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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별과 소식 그리고 다짐

“서울에 가거든 ‘기별’ 좀 해라”

“간에 ‘기별’도 안 간다”

“나성[羅城-LA]에 가면 ‘소식’을 전해 줘요”

“다시는 술을 마시지 않겠다고 ‘다짐’을 했다”라고 하는 말 가운데 ‘기별’, ‘소식’, ‘다짐’ 등은 모두 고문서에 빈번히 출현하는 문서 양식 용어들이다.

왠 뜬금없는 소리인가 하시는 분들도 있겠지만 이는 순우리말이 아닌 한자와 이두로 이루어진 고문서 용어들이다.

조선 시대에 조정에서 있었던 정사와 인사이동 등에 관련된 소식을 전하던 문서를 ‘조보(朝報)’, ‘조지(朝紙)’ 또는 ‘기별(奇別)’, ‘기별지(奇別紙)’라 하였다. 요즘의 관보(官報)와 같은 성격의 문서를 말한다. 원본은 승정원에서 작성하고 ‘조보소(朝報所)’에서 서리와 경저리(京邸吏) 등이 필사를 하여 중앙과 지방의 여러 관서와 ‘3공(公) 9경(卿)’ 등 전·현직 관원들에게 배포하였다. 이 문서를 전달하던 사람을 ‘기별군사(奇別軍士)’ 또는 ‘기별꾼’이라 하였다. 서울은 매일 발송하였고, 지방에는 4~5일 치를 묶어 한꺼번에 발송하였다.

여기서 ‘3공(公)’이란 ‘영의정, 좌의정, 우의정’을 말하고 ‘9경(卿)’은 ‘좌·우찬성’ 그리고 ‘육조의 판서’와 ‘한성부윤’을 말한다. 문자적 의미의 ‘기별(奇別)’이라 함은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에게 소식을 부친다.’라는 뜻이다. 이때 ‘기(奇)’는 ‘기(寄)’와 통용하였다. 그러므로 ‘기별(奇別)’이란 요즘 말로 치자면 관청이나 정부 기관의 ‘소식지’나 소식지를 부치는 일에 해당하는 셈이다.

한편 ‘소식(消息)’이란 관부(官府)에서 묻는 내용에 대한 사실 확인을 해주는 답변서를 말하는데, 흔히 ‘답통(答通)’이라 하였다. 이는 ‘통문에 답한다.’라는 의미로서 ‘통문(通文)’이란 민간단체나 개인 등이 같은 종류의 기관, 또는 관계가 있는 인사들에게 공동의 관심사를 통지하던 문서를 말한다.

‘소식(消息)’이라 할 때의 ‘소(消)’는 ‘사라지다’, ‘흔적이 없어지다’라는 뜻이고, ‘식(息)’은 ‘기식(氣息)’의 의미로서 ‘안부’를 뜻한다. 그러므로 문자적 의미의 ‘소식(消息)’은 ‘자취가 사라진 사람의 안부’라는 뜻이다.

또한 ‘다짐’이란, 이는 이두에서 나온 말로서 한자식 표현으로는 ‘다짐(侤音)’이라고 한다. ‘다짐(侤音)’이란 요즘으로 치자면 일종의 ‘각서’에 해당하는 문서이다. 어떤 사실에 대한 인정을 확인하는 일과 그 일을 사실대로 실행할 것에 대한 약속을 맹세하는 문서이다. 대개 관에서 백성에게 확실한 대답을 받아내고자 할 때 쓰였다.

덧붙여 이두에 대한 예를 하나 더 들자면 ‘여의도(汝矣島)’의 ‘여의(汝矣)’ 또한 이두에서 나온 말이다. 그 뜻은 ‘너섬’ 또는 ‘너의 섬’이라는 의미이다. ‘너의 섬’이란 아무 쓸모가 없는 땅이니 ‘너나 가져라’라는 뜻이다. 지금은 금싸라기 땅으로 변모했지만, 조선 시대의 여의도는 배를 타고 가야만 도달할 수 있는 땅으로서 농사조차 지을 수 없는 갈대 무성한 모래섬에 불과하였다.

고문서를 강의하다 보니 일상 속의 재미있는 일화와 용례들이 참으로 많이 발견된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낙점(落點)’을 받았다.”라고 할 때의 ‘낙점(落點)’이라든가 ‘조목조목 따진다.’라고 할 때의 ‘조목(條目)’ 등은 모두 고문서의 용례이며 ‘피곤하다’라는 의미로 잘못 이해하고 있는 ‘고단’이란 말 역시 고문서의 한 용례이다.

‘고단’이라는 말의 한자어 표기는 ‘고단(孤單)’이다. 여기에 ‘피곤하다’라는 의미는 어디에도 없다. 고단의 ‘고(孤)’는 외롭다는 말이고, ‘단(單)’은 홀로라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고단(孤單)’이란 ‘외롭게 홀로 되었다’라는 말로서, 자신의 처지가 과부임을 알리는 말이다. 이의 용례로써 ‘자소고단(自少孤單)’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내가 어려서부터 외롭게 홀로 되었다’라는 말이다. 곧 자신의 형편이 ‘청상과부’임을 나타내는 말로서, 나를 도와줄 사람이 없어서 외롭고 힘든 상태라는 의미이다. 일상에서 간혹 ‘고단하다’라는 표현을 쓰는 사람을 만날 때가 있는데, 나는 그럴 때마다 그이가 참 피곤하다기보다는 왠지 애처롭고 쓸쓸하게 느껴진다. 나만의 생각인 걸까? 

주변에 혹여 ‘고단’하신 분이 계신가요? 그렇다면 제가 그대의 ‘기별군사’가 되어드리겠습니다.

/박황희 고전번역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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