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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9년 10월 26일’
안중근 의사가 조선 통감 이토히로부미를 만주 하얼빈역에서 처단한 날이다.
70년 후 ‘1979년 10월 26일’
김재규 의사가 유신 독재자 박정희를 궁정동 안가에서 처단한 날이다.
국가보훈처에서 규정하는 ‘의사’와 ‘열사’는 모두 나라를 위하여 절의를 굳게 지키며 충성을 다하여 싸운 의로운 사람이라는 정의는 다 같지만, ‘義士’는 무력으로 항거하여 의롭게 죽은 사람을 뜻하고 ‘烈士’는 맨몸으로 저항하여 자신의 지조를 나타낸 사람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김재규 장군을 ‘의사’라 칭하는데 사회적 의견이 분분하지만, 사육신이었던 ‘성삼문’이 충신으로 인정받기까지는 250년의 세월이 걸렸으며, 홍범도 장군의 유해는 서거 78년이 돼서야 조국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를 담당하였던 강신옥 변호사는 ‘김재규 장군 역시 반드시 역사의 재평가를 받을 것이라 굳게 믿는다’라고 하였던 것처럼 나 또한 그의 역사적 재평가를 굳게 믿는다.
‘응무소주이생기심-應無所住而生其心’
“민주화를 위하여 야수의 심정으로 유신의 심장을 쏘았다.”라던 그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기 전 그의 수양록에 남겨 두었다는 글귀이다. 사형이 집행되던 날 어느 신문에서 위의 내용이 짤막하게 보도된 것을 읽은 기억이 있다.
“응당 머문 바 없이 네 마음을 내라”
당시 고등학생이던 나는 이 말의 의미를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행여 그가 전하고자 했던 속내를 이 말속에 담아둔 것은 아닐까? 주변에 물어도 누구 하나 명쾌히 설명해 주는 사람이 없었다. 세월이 한참이나 흐른 후에야 나는 이 말이 『금강경(金剛經)』 「사구게송(四句偈頌)」 에서 나온 것임을 알게 되었다.
아마도 그는 자신의 거사에 대한 당위성을 이 게송을 통해 이야기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사구게송’의 전체 맥락은 ‘사람은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자신의 눈을 믿는 자는 결단코 성불할 수 없다.’라는 취지로 요약할 수 있다.
이 취지를 고려하여 그의 심경의 일단을 엿본다면, 현직 대통령 시해 사건이라는 ‘현상’에 집착하지 말고 자신의 총으로 군사독재 정부를 종식 시켜야만 했던 시대적 요구에 대한 행동의 당위성, 즉 사건의 ‘본질’을 봐달라고 주문한 것은 아니었을까?
이제 내 나이가 당시 그의 나이보다 훨씬 더 많아졌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그날의 거사에 대해 의문이 많다. 당시 언론에서는 평하기를 “계획적이라고 보기에는 너무 엉성하고, 우발적이라고 보기에는 너무 치밀하다”라고 하였지만, 법정에서의 그의 증언은 한결같이 담대하였으며 매우 논리적이었다.
김재규 부장은 법정 진술에서 ‘유신헌법’은 결코 자유민주주의가 아님을 설파하였다. 10.26의 동기는 “유신이라는 영구집권을 꾀하는 박정희로부터 민주주의와 자유를 되찾아 국민에게 돌려주기 위해서이다”라고 주장하였다. 또한 “권력이 국민을 짓밟는 것을 보고 침묵한다면 나는 죽은 시체에 불과하다”라고 선언하였다.
김재규가 박정희를 죽인 이유는 박정희가 죽어야 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평소 ‘자신의 무덤에 침을 뱉으라’ 했던 박정희를 김재규가 역사의 이름으로 처단한 것은, 개인 간의 사적 동기에 의한 ‘우발’이 아닌 역사의 변증법에 의한 ‘필연’이었을 뿐이다.
김재규가 평시에 즐겨 인용하던 한비자의 문장을 여기에 옮겨 놓는다.
‘비리법권천-非理法權天’
[‘非’不能勝過理, ‘理’不能勝過法, ‘法’不能勝過權, ‘權’不能勝過‘天’.]
‘비리는 이치를 이길 수 없고, 이치를 주장하는 자는 법을 이길 수 없다. 법은 권력을 이길 수 없고, 권력은 하늘을 이길 수 없다’
오늘날 권력을 가진 자들이 굳게 새겨야 할대목이다.
바람 없는 천지에 어찌 꽃을 피울 수 있단 말인가?
‘무풍천지하개화-無風天地何開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