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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정하석 - 落穽下石

고전번역학자 박황희 칼럼
‘낙정하석(落穽下石)’은 함정에 빠진 사람에게 돌을 떨어뜨린다는 뜻으로, 어려운 처지에 놓인 사람을 도와주기는 커녕 도리어 괴롭힘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이 말의 출전은 한유(韓愈)의 「유자후묘지명(柳子厚墓誌銘)」이다. 한유가 친구 ‘유종원(柳宗元)’의 억울한 죽음을 애도하며 지은 추모의 글이다. ‘자후(子厚)’는 유종원의 자이며 두 사람은 모두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의 한 사람들이다.

유종원은 ‘왕숙문(王叔文)’ 등이 주도하는 정치개혁에 가담하여 부패한 관료사회를 혁신하기 위한 정풍운동을 벌이다 모함을 받고 귀양살이 끝에 죽음을 맞았다. 한유는 고문부흥(古文復興) 운동을 함께 주도했던 동지의 불행한 죽음에 몹시 안타까워하며 그를 위한 묘지명을 지었다. 다음 글은 그가 지은 묘지명의 일부이다.

“선비는 어려운 일에 처했을 때 비로소 그 사람의 지조를 알 수 있는 법이다. 오늘날 사람들은 평소에 함께 지내면서 술과 음식을 나누고 자신의 심장을 꺼내 줄 것 같이 쉽게 말하지만, 만약 머리털만큼의 작은 이해관계만 얽혀도 서로 모르는 체 반목을 한다. 

함정에 빠진 사람에게 손을 뻗어 구해주기는 커녕, 오히려 구덩이에 더 밀어 넣고 돌까지 던지는 사람이 세상에는 많다”
‘落’陷‘穽’, 不一引手救, 反擠之, 又‘下石’焉者, 皆是也.

민주당 대표 ‘이재명의 고난’은 예견된 수순이었다. 대권후보였던 그가 0.7%의 근소한 표 차이로 석패하였을 때부터 정치탄압은 이미 그의 정해진 행로였다. 험난하기만 한 그의 앞날을 보면서 한때의 동지라 여겼던 자들이 이제 자신들의 살길을 찾고자 ‘수박 클럽’을 결성하였다.

위기에 봉착하고 나니 자신들의 탐욕스런 본성이 여과 없이 드러난 것이다. 함정에 빠진 동지의 생사에는 아랑곳없이 살려고 발버둥 치는 동지에게 잔인하게 돌을 던지며 비웃고 있다. 정치가 아무리 다수결에 의한 지지자들의 세력 싸움이라지만 자신들의 밥그릇 앞에선 추호의 망설임조차 없이 면종복배하는 저들의 얄팍한 처신 앞에 그저 한숨만 나온다. 저런 것들을 믿고 정치개혁을 기대한다는 것이 얼마나 난망한 신기루였더란 말인가?

혹자는 국회의원 개개인이 입법기관이니 다양성을 존중해야 한다고 말하는 자들도 있다. 다양성이란 옳고 그름의 판단을 유보하지는 말이 아니다. 다양성의 수용은 ‘근원적 동일성’이 전제되었을 때만이 비로소 ‘현상적 다양성’을 존중할 수 있는 것이다. 잘못된 주장을 하면서 다양성을 인정하라고 주장하는 것은, 매우 비이성적인 논리일 뿐만이 아니라 자가당착적 모순에 지나지 않는다.

자신의 몸에 암 덩어리를 지고 적과 싸우겠다는 것은 섶을 지고 불길로 뛰어드는 것과 같이 어리석은 짓이다. 이 대표는 이참에 강력한 결단을 해야 한다. 상대의 적폐 세력을 개혁하려 할 것이 아니라 자신의 내부 세력의 적폐부터 먼저 전면적 개혁을 실행해야 한다. 암세포가 더 이상 전이되지 않도록 과감하게 환부를 도려내야만 대치한 적과 전면전에 나설 수 있다.
설령 만에 하나, 당 대표가 구속되는 불행한 사건이 일어난다 할지라도 끝까지 대표직을 사수하여 ‘옥중 공천’을 단행해야 한다. 정치가 세 싸움이라는 것을 이해 못 하는 바는 아니지만, 수박들의 숫자에 기대어 통합이니 화합이니 운운하며 세력을 키워 집권을 한다 한들 결단코 ‘문재인 시즌 2’를 면치 못할 것이다.

국민은 두 번 다시 민주당에게 180석을 몰아주는 헛된 뻘짓은 더 이상 하지 않을 것이다. 이 대표는 ‘숫자의 논리’를 믿지 말고 오직 ‘국민’과 ‘역사의 신’을 믿기 바란다. 국민이 민주당 생계형 정치인들에게 바라는 바는 ‘정권’을 위해 싸우는 정략적 정치꾼이 아니라 ‘정의’를 위해 싸우는 진정한 정치인이 되길 바라는 것이다.

‘이재명의 민주당’에게도 강한 주문을 하고 싶다. 더 이상 실기하지 말고 문재인 정부의 실패에 대한 반성과 함께 대국민 사과를 하기 바란다. 그리고 ‘나는 문재인과 다르다’라는 것을 천명하라. 더불어 다시는 문재인 정부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보여라.
그때 비로소 나는 이재명 지지자가 될 것이다. 지금의 나는 불행한 정치인을 동정하고 있을 뿐이다. 이재명의 집권이 ‘문재인 시즌 2’가 된다면 국민에게 어떤 희망도 줄 수 없을 것이며, 역사에 아무런 진보도 이루어내지 못할 것이다.

/박황희 고전번역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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