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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미와 베짱이

고전번역학자 박황희 칼럼
무더운 여름날 베짱이는 나무 위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나무 아래에서는 개미가 땀을 뻘뻘 흘리며 일을 하고 있었다. 여름 내내 일만 하던 개미는 자신의 집에 양식을 크게 비축하여 두었고, 노래만 부르던 베짱이는 간신히 노래 한 곡을 작곡하였다.

가을이 되어 홍수가 났다. 개미는 자신의 집에 비축해둔 양식과 함께 빗물에 떠내려가 일가족이 모두 죽고 말았다. 나뭇가지 위에서 비를 피하던 베짱이는 음원 수입과 저작권료로 거부가 되었으며, 사후 50년간 저작권이 보장되어 자식들에게까지 안정된 삶을 물려 주었다. 열심히 일만 하는 ‘성실함’이 반드시 성공의 보증 수표가 아니라는 것을 나는 너무도 늦은 나이에 깨닫고 말았다.

작년 겨울 미국 여행 중에 매우 큰 충격을 받았던 사건이 있었다. 어느 미국인과 대화 도중 그가 한국인을 평하면서 내게 이런 말을 하였다. “한국인들의 인생은 달리기만 한다. 어디로 달려가는지, 왜 달려야만 하는지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으며 심지어 숨을 쉬는 것조차 잊어버린 채 계속 달리기만 한다”라는 것이었다. 이날의 충격이 내겐 인생의 의미를 곱씹게 만든 큰 교훈이 되었다.

충격의 여운이 가시기도 전, 촌티 풀풀 나는 조선의 촌놈인 내게 미국 사람이 다 된 딸내미가 이런 말을 하였다. “아빠 열심히 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슬로우 라이프’야~”

하늘의 별만 바라보는 사람은 자기 발아래 꽃의 아름다움을 느끼지 못하는 법이다. 단순하기 짝이 없는 내 인생의 구조는 ‘학교’와 ‘교회’뿐이었다. 그러나 나는 어느 곳에서도 온전한 사람이 못 되었다. 언제나 ‘비주류 아웃사이더’에 불과하였다.

조선의 역사와 성리학적 사고로 무장된 동학들로부터는 서양 종교를 믿고 서양 철학을 중시하는 이방인으로 배척당하였으며, 바울의 교회주의를 신봉하는 교조주의적 기독교인들에게는 한자나 들먹이며 공자를 추종하는 고리타분한 청학동 훈장 같은 사람으로 매도당하였다.

나는 그들의 편견이 늘 불편했다. 자기중심주의에 매몰되어 자신의 지식만이 세상의 전부인 양 고집하는 그들의 시각을 편협하다고 여겨 언제나 스스로 고립과 불화를 자초하였다. 그런 내가 오늘 페북 친구들과 소위 ‘번개’라는 것을 생전 처음으로 하였다. 평소에 내가 만나던 울타리 안의 사람이 아닌 내가 살던 바깥세상의 사람들을 만난 것이다. 이는 실로 엄청난 사건이었다. 내게 있어선 심봉사 개안하는 것 같은 광영이었으며, 브리태니카 백과사전을 통째로 선물 받은 것 같은 황홀한 기분이었다.

다양한 연령층과 서로 다른 직업, 사는 지역과 서로의 의식 세계까지 모두가 달랐지만 다들 노는 일에 진심이었고 일가견이 있는 도사들이었다. 과연 어디에서 이런 다양한 재능을 가진 친구를 만나 인생의 참맛을 배울 수 있더란 말인가?

첫 모임에 남성 열일곱 명, 여성 열한 명 총 스물여덟 명이 회원에 가입하고 스물세 명이 참석하여 동지로서의 도원결의를 하였다.

첫째는 서로에게 ‘교학상장’의 발전적 관계를 위해 먼저 손 내밀 것
둘째는 ‘시절인연’의 소중함을 깨닫고 공동체의 추억을 만드는 일에 정성을 다할 것
셋째는 그동안 열심히 살아온 일에 대한 통렬한 반성과 참회를 서로 고백할 것
넷째는 산적부 조직 내에서 동지간 연애는 엄히 금할 것

잘 사는 것은 열심히 사는 것이 아니라 즐겁게 ‘잘 노는 것’이라는데 합의를 본 것은, 매우 큰 수확이다. ‘잘사는 것’을 ‘돈을 잘 벌어 부자로 사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면 이는 식민지 백성의 후진적 발상에 불과하다.

잘 사는 것이란 즐겁고 행복하게 사는 것이다. 즐겁고 행복하기 위해선 재미나게 놀 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잘 사는 것이란 ‘잘 놀 줄 아는 삶’이란 말씀이다. 바쁘기만 한 인생이나 열심히만 사는 사람은 인생의 참맛을 망각하고 사는 것일 뿐이다.

앞으로 산행의 코스를 확대하여 여름엔 제주도 둘레 길 코스도 계획하고 겨울엔 해외 코스도 개척해나갈 생각이다. 이를 위해 매월 산행 시에 ‘10분 발언’ 담당 2인을 구성하여 서로의 생각과 인생 강의를 경청하기로 뜻을 모았다.

인생의 2막을 좋은 친구들과 다양한 경험과 지식을 공유하며 소중한 추억을 만들어 가고 싶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였다. “관조적 삶을 살 때 인간은 신과 가장 가까워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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