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대 l 축소

횡설수설 - 橫說竪說

고전번역학자 박황희 칼럼
‘횡설수설’의 사전적 의미는 생각나는 대로 아무 조리(條理) 없이 함부로 마구 늘어놓는 말을 의미하거나 말을 이렇게 했다가 저렇게 했다가 하는 것, 또는 두서가 없이 아무렇게나 떠드는 것을 일컫는 말이다.

그러나 그 말의 본래의 뜻은 지금과는 의미가 상당히 달랐다. 『장자(莊子)』 「서무귀(徐無鬼)」 편에 나오는 횡설수설의 원형은 이렇다.

“서무귀가 나오자, 여상이 그에게 물었다. ‘선생께서는 대체 무슨 말로 우리 임금을 설득하셨습니까? 라고 하자 서무기가 말하기를, 제가 임금님을 설득시키는 방법은 횡적으로는 시, 서, 예, 악을 설명하였고, 종적으로는 『주서(周書)』의 「금판(金版)」 편과 「육도(六弢)」 편을 설명하였을 뿐입니다’라고 하였다”
“徐无鬼出 女商曰: ‘先生獨何以說吾君乎, 吾所以說吾君者, 橫說之則以詩書禮樂, 從說之則以金板六弢.’”

이 대화에 나오는 ‘횡설종설(橫說從說)’이 훗날 ‘횡설수설(橫說竪說)’로 바뀌었다. ‘횡(橫)’은 가로를 나타내고 ‘수(竪)’는 세로를 뜻하는 말이다. 횡설수설(橫說竪說)은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게 정신없이 떠드는 말이 아니라, 종횡무진(縱橫無盡)으로 가로와 세로로 사례를 들어 설명하여 이치에 조금도 어긋나지 않는 조리(條理)가 정연한 말을 뜻하였다. 종과 횡을 넘나들며 교차적으로 사례를 들어 설명하므로, 듣는 이로 하여금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논리적으로 설득하는 말이 횡설수설의 본래 의미였다.

‘길고 줄기차게 잘하는 말솜씨’를 이르는 ‘장광설(長廣舌)’이란 말이 현대에 와서는 ‘쓸데없이 너저분하게 오래 지껄이는 말’이라는 좋지 않은 뜻으로 바뀌어 버린 것처럼, ‘횡설수설’도 지금에는 이 소리 하다가 느닷없이 저 소리를 해서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게 되었을 때 쓰이는 말로 그 의미가 전이 되고 말았다.

이렇게 말뜻이 다르게 된 까닭에는 ‘횡(橫)’ 자가 지닌 여러 가지 뜻에 대한 오해 때문이다. ‘횡(橫)’은 ‘가로’라는 뜻이 있지만 동시에 ‘멋대로, 함부로’라는 뜻도 있어서 이해 대한 인식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다.

‘횡단보도(橫斷步道)’는 안전표지에 따라 보행자가 차도를 ‘가로질러’ 건너다니도록 정해놓은 길을 말한다. 그러나 ‘횡인(橫人)’은 제멋대로 구는 버릇없는 사람을 말하고, ‘횡재(橫財)’는 노력을 들이지 않고 뜻밖에 재물(財物)을 얻는 행위나 그 재물을 뜻한다. 또한 ‘비명횡사(非命橫死)’는 제명에 죽지 못하고 뜻밖의 사고를 당해 죽는 것을 의미한다. ‘횡설(橫說)’도 따로 떼어서 말하자면 ‘억지로’ ‘멋대로’ 우기는 이야기라는 뜻이 된다.

『고려사(高麗史)』에는 정몽주의 스승이었던 목은 이색이 그를 칭찬하며 말하기를, “정몽주의 논리는 ‘횡설수설(橫說竪說)’하면서도 이치에 합당하지 않음이 없다.”라고 하며 그를 동방이학(東方理學)의 비조(鼻祖)로 추대하였다. [李穡亟稱之曰, “夢周論理, 橫說竪說, 無非當理.” 推爲東方理學之祖]라는 구절이 있다.

이는 포은 정몽주가 성균관에서 경전을 강의할 때 ‘종횡무진(縱橫無盡)으로 왔다 갔다 하면서도 이치에 조금도 어긋나지 않게 조리(條理)가 정연(整然)하였다.’라고 하는 칭찬의 말인 것이다. 얼마전 검찰청사 앞에서 있었던 어느 정치인의 기자회견을 보면서 문득 그의 ‘장광설’이 전자이지 후자인지, 그의 ‘횡설수설’은 후자인지 전자인지를 곰곰 생각해 보게 되었다.

이전화면맨위로

확대 l 축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