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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영탁족(濯纓濯足)’은 갓끈을 씻고 발을 씻는다는 의미인데 잘 알려진 바와 같이 굴원(屈原)의 '어부사(漁父詞)'에서 인용된 말이다.
“창랑의 물이 맑으면 내 갓끈을 씻고, 창랑의 물이 흐리면 내 발을 씻으리라.”
滄浪之水淸兮, 可以濯吾纓. 滄浪之水濁兮, 可以濯吾足.
세속에 물들지 않고 자연에 순응하는 초연한 삶을 비유한 ‘탁영탁족(濯纓濯足)’의 정신을 간직하고 살아가자는 의미로 어제의 용사들이 다시 뭉쳐 ‘탁사회(濯斯會)’를 결성하였다.
‘탁(濯)’은 씻는다는 의미이고 ‘사(斯)’는 지시 대명사의 성격을 갖는 말로써 여기서는 ‘영(纓)’과 ‘족(足)’을 의미하는 단어이다. 마치 사문난적(斯文亂賊)이라 할 때 ‘斯文’이 공자의 유학이나 주자의 성리학 또는 유학자를 일컫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초등학교 친구 넷이 반백의 세월이 흘러 초로의 신사가 되어 다시 만나 신흥 조직(?)을 결성하였다. 살아온 이력에 저마다의 사연을 담고 있다.
지금은 강남 대형교회의 장로로서 독실한 환자(?)가 되어버린 한 친구는 학창시절 일등이 습관이요 생활화가 되었던 모범 귀족(?)의 전형이었다. 동네에서 유일하게 잔디가 있던 마당에 탁구대가 있었던 그의 집은 우리들의 놀이터 겸 휴양지였다.
5개 국어를 자유롭게 구사하지만 전 세계 대사 중 영어 발음이 제일 안 좋다는 현직 대사 친구는 제도권에 일말의 미련 없이 도시 농부의 길을 택하였다. 자신이 태어난 집에서 증개축 한번 없이 평생을 살다가 올해 초 큰아들에게 물려주고 난생처음 이사를 하여 우리 동네 가까운 곳의 아파트 주민이 되었다.
고딩 때 딱 한 번을 제외하고는 평생 수학 문제를 틀려본 적이 없어 선생님보다 수학을 더 잘한다고 소문났던 수학 천재 친구는 인생이 수학 공식처럼 풀리지 않아 수학에 회의(?)를 느끼고 지금은 속세를 떠난 채 은둔형 원시인으로 살고 있다.
반성문을 전담하여 반성문의 달인이라 불렸던 독고다이 트러블 메이커는 모두의 예상을 깨고 고전학자가 되어 술좌석에서 쌩구라(?)로 여전히 좌중을 압도하고 있다.
발족기념의 첫 번째 행사로 현충원을 참배(?)하는 대신 어린 시절 우리를 살뜰하게 챙겨 주시던 귀족 친구의 자당(慈堂)께 인사들 드리기로 하였다. 거의 반세기 만의 일이었다. 자당께서는 선수촌 아파트에 홀로 사시는데, 여전히 자애로우시고 기품이 있으셨다. 너무 늦은 인사가 몹시 송구한 일이었지만, 이런 날이 우리에게 주어졌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일이었다.
바람 없이 하늘 맑아 햇살 가득한 가을날, 우리의 청춘은 여전히 진행형이었다. 서촌의 한 아지트에서 밤이 늦도록 약초 막걸리를 마시며 교회 일로 먼저 줄행랑을 친 귀족 친구의 뒷담화와 함께 쓰라린 인생 실패담(?)을 나누다가 다음 달 해양전지훈련(?)을 약속한 뒤에 파하였다.
이날 실패담 중에 왕재수(?)는 대사 친구의 발언이었다. 차마 약이 올라 여기에 옮겨놓지는 못하겠다. 지금 생각해도 얄궂은 미소만이 엷게 피어 오른다.
‘어초문답도(魚樵問答圖)’라 불리는 작품으로 모두 간송미술관 소장품들인데 외형적으로는 ‘어부와 나무꾼의 한가로운 이야기’ 같지만, 이들이 묻고 답하는 것은 오늘의 수확량이나 내일의 날씨 따위의 이야기가 아니다. 세상을 다스리는 이치와 인간의 처세에 대한 도리를 선문답 같은 대화로 풀어내는 현철한 은자의 삶을 비유한 그림이다. ‘어부’와 ‘초부’의 대담형식을 빌려 자신의 사상을 피력한 소동파의 ‘어초한화(漁樵閑話)’가 이 화제의 중요한 모티브이다. ‘굴원’으로 살 것인가 ‘어부’로 살 것인가.
젊은 날 이 다른 두 명제 때문에 깊은 고뇌에 빠져 헤어나지 못할 때가 있었다. ‘원칙’이냐 ‘타협’이냐 하는 이분법에서 벗어나지 못해 늘 인생을 겉도는 아웃사이더가 되고 말았지만, 이젠 나도 귀가 순해질 나이가 되었다.
‘초부’는 산수의 자연을 좋아하는 지자(智者)요, ‘어부’는 강호의 자연 속에서 세월을 낚는 인자(仁者)의 상징이라는 설도 있으나 어떤 형태의 것이든 세속을 버리고 은둔한다는 것이 결코, 쉽지만은 않은 일이다. 그러나 탁류에 휩싸여 자신을 버리기보다는 지조를 지키며 자연을 벗 삼아 살아가는 일이 반드시 슬프고 고독한 것만도 아니다.
나아갈 자리와 물러서야 할 자리를 분명히 하여 곧은 처신으로 세상을 관조하며 살아가는 것이 비록 시대에 뒤떨어져 보일지는 몰라도 진정으로 자신의 인생을 사랑하는 길일 수 있음은 너무도 자명한 일이다.
/박황희 고전번역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