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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루를 위한 변명

고전번역학자 박황희 칼럼
지난번 빠루 여사의 당대표 불출마에 거금 오백 원을 걸었다가 나는 일시에 가산을 탕진할 위기를 여러 차례 겪었다. 그러나 고맙게도 빠루 여사는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결코 져 버리지 않았다. 얼마전 마침내 빠루 여사가 백기 투항을 한 것이다. 자못 비장하고 결연한 표정이었지만, 그의 신세는 맥아더 앞의 일본 천황 히로이토와 같았다.

“어떤 시련 앞에서도 저는 한 번도 숨지 않았고, 제가 옳다고 생각하는 가치를 위해 싸웠습니다.”라고 시작을 하는데 그만 헛웃음이 나왔다. 내가 보기에 그녀는 어떤 ‘이권’ 앞에서도 한 번도 숨지 않았고, 자신에게 ‘이익’이 된다고 생각하는 가치를 위해서만 싸웠던 것으로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그녀는 또 “질서정연한 무기력함보다는, 무질서한 생명력이 필요하다”라고 하였다. 본인이야말로 질서정연하게 ‘윤비어천가’를 부르며, 맞대응 한 번 제대로 하지 못했던 무기력한 기회주의자가 아니었던가? 논산 훈련소같이 ‘윤심’을 위한 충성만 존재하는 기득권 수호 정당에서 언제 한 번 무질서한 생명력이 있었던가?

항복하려거든 속내가 드러나는 감정의 표정을 감추어야지 자신이 솔로몬의 재판에 나오는 ‘진짜 엄마’라고 주장해버리면, ‘가짜 엄마’는 누가 된단 말인가? 표절 논문으로 박사 Yuji를 힘들어 하는 접대 여사를 눈곱만큼이라도 생각을 했더란 말인가? 이번에 그녀의 발언은 항복 기자회견장에 수류탄을 터트린 셈이 된 것이다.

역시 ‘법대는 접대를 이길 수 없다’라는 세간의 신박한 논리가 이것으로 완벽하게 증명이 되었다. 대학입시의 점수와 지성의 수준이 결코 비례하지 않음을 ‘윤 씨’와 ‘나 씨가’ 충분히 검증해 준 것이다. 이제 이것으로 그녀의 정치생명은 여기서 끝이 났다. 그녀에게 차기 동작구 공천은 허공 속의 꽃이요, 어젯밤 꿈이 되고 말았다. 뿐만이 아니라 그녀의 ‘친정 사학비리’와 ‘자녀 입시 비리’의 카드는 여전히 살아있는 유효한 칼이 되었다. 불출마로 해서 결코 무장해제가 된 것이 아니다. 정치는 ‘타이밍의 예술’이라 하였는데, 그녀는 여러 차례 실기를 한 것 같다. 애초에 당권에 도전할 욕심이었다면 두 달 전에 공직을 맡지 말았어야 했고 기어이 출마를 작정할 요량이었다면 공직 사임과 동시에 출마를 선언해야 했으며, 불출마를 결심했었다면 윤 씨에게 사과문을 발표할 때 미련 없이 불출마를 선언했어야 했다.

지금까지 저울질하고 이쪽저쪽으로 간 보며 기회주의적 처신을 하다가 이제 와 불출마를 선언하기엔 너무 늦었다. 오히려 더 큰 것을 내놓아야 한다. 오늘 그녀는 차라리 정계 은퇴를 선언했어야 옳았다. 그렇게 처절하게 죽어야만 살아날 실낱같은 기회가 생기는 법이다. 조선의 칼잡이는 상대가 항복을 하면 칼을 거두지만 사무라이식 칼잡이는 재기불능이 될 때까지 결코 칼을 거두지 않는다. 숨통을 끊어야만 마침내 칼을 거둔다. 그녀가 ‘조국’과 ‘이재명’의 사례를 목도 하고서도 이런 처신을 하였다면 매우 경솔한 판단을 한 것이다. 장담컨대 그녀의 차기 총선 공천은 백 퍼센트 탈락한다는 데 또 오백 원 건다.

‘단일화’의 상징 안철수에게 새봄이 찾아 왔다. 그는 광을 팔고자 기어이 판에 뛰어든 사람이다. 광값을 위해 십수 년이나 이 당 저 당에서 고되게 몸을 굴린 사람이다. 이 좋은 기회를 그가 절대 놓칠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번엔 선수로 뛸 수 있는 절호의 찬스가 왔다. 보라 그의 손에는 똥, 팔, 삼 ‘삼광’이 모두 들어있지 않은가?

그러나 좋아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만약 유승민이 출마를 포기한다면 그의 지지율 거품은 급속도로 빠져나갈 것이다. 그는 영원한 ‘보완재’였지 ‘대체재’나 ‘대항마’가 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그는 봉황으로 태어나 철새로 살다 치킨으로 죽은 ‘새(鳥)’ 정치의 신화를 이룬 조류계의 거물이다. 그러나 계란이 닭이 되는 일은 있어도 치킨이 봉황으로 부활한 예는 동서고금에 없는 사건이다.

존재감 사라진 유승민의 행보가 참으로 딱하게 되었다. 보기 민망한 계륵의 신세가 된 것이다. 출마를 포기하자니 잊혀진 사람이 되고 말 것이요, 출사표를 던지자니 결선행은 기대 난망이라. 먹자 할 것 없는 닭갈비 신세이다. 그렇다고 철수에게 광을 팔기에는 그의 자존심이 결코, 허락지 않을 것이다.

‘어부지리’와 ‘아부지리’의 천운을 얻은 김기현은 민심도 당심도 없는 곳에서 오직 ‘윤심’ 하나만으로 ‘일타쌍피’에 ‘쓰리고’ 찬스가 왔다. 유승민이 출마를 포기해 준다면 결선 투표 없이 쉽게 한 방에 싹쓸이를 할 절호의 기회를 만날 것이다.

남의 도박판에 왈가 왈부할 것이 뭐 있겠는가마는 어째 자신의 이름으로 정치하겠다는 사람이 이렇게도 없단 말인가?

대한민국의 정치판은 여전히 노인정 고스톱 판 수준을 면하지 못하는 구나.

/박황희 고전번역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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