 바람에 200m만 걸으면 된다는 길을 스키를 매고 슬로프를 찾아 거의 1km를 헤매느라 완전 녹초가 되고 말았다. 이타카의 해변에 잠시 기항했다고 해서 오디세우스의 시련이 끝난 것은 아니었던 것이었다. 기진맥진하여 리더를 탓하며 겨우 다시 이타카의 영토임에 틀림없는 자이안트 베이스에 도달하였다.
거기에서 다시 일행 한명을 만나서 지친 몸을 이끌고 니시다테야마로 가는 리프트에 올랐다. 리프트를 두 번 오르니 2천미터 정상이었다. 반대편으로는 이치노세 지역과 맞닿아 있는 다카마가하라 지역이었다.
그곳은 일본신화에서 하늘 위 신들이 산다는 나라라는 뜻이라지만 오늘은 정설이 안되어 힘들다는 얘기가 있어 천국은 다음 날로 기약하고 전에 못 갔던 인간세계 니시다테야마 게렌데들을 점검하였다. 숲 사이로 블랙-래드-그린 등 다양한 코스가 있었는데 폭이 넓고 자연설이 좋아서 즐겁게 두세번을 오르내렸다.
4시면 대부분의 리프트가 끊기니 버스편이 아닌 자력으로 이타카의 궁전인 프린스호텔로 돌아가기 위해 서둘러 히가시다테야마 정상으로 가는 곤돌라에 올랐다. 역시 2천미터에서 내리는데 거기서부터 길고 아름다운 숲속의 그린을 계속 서쪽으로 타고 가니 이치노세 페밀리 스키지역이었다. 길 건너편 다이야몬드 게렌데쪽으로 넘어가서 프린스호텔 서관에 이르러 다시 거의 마지막 리프트를 타고 야케비타야마 중턱에서 내려 프린스호텔 남관으로 내려와 스키를 보관하고 궁전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 날은 리더의 혼선으로 고생도 했지만 덕분에 이름도 아름답고 아담한 가족스키지역인 하수이케, 마루이케와 Sun Valley도 점검했으니 불평만 할 수는 없었다.
J대사는 전에 한번 하수이케에서 자이안트로 넘어가봐 그 길을 안다고 하여 선봉장이 된 것인데 자이안트 슬로프를 우측에 두고도 이를 놓쳐 휘하 장졸들이 베이스까지 스키를 둘러매고 대장정을 하며 진을 빼게 된 것이었다. 그는 다음에 다시 가서 금이 간 리더쉽을 만회하겠다고 밤 늦게까지 지도 공부를 열심히 하였다.
<계속>
/최병효 전 駐 노르웨이대사, LA총영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