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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맹주산’이란 고사성어가 있다.
주막집의 개가 사나우면 손님이 없어 술이 시어진다는 뜻이다. 한 나라에 간신배가 있으면 어질고 선량한 선비가 이르지 않거나 떠나버려 결국 나라가 쇠약해지고 만다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송(宋)나라 사람 중에 술을 파는 자가 있었다. 그는 되가 아주 공정했고 손님에게도 아주 공손하였으며 술을 만드는 재주가 뛰어났다. 술도가임을 알리는 깃발도 아주 높이 걸었지만 술은 팔리지 않고 모두 시어져 버렸다. 그 이유를 이상히 여겨 평소 알고 지내던 마을의 어른 양천(楊倩)에게 자문을 하였다.
양천이 물었다.
- “당신 집의 개가 사나운가?”
- “개가 사나우면 어째서 술이 팔리지 않는 것입니까?”
- “사람들이 두려워하기 때문이라네. 어떤 사람이 자식을 시켜 돈을 주머니에 넣고 호리병을 들고 술을 받아 오게 하였는데, 개가 달려와서 그 아이를 물었다네. 이것이 술이 시어질 때까지 팔리지 않는 이유라네”
이 이야기의 출전은 <한비자(韓非子)>이다. 간신배들의 농간에 현명한 선비가 등용되지 못하는 까닭을 설명하기 위해 든 비유이다.
주막집마다 주인의 총애를 받는 충견들이 한둘씩은 있을 법한데, 도대체 무엇이 어째서 문제란 말인가?
사마천의 <사기(史記)>에 “폭군 걸왕(桀王)이 기른 개는 요(堯)임금과 같은 성인을 보고도 짖으며, 큰 도적 도척(盜跖)이 키운 자객은 허유(許由)와 같은 성인에게도 칼을 들이댈 수 있다”라고 하였다.
본시 개의 속성은 ‘선악’에 있지 않고 오직 ‘먹이’에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이 때문에 개는 자신에게 먹이를 주는 주인에게만 충성할 뿐, 그 외에는 누구든지 자신의 적으로 여길 뿐이다.
주막집 주인이 자신의 개를 여전히 사랑하는 한 그 주막의 술은 결코 쉽사리 팔리지 않을 것이다. 국가나 단체 또는 어떤 조직이든 간에 사나운 개를 자처하는 충견이 한둘쯤은 반드시 있게 마련이다. 내가 속한 공동체 또한 예외는 아니다.
충견을 자처하는 ‘맹구(猛狗)’나 물정 모르는 ‘주막집 장인’ 등은 모두 자신의 고객인 ‘주당’에 대한 예의를 상실한 부류들이다. 주당들이야 돈이 없을지언정 어디 주막이 없어 술을 못 마시겠는가?
오라는 곳은 없어도 갈 곳이 천지인 세상에 주당이 ‘맹구(猛狗)’ 때문에 주막을 옮겨야 한다는 게 말이나 되겠는가 말이다.
요즈음 우리는 도처에 넘쳐나는 ‘맹구(猛狗)’와 눈먼 ‘주막집 장인’ 때문에 ‘혼술족’이 늘어난다는 웃픈 시대를 살고 있다.
조선 후기의 화가인 남리(南里) 김두량(金斗樑)의 ‘삽살개(尨狗)’ 그림은 하도 유명해서 영조임금이 김두량을 총애한 나머지 그림의 화제(畫題)를 직접 써주었으며, ‘남리(南里)’라는 호를 하사하기까지 하였다 한다. 화제의 한자어는 이와 같다.
柴門夜直 是爾之任 (시문야직 시이지임)
如何途上 晝亦若此 (여하도상 주역약차)
癸亥 六月 初吉 翌日 (계해 유월 초길 익일)
원문의 내용을 풀어보면 이렇다.
“사립문에서 밤을 지키는 것이 너의 임무이거늘,
어찌하여 길 위에서 대낮에 이렇게 짖고 있느냐”
밤에 도둑을 지켜야 할 자신의 본분을 망각한 채, 대낮에 손님을 쫓아내고 있는 사나운 개가 혹여 자신이 아닌지 늘 경계하고 살펴야 할 일이다.
/박황희 고전번역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