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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의 행동을 보고 있자니 우리 인류가 이들과 진화 중 헤어진 것이 그리 오래된 것 같지 않다는 생각과 함께,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스캔들(자신의 정적인 민주당 Biden 전 부통령 아들의 우크라이나 사업 비리를 수사해야 우크라이나에 대한 원조를 집행하겠다고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압박한 혐의) 관련 탄핵과정에서 자주 언급된 Quid pro quo(a favor for a favor)라는 라틴어가 자연스럽게 연상되었다.
인간이 다른 동물보다 좀 낫다는 것은, 사회 각 분야의 지도급 인사들은 이 Quid pro quo라는 동물적 원칙보다는 좀 더 상위의 도덕율을 추구한다는데 있는 것이니 트럼프가 있을 곳은 그의 말대로 온통 적들이 우글대는 정글 같은 백악관이 아니라 동지들로 가득 찬 평화로운 이 야엔코엔이 아닐까 하는 우스꽝스런 생각마저 들었다. 모계사회라는 원숭이 세계에서 숫놈은 새끼가 태어난 후 바로 떠나거나 1년만 같이 육아를 담당한 후에는 대부분 홀로 떠나 또 다른 짝을 찾아야 한다는데 이 원칙도 그가 그리 싫어할 것 같지는 않지 않은가?
인간세계로 내려와 버스 시간까지 약간 여유가 있어 ‘칸바야시(上林) Roman미술관’에 들어가니 Roman Glass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일천수백여년전 실크로드 시대에 로마에서 중국을 거쳐 일본까지 각종 유리잔이나 장식품이 수입되었는데 실크로드의 동쪽 끝은 한반도가 아니라 일본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이 있는 것 같았다.
박물관에는 수백년전 이 지역 유력자들의 도검도 전시되고 있었다. 다시 셔틀버스를 타고 시부온센 등 여러 개의 온천마을들을 통과하여 15분 후에 유다나카역에 도착하였다. 온 마을이 온센여관들로 가득차 있지만 유서 깊은 요로즈야 여관의 위치를 찾고자 관광안내소에 물으니 거기만 들르면 1,300엔이나 온센메구리 표를 사면 1,200엔에 요로즈야를 포함한 이십여 가입 온센 중 세개를 이용할 수 있다고 했다. 그 표를 파는 온센 세군데 중 시내를 관통하는 호시가와를 건너 자그마한 토요오 호텔에서 표를 사고 우선 텅 빈 그 온센에 홀로 몸을 담궜다. 역 앞으로 돌아와서 식사를 한 후에는 전에 갔었던 깨끗한 신식 여관인 비유노야도에서 두번째로 온센에 잠시 몸을 담근 후 인근 요로즈야로 향하였다. 비유노야도는 전과 달리 눈이 적은 탓인지 아래층 노텐부로는 닫았고 본탕 옆에 1인용 노텐부로가 있어 들어갔다. 온센에는 역시 나 혼자였다.
온센을 무대로 벌어지는 판타지 영화로 에니메이션 영화사상 최고라고 평가받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무대라고 주장하는 온센이 일본에는 시고쿠의 도고온센과 큐슈의 온천 등이 있고 대만에도 이를 주장하는 곳이 있다고 하는데 요로즈야의 건물을 밖에서 보니 여기가 바로 그 무대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안에 들어가니 더욱 그러하였다. 2층으로 올라가 미로처럼 어렵게 찾은 온천탕은 두개였다.
매일 남녀탕이 바뀐다는데 유서 깊다는 모모야마탕이 오늘은 여탕이 됐다며 시노노메후로의 다른 유일한 남성 고객인 일본인이 나에게 불평하였다. 두어시간 동안 세군데 온센에 들른 후에도 시간이 남아 인근 카페에서 커피도 음미하였다. 기차역 앞에서 5시 버스를 타고 저녁 식사 전에 호텔로 돌아와 다음 날 새벽 6:30 호텔에서 출발할 수 있도록 짐을 꾸리며 제법 길었던 하루 일정을 마감하였다. 저녁에는 프린스호텔 남관 지하의 이자카야에서 모두 만나 식사를 하며 사케와 일본 소주, 맥주로 회포를 풀었다. 1월8일 일요일 새벽 떠나는 시간에는 눈이 날리더니 니가타 공항에 도착하니 비로 변해 있었다. 이제 다시 오기 어려울 시가고겐 6박7일의 2차 대장정은 이렇게 그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이번에 보니 한국에서 온 스키어 중에는 87세 되신 분도 있어 스키는 나이에 관계없이 즐길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하여 주었다. 85세 우리 회원들의 꿈은 소박하게도 90세 되는 정월 초하루에 용평의 Mega Green slope 정상에 서는 것이다. 자기 나이와 힘과 기술에 맞는 슬로프에서 자기 스타일로 원하는 만큼 타면 되는 것이니 스키는 생각보다 자유로운 운동이다.
러나 높은 산의 급사면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 보면 항상 순간적으로 어떤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 그곳은 분명 우리의 일상과는 다른 환경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곳이 아니더라도 인생에서 부닥치는 두려움은 많을 것이다. 우리의 영혼까지 깨끗하게 씻어줄 것 같은 눈 덮인 세상을 바라보며 내가 좋아하는 카잔차키스의 삶과 글을 생각한다. “두려워 말라, 순간을 영원처럼 살라, 그러면 죽음은 없을 것이다” 죽음이 없을 수야 없겠지만 우리는 흙에서 태어나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니 죽음을 두려워해도 어차피 이를 피할 방법은 없다. 영어 속담에 “용기는 남자를 재는 잣대이고 아름다움은 여자를 재는 잣대이다.
용감한 자는 한번 죽으나 비겁한 자는 죽기 전에 여러 번 죽는다” 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죽음은 한번으로 족한 것이리라. 스키를 타는 순간, 정신적 희열 속에서 죽음에 대한 공포를 극복해 나가니 그 순간만은 영원한 삶일 것 같다. 이러한 순간들의 영원(Eternity of Moments) 을 반복한다면 정신적 웰빙이 강화될 것이고 이렇게 하여 정신적 자본(Mental Capital)이 축적된 개인들을 신종 자본가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러한 신종 자본가가 미래 사회의 새로운 성장동력이라니 스키를 타는 일은 개인과 사회를 위하는 일석이조가 아닌가. 이번 시즌부터 완전 백수가 된 덕분에 생애 최대 일수를 눈 속에서 보내며 나도 이제 신종 자본가라고 자임해 본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