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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라 때 시인 이섭(李涉)의 ‘학림사 승방 벽에 쓰다.’라는 시이다.
‘제학림사승사 - 題鶴林寺僧舍’
종일토록 취한 듯, 꿈꾸는 듯 정신없는 가운데
갑자기 봄 지나간다는 소식에 억지로 산에 올랐네.
대숲 정원을 지나다 스님을 만나 이야기하노라니
덧없는 인생에서 반나절의 여유를 얻게 되었구나.
종일혼혼취몽간-終日昏昏醉夢間,
홀문춘진강등산-忽聞春盡强登山.
인과죽원봉승화-因過竹院逢僧話,
투득부생반일한-偸得浮生半日閑.
이섭의 시 가운데 절창으로 불리는 대목이 바로 3~4구의 “죽원(竹院)을 지나다 스님을 만나 이야기하노라니, 덧없는 인생에서 반나절의 여유를 얻게 되었구나 - ‘因過竹院逢僧話, 又得浮生半日閑’”라고 하는 이 구절이다. 판본에 따라서는 ‘투득(偸得)’이 ‘우득(又得)’으로 되어있는 이본도 있다.
어찌 되었든 시구 중 ‘투한(偸閑)’ 이라는 말은 한가로움을 훔친다는 뜻이다. ‘한가로움’이란 일이 없다고 해서 거저 생기는 것이 아니라, 바쁜 가운데 애를 써서 훔쳐내어야 비로소 내 것이 된다는 말이다.
전통시대의 시인 묵객들은 바쁜 시간을 쪼개서 어렵게 노력해야만 한가로움의 주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자득하였다. 다 늙어서 할 일이 없는 것은, 한가로운 것이 아니라 그저 무료한 것이다. 오늘 하루는 또 어찌 보내나 하고 한숨 쉬는 것은, 한가로운 상태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그런 무료함 속에서는 결코 ‘정관자득(靜觀自得)’의 오묘한 신비를 체험할 수가 없다. ‘투한(偸閑)’ 할 수 있는 용기와 ‘망중투한(忙中偸閑)’을 지향하는 슬로우 라이프에 대한 의지가 없이는 ‘정관(靜觀)’하는 일 자체가 불가하겠지만, ‘자득(自得)’을 원하는 삶 또한 로또를 꿈꾸는 허망한 공상에 불과할 뿐이다.
‘백수도 과로사’한다는 무한 경쟁의 시대에 바쁘게 일하기보다 한가함을 즐기는 것이 오히려 훨씬 더 어려운 노릇이 되어 버렸다. 잠시라도 여유를 부리고 일상에서 벗어나기라도 할라치면 금방이라도 도태되어 버릴 것 같은 불안감이 가득하다. 스스로는 ‘자유 하다’고 하나, 자신이 시간의 주인이 아닌 시간에 종속된 삶의 노예였음을 금방 깨닫게 된다.
고려말 백운거사 이규보(李奎報)는 자신의 시에서 “하염없이 빠르게 세월은 흘러가지만, 다행히 ‘투한(偸閑)’ 하여 자유로이 지내노라” - 漫漫遣景迅徂征, 幸得偸閑退縱情”라고 노래하였다.
주자(朱子)는 “반일정좌 반일독서 - 半日靜坐 半日讀書”를 생활화하였다. 즉 하루의 반은 고요히 앉아 자신과 만나고, 나머지 반은 책을 읽어 옛 성현과 만나야 한다는 뜻이다. ‘정좌(靜坐)’하여 내면의 힘을 길러야만 마침내 ‘정관(靜觀)’의 내공을 갖게 되는 것이다.
북송시대의 황정견(黃庭堅)은 ‘정좌(靜坐)’의 선경을 노래하기를 ‘고요히 앉은 곳에 차 마시고 향 사르며 묘한 작용이 일 때, 비로소 물이 흐르고 꽃이 핀다. - 靜坐處茶半香初, 妙用時水流花開,’라고 하였다. ‘정좌(靜坐)’하여 ‘좌망(坐忘)’의 경지에 이르렀을 때, 비로소 정관자득(靜觀自得) 하여 물아여일(物我如一)이 되는 선경을 노래한 절창이다. 젊은 날 분초를 나눠 쓰며 앞만 보고 달리던 때가 있었다. 그렇게 살아야만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으며, 최선을 다하는 삶인 줄 알았다.
움켜쥐었던 손에서 모래알이 빠져나가듯 우정도, 사랑도, 열정도, 시간도 어느덧 모두 새어나가고 마침내 빈손이 되고 말았다. 하늘의 별도, 스치는 바람도, 들의 꽃도 미처 느껴보지 못했던 과속의 일상이었다. 숲에 어둠이 내리듯 내 인생에도 황혼이 내린다는 것을 모르고 살아온 세월이었다.
오늘, 은퇴를 앞두고 후배들의 자리를 위해 더 이상 공직을 맡지 아니하고 ‘도시 농부’의 삶을 살겠노라 선언한 현직 대사 친구와 함께 감악산엘 올랐다. 평일의 부조리한 일상 가운데서 두 사람 모두 ‘투한(偸閑)’을 감행하였다. 인생의 해 질 녘이 되어서야 비로소 슬로우 라이프의 행복을 깨달은 것이다.
/박황희 고전번역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