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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나서다(2)

전 駐 노르웨이대사, LA총영사 최병효 칼럼
사실 이번 여행의 주목적은 산소 방문과 가본 적이 없는 지리산 아래 남원 인월면의 실상사 방문이었기에 남원에서 숙박코자 하였으나 미처 남원의 터주대감 춘향을 생각치 못해 벌을 받은 셈이었다. 다행이 다음 날 아침 일찍 전주에서 기차를 타니 30분만에 남원역에 도착하여 바로 인월행 버스에 올랐다.

지리산 둘레길 2코스와 3코스가 만나는 인월에서 3코스 방향인 함양군 금계 방향으로 가는 마천행 버스로 바꿔 타고 실상사(828년 증각대사 홍척스님이 창건, 금산사의 말사) 앞에서 내렸다. 통일신라 말 중국에서 들어온 선종사상에 따라 설립된 아홉개의 구산선문(九山禪門) 중 최초의 사찰이며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국보와 보물을 간직하고 있는 절의 하나라는 실상사는 저 멀리 지리산 천황봉이 보이는 남원 산내면의 시골 평지에 있었다.

근래 많은 증축을 통해 짙게 화장한 여인을 연상시키는 다른 돈 많은 절과는 달리 검은 치마에 흰 저고리를 입은 나이든 아낙네처럼 너무나 소박하고 검소한 모습이었다. 한때 3천명의 승려가 있었다는 얘기는 그저 전설이었을까? 그러나 경내 전체에서 보일 듯 말 듯 진행중인 미술전시는 무언가 범상치 않은 분위기를 풍겼다. 어찌된 영문인지 궁금하였는데 조계종 ‘자성과 쇄신 결사추진본부’ 화쟁위원장을 맡으며 불교개혁과 생명평화사상을 추진해온 도법스님(1966년 금산사에서 출가, 금산사 주지와 실상사 주지(1995-2004), 조계종 총무원장 대리 등) 이 2013년부터 이곳 회주(법회를 주관하는 승려)로 계신다는 말을 들으니 이해가 되었다.

경내를 거닐다가 얼굴이 맑고 사심 없어 보이는 스님을 만나 인사를 나누니 그가 바로 도법이었다. 통일신라 말기까지 불교는 경전 중심으로 불경을 잘 읽고 터득해야 극락에 갈 수 있다는 가르침에 치중함으로써 상류층과 왕권을 정당화하는데 이용되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글을 모르는 백성들도 참선을 통하여 극락에 갈 수 있다는 민중불교로서의 선종불교가 중국에서 도입되면서 전국 명산에 선종사찰을 지었는데 그 중 최초가 중국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증각대사가 세운 실상사라고 한다.

4키로쯤 떨어진 백장암의 삼층석탑은 국보이고 실상사 주법당으로서 비로자나불을 모신 보광전 앞의 동.서 쪽 삼층석탑들, 석등, 수철화상탑(부도)과 탑비, 증각대사(홍척스님) 응료탑과 탑비, 철제여래상, 청동입사향로, 약수암 목조탱화 등 9점과 백장암내 석등과 청동은입사향로 등 11점이 보물이라고 한다. 삼층탑 옆 동종은 1694년에 주조했는데 이 범종에는 우리 나라 지도와 일본의 지도가 새겨져 있어 이 종을 치면 일본의 경거망동을 경고함과 동시에 우리 나라를 흥하게 한다는 이야기가 있다고 한다. 이와 같은 소문 때문에 일제 말기에는 주지스님이 문초를 당하고 종 치는 것이 금지되기도 하였다고 한다. 타종 부위를 벗어난 일본 지도 일부는 닳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다.

전라도 지역을 황폐화한 정유재란때 왜군에 의해 절이 소실된데 따른 각성에서 그러한 지도를 범종에 새긴 것이라는 설이다. 실상사에서 함양 금계까지의 둘레길 3코스 19km는 지리산 둘레길 중에서도 가장 아름답다는 곳이라 일부 구간을 걷고 싶었으나 같이 간 일행이 힘들어 해서 대신 남원에서 점심을 하기로 하고 실상사를 떠났다. 둘째 날은 차 없이 걸어 다니는 형편이라 한 시간 거리의 백장암 국보 삼층석탑과 보물 석등을 보지 못한 것도 유감이었다. 그런데 버스 정류장 옆 불자들의 협동농장에서 각종 유기농 빵을 파는데 팥빵과 호밀빵을 먹어보니 서울 어느 일류 베이커리에도 전혀 뒤지지 않는 최고의 맛이었다. 의아해서 물으니 이 고장의 밀로 숙성시켜 만든 것이라고 하였다.

기회가 되면 빵 때문에라도 다시 찾고 싶은 곳이다. 아쉬움을 남겨야 다시 오게 된다고 하지 않는가 하는 생각으로 위안을 삼았다. 인월에서 버스를 갈아타고 남원에 내려 남원 음식을 맛 보고자 헤매다가 광한루 뒤편의 정통 한식집 ‘청학동 회관’에 들려 30여분을 기다린 끝에 일품요리를 먹었다. 1999년 8월 노고단-뱀사골-달궁-주천을 거쳐 12시간만에 겨우 남원에 도착하니 남원경찰서장인 동창이 어느 한식집으로 안내했는데 송이버섯과 음식들이 너무도 맛있어 아직까지도 머리에 깊이 각인되어 있었기에 다시 그런 맛을 찾아 본 것이었다.

<계속>

/최병효 전 駐 노르웨이대사, LA총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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