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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분분(雪紛紛) 난분분(亂紛紛), 세상사가 어지럽다. 공정과 상식을 세우겠다고 출범한 정부의 어느 구석에도 공정과 상식은 사라지고 내편 아니면 모두 적이라는 흑백논리가 사회를 지배한다.
원칙과 상식, 공정과 합리는 어디로 갔는지 찾아보기 힘들다.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는 천박한 힘의 논리, 정글논리만 횡행한다. 과거 정부의 괜찮은 정책들이 한순간에 부정당하고 비판적 언론은 고소 고발로 재갈을 물린다. 난맥을 보이는 정책들의 정부 대책은 고심한 흔적 1도 없는 일차원적인 것들로, 나이트클럽 앞에 흩어진 호객 전단지 수준이다. 원인에는 무관심하고 행위에만 주목하는 검찰 정권의 본색을 이토록 선명하게 드러내기도 어려울 것이다. 참으로 숨막히는 세상이다. 모르면 성찰하고 학습이라도 해야 하는데 그럴 능력도, 의지도 없어 보인다. 무지가 죄는 아니다. 그러나 결단의 순간, 무지가 신념을 갖게 되면 공동체에 재앙을 가져 온다. 작금의 사회 분위기가 딱 그런 꼴이다.
얼마전 국무회의를 주재한 대통령이 ‘노조 때리기’에 나섰다. 화물연대 파업을 제압해서 재미를 좀 보았는지 이젠 아예 노조를 산업의 동반자가 아닌 적으로 규정하면서 압박에 나선 모양새다. 노조를 ‘건폭’이라 비난하면서 뜬금없이 청년들을 끌어 들여 갈리치기를 시도한다.
노사간 계급투쟁을 조장하는 것과 함께 가장 나쁜 정치행태다. 노조원들이 자발적으로 내서 운영되고 있는 회계장부를 들여다 보겠단다. 반발하는 노조에게는 막대한 국민혈세가 투입됐다고 겁박한다. 노조비를 기부금으로 간주해 연말 세액공제 해주는 것을 국민혈세라고 우긴다. 세액공제를 해주니 세금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정부의 노조 회계감사는 법에도 없다. 조합원에게 공제해 주는 세액이 일년에 59억원이란다.
그렇다면 형평성 문제가 제기된다. 경총이나 상의 등 사용자 단체에 지원되는 국민혈세는 5백96억원인데 왜 눈을 감는가. 노조에 지원되는 혈세의 10배인데도 말이다. 사용자 단체에 지원되는 국민혈세의 투명성은 안중에 없는가. 그렇게 세금을 소중히 다루는 정부라면 대통령의 검찰총장 시절 사용한 특활비 147억원부터 공개하는 것이 맞다. 공개하라는 법원 판결도 무시하고 있지 않는가. 대통령 특활비도 공개하면 더 좋겠다. 국민들은 이미 ‘노조 때리기’를 통해 얻을 정치적 이득을 잘 알고 있다. 사용자들에게 눈엣가시인 노조를 때려주면 얼마나 좋아할까. 노조의 불법에 눈감으라는 말이 결코 아니다.
노조도 잘못이 있으면 비난받고 수사받고 처벌받는 것이 맞다. 건설현장이든 산업현장이든 노동자를 가장 피눈물 나게 하는 것은 임금체불이다. 하지만 임금체불로 처벌받았다는 사업자는 거의 못봤다. 아주 가끔 시범 케이스로 잡혀가는 사람이 있을 뿐, 그런데 지금 누굴 잡겠다고?
높은 물가에 서민생활은 피폐해지고 노사간, 계층간 갈등은 심화되고 있다. 외교는 국제 왕따를 당하고 있고 수출실적은 정부 통계작성 이후 가장 큰 폭으로 추락하는 데도 과거 정부 탓이다. 유럽에서 열린 나토회의에 참석해 ‘탈중국 선언’할 때부터 수출폭락은 예견됐다. 실력을 갖추고 말하든지, 실력이 없으면 말을 말든지, 이건 뭐 아무말 대잔치하다 당한 자업자득아닌가. 경제위기에 애꿎은 국민들만 고통을 당하고 있다. 남북관계는 완전 경색돼 언제 핵폭탄을 맞을지 불안해 죽을 지경이다. 눈떠보니 선진국이라던 호시절은 봄눈 녹듯 사라졌다.
보건복지부는 ‘번개탄 생산’을 금지해서 자살률을 줄이겠다는 대책을 발표했다. 자살하는데 번개탄만 사용되는가. 수단을 없애기로 하자면야 한강다리도 없애야 하고, 칼도 만들지 말라고 해야지, 참 웃기는 대책이다. 자살하려는 사람들의 동기를 살펴서 실효성 있는 대책을 마련할 생각은 하지 않고 그 수단만 없애면 자살이 없어지는가. 가스비, 난방비. 전기료 폭등하자 내놓은 대책은 절약운동으로 극복하란다. 6, 70년대 새마을운동 시절로 착각한 것 같다.
농림식품부는 한우값 폭락하자 내년까지 암소 14만 마리를 줄여 한우가격을 안정화 시키겠다고 발표했다. 인간에게 소비되기는 하나 가축이나 가금류도 엄연한 생명이다. 줄여서 없애는 것 말고 다른 방법은 없는가? 사고의 수준이 참 저급하다. 한술 더 떠 쌀 재고량 적정 유지와 품종 다양화를 이유로 신동진 벼 등을 내년부터 공공비축미 매입 제한 품종에 추가했다. 전북의 대표 쌀 품종을 제외시키자 농민들 반발이 거세다.
우수한 품질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수확량이 많다는 이유로 제한 품종으로 지정한 것이 타당한 일인가. 신동진 벼는 전북 벼 생산량의 53%를 차지하는 품종이다. 브랜드 평가에서 각종 상을 휩쓸었다. 그럼에도 정부는 농민들과 아무런 상의 없이 신동진 벼 매입과 보급중단을 결정했다. 이원택 의원이 발의한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쌀값 안정화를 위한 합리적 대안인데도 이를 외면한다.
學無止境 배움에는 끝이 없고, 活到老 學到老 죽을 때가지 배워야 한다는 말이다. 누군들 완벽하겠는가. 모르면 학습하고 성찰하고, 그것도 싫으면 과거 정부의 좋은 정책만 따라가도 욕은 덜 막는다. 이래저래 국민노릇하기 참 피곤한 시절이다. 그렇치 아니한가?
/최준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