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대 l 축소

정치언어여, 침을 뱉어라!

전 동아일보 파리특파원, 청와대 춘추관장 김기만 칼럼
우리 역사를 통틀어 최고의 학자, 당대(18세기) 한중일 전체에서도 최고 수준의 학자로 꼽히는 다산 정약용(1762-1836). 귀인은 달라도 뭔가 다르다. 그가 1836년 2월 22일 74세로 별세할 때, 그날이 회혼일이었다. 5백 여권의 저술(요즘 기준 50권 정도)을 남긴 다산의 저작 중 최고의 책 한 권을 꼽으라고 하면, 전문가들은 대부분 목민심서를 든다. 관료가 부패하지 않고 백성을 섬기며, 직간하도록 권고하는 책. 애민애국 정신의 집대성이다. 다산의 9대 후손으로 45년째 다산을 공부하고 있는 국내 최고의 다산 연구자 정해요 선생(83, 현대실학사 대표)은 다산이 남긴 최고의 단어로 '골경신'을 든다. '이에 씹히는 뼈와 목에 걸리는 가시와 같은 신하'라는 뜻이라고 한다. 정 선생은 "다산은 신하가 무조건 충성만 하는 게 아니라 임금의 잘못도 지적해 바른 군주가 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며 "다산 자신도 골경신이 되고 싶어했다"고 밝혔다. 온통 용비어천가가 난무하는 요즘 세태에 가슴에 와 닿는 말이다.
정해요 선생이 최근 <사암 정약용 전기>(창비)를 냈다는 소식에 이른 아침 목민심서를 꺼내 다시 읽어봤다. '사암(俟菴)'은 '후대를 기약한다'는 뜻으로, 여유당과 함께 정약용이 썼던 호이다.

다산이 전남 강진에 유배되어 있을 때(1801-1818) 쓴 목민심서는 목민관의 덕목, 사회의 부패상과 치국안민의 구체적 방법론, 정치개혁과 국민경제 향상 방안이 꼼꼼히 담겨있다. 다산의 목민의 길은 명쾌하다. 최대한 성현의 뜻을 이어받는 군자학의 실천, 수신과 예를 바탕으로 한 목민, 청렴과 공평무사가 전부이다. 그러나 결코 지키기 쉽지 않다. 크게 열두 편, 각 편마다 여섯 개 조목의 실천 세목이 붙어있는 목민심서는 공직자들에게 금과옥조기 될 바이블이라 할 만하다.

“강한 자에게는 강하고, 약한 자에게는 관대하게 하라”는 게 전체를 관통하는 '목민심서 정신'이다. '이전육조'의 용인 세목은 인사참사로 전전긍긍하는 이 정권에 꼭 들려주고 싶은 글이다. <위방 재어용인 군현수소 기용인 무이이야>(爲邦 在於用人 郡縣雖小 其用人 無以異也). 나라를 잘 다스림은 사람을 잘 기용하는 것에 달려있다. 군현이 그 규모가 작더라도 사람을 기용하는 이치는 다를 바 없다.

'율기육조'(律己六條)의 한 세목을 보면 목민관이 얼마나 '대기추상, 대인춘풍'(待己秋霜, 待人春風)이어야 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아랫사람을 관용으로 통솔하면 순종하지 않을 백성이 없다. 그러므로 공자는 "윗사람으로서 너그럽지 못하고 예를 존중하지 않으면 내가 무엇으로써 볼 것인가"라고 하였고, 또 "너그러우면 많은 사람을 얻는다"고 하였다.

일찍이 공자가 원님이던 제자 자유에게 묻는다. "쓸만한 인물을 얻었느냐?". 자유는 답한다. "담대멸명(澹臺滅明)이라는 사람이 있는데, 샛길을 지나는 일이 없으며 공사가 아니고는 제 방에 들어오는 일이 없습니다". '법대충'(서울법대, 대광초, 충암고)이나 '검사 16명 최고 요직 기용"에 따른 비판은 자유에 비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지 생각해 보면 국민께 사과하고 재발방지를 약속할 일이다.

다시 '이전육조'의 한 세목을 보자.

윗사람이 스스로 행동거지를 올바르게 하지 않으면, 영이 서지 않고 파국에 이르게 된다는 것을 간명하게 설명한다.

이속을 단속하는 근본은 율기에 있는바, 수령이 자신의 몸가짐을 올바로 하면 명령하지 않아도 이속들이 임무를 잘 수행하며 수령의 처신이 올바르지 않으면 명령을 해도 이속들이 행하지 않는다. 같은 '이전육조"의 또 다른 세목은 '아첨배"와 '직간파' 목민관의 차이를 극명하게 구분해 준다.

아첨을 잘하는 자는 충성스럽지 않다. 간하기 좋아하는 자는 배반하지 않는다. 이 점을 잘 알고 유념하면 실수가 별로 없을 것이다.

백성의 원성이 하늘에 닿을 지경인데, 측근들은 간쟁을 두려워하고 칭송의 용비어천가만 부른다면 이미 끝이 보이기 시작한 경주일 뿐이다.

끝으로 '형전육조'의 금포 세목은 나라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잘 보여준다.

토호들이 힘을 믿고 날뛰는 것은 힘없는 백성들에게는 늑대와 호랑이니 그 피해를 제거하고 양을 살 것, 이것이야말로 백성을 기르는 것이다. 백성의 등을 따숩게 하고, 안전을 지켜주며, 눈물을 닦아주는 것이 국리민복의 정치 본령이다. 세력싸움, 자리다툼은 국민을 울리는 악정에 다름 아니다.
정치언어여, 침을 뱉어라!

최근 "내부 총질" 운운하는 유행어가 인구에 회자된 이후 정치권에서 벌어지고 있는 살벌한 말의 대결, 같은 당의 동료이면서도 결코 '동지의 언어'가 아닌 '증오의 언어'로 치고받는 것을 정치랍시고 매일 보고 들으며, 그들에게 목민심서 일독을 권하고 싶어졌다. 여야 정치인 모두에게. 또 일국의 국무총리이면서 단 한 번도 책임총리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는 최고위직 목민관에게도 목민심서 한번 펼쳐보라고 권하고 싶어졌다. 다산이 강조한 호간은 어디로 행방불명되고, 선유(善諛, 아첨)만 홍수를 이루는지 물으며, 직접 '골경신'의 뜻을 새겨보라는 뜻에서...

/김기만 전 동아일보 파리특파원, 청와대 춘추관장

이전화면맨위로

확대 l 축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