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대 l 축소

옷에 대한 단상

최초의 인류에게 옷이란 ‘부끄러움’을 가리는 수단이었다. 수렵과 채집의 공동체 생활이 시작되면서 사는 곳의 처지와 형편 또는 기후의 변화에 따라 점차 옷의 기능이 ‘육체를 보호’하는 역할을 하기 시작하였다.

부족국가의 형태를 갖추게 되면서 비로소 옷은 인간사회의 ‘예(禮)’를 표현하는 기능을 하기 시작하였다. 고대국가에 이르러서는 옷은 ‘신분’의 질서를 나타내는 수단이 되었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 이르러서 옷은 이제 더 이상 신분과 계급을 상징하는 수단이 아니다. 현대 사회에 있어 옷이란 ‘예’와 ‘신분’과 ‘기능’의 복합적 수단이 되었을 뿐만이 아니라 자신의 ‘개성’과 ‘멋’을 추구하는 생활예술의 경지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이제 옷은 부끄러움을 가리는 단순한 도구가 아니다. 때와 장소 그리고 만나는 사람에 따라 옷의 모양과 색깔을 달리해야 하며, 계절과 환경의 변화에 따른 차이도 고려하여 옷을 입는 시대가 되었다.

이른바 옷이 단순한 기능의 영역에서 벗어나 ‘패션 산업화’가 된 것이다. 그러므로 옷을 선택하는 일이 이제는 매우 복잡한 문화예술의 영역이 되었다.

옛날 어른들은 이렇게 말하였다. “음식은 내가 좋아하는 것을 먹어야 하고 옷은 남이 보기에 좋은 것을 입어야 한다.” 이는 옷의 ‘사회적 기능’을 강조한 말이다.

오래전 어느 의류회사 광고에 이런 말이 있었다. “10년을 입어도 새 옷 같고, 새 옷을 입어도 10년 된 듯한 옷.” 이는 옷의 ‘상품성’과 ‘편리성’을 강조한 말이다.

이제 옷은 단순히 색상이나 디자인의 호불호를 선택하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자신의 개성과 철학을 상징하는 표현의 수단으로까지 의미가 확대된 것이다. 어느 한 부분에 시각을 고정시켜 옷의 의미를 정의하려 든다면 그건 더 이상 옷에 대한 예의가 아닌 세상이 되었다. 이제 인간에게 옷은 ‘구속’이 아닌 ‘자유’이고 ‘선택’이 아니 ‘표현’이며, ‘기능’이 아닌 ‘예술’이 되었다.

옷을 못 입는 내게 옷차림은 언제나 고역이다. 어쩌다 큰맘 먹고 옷을 새로 사도 집에 와 옷장을 열어보면 비슷한 것 투성이다. 그래서 난 어느 자리, 어느 상황에서나 옷차림이 비슷하다. 지난 가을 처형에게 제대로 한 소리 들었다.
“어머 제부는 옷을 왜 똑같은 것만 입고 다니세요”

이 소리에 마님께서 흥분하여 백화점에서 다섯 벌의 옷을 사왔다. 게다가 또 소문이 여기저기 퍼져 자존심 쎈 우리 여동생이 이 말을 듣고 스크래치 난 자존심을 회복하고자 급기야 또 명품 브랜드의 옷을 다섯 벌이나 사서 부쳐 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길거리에서 새로 산 등산복이 좋아 올겨울 내내 어딜 가든 그 옷 한 벌만 입고 다녔다. 내가 이렇게 단순 무식한 모질이라는 사실을 고백한다.

/박황희 고전번역학자
 

이전화면맨위로

확대 l 축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