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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왕실의 연호가 갖는 의미(1)

전 駐 노르웨이대사, LA총영사 최병효 칼럼
몇 년 전에 나루히토 德人(1960- ) 새 천왕을 맞이한 일본은 축제 분위기였다. 일본처럼 입헌군주제를 택하고 있는 유럽국가에서도 새 왕의 즉위는 국가적 경사이다. 

선진국으로서 군주제를 지속하고 있는 경우는 대부분 근대화의 격동기에 왕들이 국력을 키우고 주권을 수호하는데 기여한 공로가 있어서이다. 이들 왕국에서는 왕의 생일이 국경일일 정도로 왕이 아직도 국민통합의 구심점이 되고 있다. 

우리의 조선왕조는 끝까지 절대권력을 누렸으나 맥없이 국권을 상실하고도 책임을 지고 자결하거나 해외로 망명하여 독립투쟁을 한 왕족이 한명도 없었으니 어떤 형태로든 군주제를 회복할 명분은 없었다. 

1948년 공화국으로 재탄생하며 제정한 의원내각제적 헌법을 불법으로 대통령직선제로 개헌한 이승만 이후 모든 대통령이 왕권을 잡은 것으로 착각한 나머지 불행한 종말을 고했고 북쪽에서는 새로운 절대왕조가 탄생했으니 왕조사상에서의 탈피가 얼마나 어려운 과제인지를 일깨워준다. 

우리의 경우를 떠나서 러시아나 중국의 예에서 보더라도 민주화란 아직도 과거 수천년간 인류사회의 지배적인 권력형태였던 왕권사상에서의 탈피를 위한 투쟁에 다름이 아닌것 같다. 

일본의 천왕들은 오히려 일찍부터 절대권력을 쇼군들에게 빼앗기고 입헌군주제처럼 명목상의 국가 상징으로만 존재해온 덕분에 그들이 만세일계(万世一系)라고 자랑하는 세계 최장수 왕조를 유지하고 있다. 

아키히토 전 천왕은 1989년에 제125대 왕으로 즉위하여 30년 4개월간 헤이세이 平成 시대를 이끌었지만 나루히토 천왕은 248번째 연호로 채택된 레이와 令和 시대를 이끌게 되었다. 일본은 세계에서 기독교 연호와 함께 자체 연호도 공식적으로 쓰는 유일한 국가라고 한다. 

‘레이와’(令和) 라는 연호는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시가집인 만요슈(万葉集, 629년 무렵부터 759년까지 약 130년간 4,516수의 노래와 시를 모아 수록한 시가집. 그만큼 많은萬 작품葉을 모은 책集이란 뜻과 만대萬代까지 전해지기를 바라는 작품집이라는 뜻이 겹쳐 있다.)의 제5권 시가 詩歌 32수 ‘매화의 노래’ 서문 중 '初春令月, 氣淑風和, 梅披鏡前之粉, 蘭薫珮後之香(초봄의 아름다운 달에 산뜻한 바람이 부네, 매화꽃은 거울 앞 분을 바르는 여자처럼 희고 난꽃은 고귀한 사람들의 지니는 향낭처럼 향기롭네. 初春の令月にして、氣淑く風和ぎ、梅は鏡前の粉を披き、蘭は佩後の香を薰らす)'라는 문구에서 따왔다고 한다. 

‘初春令月 氣淑風和’ 새봄이 되니 공기는 맑고 바람은 온화하다고 새봄의 희망을 노래하며 매화꽃의 하얀 색갈과 은은한 난향을 찬양하니 새로운 시작을 노래하기에 좋은 시 같다. 

영월(令月)은 2월을 뜻한다니 양력 3월의 초봄을 의미한다. 그러나 '와(和)'는 일본의 민족정신을 일컫는 말로, 레이와 令和 라는 새 연호는 일본 중심의 질서로 편입시키겠다는 '일본의 명령'이라는 뜻을 내포한다는 해석도 있다. 

일본 외무성은 공식적으로 레이와가 '아름다운(令) 조화(和)'를 의미한다고 밝혔으나 사실은 '일본의 질서를 명령한다'는 중의적 해석이 지난해 숨진 아베의 혼네(本音·본심)에 더 가까울 것이라는 얘기다. 아베 총리의 지지기반인 보수층의 의견이 반영된 것으로 보는 것이다. 

아베 총리는 “만요슈는 우리나라의 풍부한 국민 문화와 오랜 전통을 상징하는 국서” 라며 “새 연호가 폭넓게 받아들여져 일본인 생활 속에 뿌리내리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일본이 서기 645년 제36대 고토쿠(孝德) 천왕 때 중국을 본받아 연호를 사용하기 시작한 이래 중국 고전이 아닌 일본 고전에서 연호를 선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그러나 한문학자들은 이번 연호가 포함된 만요슈의 시가가 이보다 앞서 만들어진 중국 남북조시대(6세기) 시문집인 '문선’ 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고 있다. 문선에 실린 중국 후한시대 문인 장형(張衡·78~139)의 시 ‘귀전부(歸田賦)’ 가운데 ‘仲春令月 時和氣淸‘(봄이 한창인 2월, 날씨는 온화하고 공기(는 맑다) 라는 구절이 레이와 令和의 원조라는 것이다. 

계절은 일본 만요슈가 ‘初春’(초봄), 중국 문선이 ‘仲春’(음력 2월)으로 비슷하다. 중국 장안과 일본 쿄토의 계절 차이를 반영한 표현인듯 하다. 만요슈는 8세기 말에 나왔으며 문선은 이보다 2세기가량 앞서 제작됐는데 일본의 사신이 7~8세기에 중국에서 갖고 온 것으로 전해진다. 

물론 이러한 중국 문학의 일본 초기 전래나 시가의 전통은 백제로부터 온 도래인들에 의한 것이라는 것이 현대 일본 만요슈의 대가인 나카니시 스스무 선생의 지론이라는 점은 손호연-이승신 모녀시인을 통하여 오래 전부터 한국에 널리 알려진 바 있다.

<계속>

/최병효 전 駐 노르웨이대사, LA총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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