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와 대학시절부터 알고 지냈으나 수십년만에 미국에서 다시 만난 한 후배는 평생 직장이나 가정 등 어떤 조직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삶을 살아오다가 일찍이 미국으로 가서도 그러한 자유인의 삶을 계속하였다. 그러던 중 뒤늦게 깨달은 바 있어 미국 유수의 신학대학에서 7년간 공부하였다. 목회학이나 선교학이 아니고, 영어.불어.독일어.라틴어.히브리어와 그리스어 능력이 필요해서 한국에서 대학 나온 사람들은 엄두도 못 낸다는 그 어려운 성서학을 연구하고 목사 안수도 받았다. 그러나 애초부터 목회 활동 같은 조직 생활에는 전혀 뜻이 없었으므로 계속 자유로운 삶을 누리고 있는 그에게 시간은 어떤 의미인지 물어봤다.
시간도 윤회한다는 생각이 흥미롭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원리에 따라 시간의 요소인 속도가 에너지를 만드는 중요한 요소(C2) 라면 시간도 에너지 보존법칙에 의하여 우주에서 어떤 형태로든 남아서 영원히 없어질 수는 없을테니 언젠가 또 어떤 형태로 돌아올 것이다. 문제는 우리 삶이 너무 짧아 다시 돌아올 시간을 이용할 수 없다는데 있을 듯하다. 상대성 원리에서도 중력에 의하여 공간이 휘게 될 때는 그 안의 시간도 휘므로 시간은 절대적인 개념은 아니다. 시간이 아니더라도 이 우주에 절대적인 것이 있을까. 하이데거의 지적처럼 우리가 시간이고, 동시에 시간이 결국 창조자와 같은 것이 아닐지 하는 생각도 든다.
요즘엔 자전거로 이곳 저곳을 유람하며 자전거 바퀴처럼 돌고 도는 것이 시간인가 생각해 본다. 시간이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버리는 일직선적인 것이든, 바퀴처럼 윤회하는 것이든 간에 어떤 지점이나 시점에서 볼 때는 미래로부터 현재로 와서 과거로 흘러가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우리는 항상 현재 시점에 그 시간을 좀 더 붙들어 두고 싶어하나 그게 여의치는 않다. 끊임없는 발전을 최고의 가치로 추구하는 서양문명에서는 현재의 순간에 만족하는 멈춤은 정체를 의미하며 피해야 할 악덕으로 보는 것 같다. 괴테(1749-1832)의 파우스트 박사는 세계의 진정한 실체를 인식하기 위해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초인적이고 불굴의 노력을 기울이는 학자인데 그 길을 안내해 줄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에게 영혼을 담보로 제공한다. 계약의 조건은 그가 현재의 순간에 만족해서 노력을 멈추는 순간에 그의 영혼을 악마가 거둬갈 수 있다는 것이다.
파우스트 박사는 그를 맹목적으로 사랑했던 시골 처녀 그레트핸을 버리고 메피스토펠레스의 안내를 받아 새로운 향락과 지적 탐구의 세계를 향해 떠난다. 그레트핸은 정신이 돌아서 그들 사이의 딸과 자신의 부모를 죽여 사형을 당한 후 지옥으로 떨어졌으나 회개하여 구원받는다. 한편 파우스트는 악마 메피스트펠레스의 조화로 그렇게 꿈꾸었던 절세의 미녀 헬레나(트로이 전쟁의 원인이 된 스파르타의 왕비)와의 사랑 등 이 세상과 저 세상의 온갖 영화와 비탄과 고통을 체험한 후 문득 깨달음에 이른다. 그리고 자유로운 땅에서 자유로운 사람들과 더불어 지내고 싶다는 삶의 궁극적 목적을 발견하고 그것이 이뤄지는 환상을 보며 그는 외친다.
“순간아 멈추어라, 정말 아름답구나!
파우스트 전설은 여러 형태로 유럽 각국에 존재한다고 한다. 입센의 페르긴트에게 버림받았으나 그의 귀환을 평생 기도하며 살다가 모든 것을 탕진하고 고향에 돌아와 그녀의 무릎에서 죽어가는 그의 영혼을 ‘믿음, 소망, 사랑’을 통하여 구원하는 솔베이그 얘기도 그레트핸을 연상시킨다. 순간에 집착하는 삶은 죽음을 의미한다면 우리는 시간의 리듬=우주의 리듬에 맞춰 살아가는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지나간 시간=과거를 회상하는 것도 다가올 시간=미래를 예상하는 것도 인간의 특권이다. 우리는 잘못된 현재를 수정하고자 과거로 되돌아가고 싶은 욕망과 미래에 대한 호기심으로 이를 들여다 보고자 하는 욕망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우리가 타임머신을 만들어 과거로 되돌아 갈 수 있다고 해도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원리에 의하면 이 우주에서는 빛의 속도 이상을 낼 수도 없고 그런 속도로 달리려면 달리는 물체의 질량이 무한대로 증가해야 하며 크기는 무한대로 작아져야 한다고 하니 과거로 돌아가거나 미래로 간다는 것은 형체가 있는 인간에게는 무의미한 일이 될 것이다.
상대성이론이 우주와 같이 macro한 세계에 대한 관한 이론이라면, 원자처럼 micro한 세계에 관한 양자역학 이론에 의하면 한 물체는 동시에 여러 군데에 존재할 수 있고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의 이동에 시간이 전혀 필요치 않다고 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세상과는 전혀 다른 세상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의 아바타가 시간에 구애 받지 않고 동시에 여러 군데로 이동하고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은 꿈 같은 얘기이다.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이론 등 모든 물리학 이론을 통일하는 ‘만물의 이론’이 언젠가 등장하면 시간에 대한 우리의 이해도 깊어질 것으로 기대할 뿐이다.
/최병효 전 駐 노르웨이대사, LA총영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