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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벌구’와 무신불립(無信不立)

최준호 칼럼
요즘 저잣거리에서 ‘입벌구’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 처음 듣는 순간 의미를 잘 몰라 한 다리 건너 알게 된 세상사 밝은 지인에게 전화를 돌렸다. 답이 바로 나왔다. 

‘입만 벌리면 구라’라는 의미로, 윤 정부의 거짓말 행태를 비아냥대는 신조 비속어란다. 듣고 보니 딱 맞는 말이다. ‘입벌구 대통령’, ‘입벌구 대통령실’, ‘입벌구 정부’ ‘입벌구 당대표’…

국민들로부터 이런 비아냥 백번 들어도 참 할 말이 없게 생겼다. 현 정부 출범 이후 채 1년도 안된 지금까지 대국민 상대로 어디 거짓말을 한 두번 했는가.

최근에 대통령 국가안보실이 미국에 도청됐다는 내용이 미국 주류언론에 보도됐다. 그러나 내용을 확인해서 강력히 대응해야 할 대통령실은 외려 도청이 없었다느니, 가짜 뉴스라느니 하면서 미국 입장을 두둔하고 있다. 참으로 기이한 현상이다. 

화를 내면서 강력하게 항의를 해도 모자랄 판에 도청을 한 미국이 수사를 통해 유출자를 검거, 수사를 하는데도 동맹을 이간질 하려는 세력의 정치공세라느니, 종북 종중 반미 반일 주의자들의 거짓 선동이라며 제 나라 국민들만 들복는다. 급기야 대일본 굴종외교의 당사자인 국가안보실 1차장 김태효는 언론을 향해 악의적 도청은 없었다고 주장해 국민들 가슴에 염장을 질러댔다. 

도청에도 악의가 있고 선의가 있는가. 도청에서 드러난 155mm 포탄 우크라이나 우회 수출 건도 대통령실이 거짓말로 얼버무렸지만 언론 취재 결과 사실로 확인되고 있다. 국가간의 문제는 항상 국익이 우선이다. 

미국에도 No라고 할 건 No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상대국가와 외교문제가 걸려있으면 전략적 판단으로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는 NCND 자세를 취할 수 있다. 국민들 그런것 쯤은 다 이해한다. 하지만 대통령과 대통령실이 대놓고 국민들을 상대로 거짓말을 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우리가 정말 주권국가가 맞나 싶을 정도다. 

엊그제 국회에 출석한 경제부총리 추경호는 이수진 의원의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무역수지 국가 1, 2위이던 중국이 지금은 무역적자 꼴찌를 기록하고 있는데 이는 성급한 탈중국 선언 때문이 아닌가”라는 질의에 대해 “탈중국 선언한 적 없다”고 말했다. 

명백한 거짓말이다. 지난해 6월 나토회의에 참석한 대통령을 수행한 최상목 경제수석은 20년간 누려왔던 중국 수출 호황시대는 끝났다”고 선언했고 한덕수 총리는 중국이 경제보복에 나설 가능성도 없다고 생각하지만 중국이 불만을 가지고 우리에게 경제적으로 불리한 행동을 한다면 옳은 행동이 아니라고 말하면 된다”고 했다. 

이 말에 중국관련 주가가 일제히 폭락했다. 이게 탈중국 아니면 뭐가 탈중국인가. 또 일본이 주도하는 인도태평양전략에 끼어드는 것은 중국이 환영할 일인가. 대만 급변 사태에 대비, 일본이 주도하는 필리핀 루손섬 상륙작전에 한국의 해병대를 참여시킨 것은 중국이 좋아할 일인가. 탈중국 선언, 인태전략 편승, 루손섬 상륙작전 참여 등이 결국 중국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고 이 같은 민감한 문제가 무역 보복으로 이어졌다는 것은 합리적 판단이다. 

그러니 지금 대한민국의 경제와 민생이 이렇게 힘든 것 아닌가. 이 모든 일들이 윤석열 취임 후 불과 1년도 되지 않아 벌어진 일들이다. 

한때는 지지율이 낮아도 연연하지 않겠다더니 이제는 여론조사가 과학적이고 공정하지 않으며 국민을 속이는 거란다. 그 말인즉, 여론조사를 믿지 못하겠고 자기 잘못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이며 여론에 귀를 기울이지 않겠다는 거다. 과연 천상천하 나만잘난 내맘대로 독불장군답다. 

작년에 교수들이 뽑은 올해의 사자성어는 잘못을 저지르고도 고치지 않는다는 과이불개(過而不改)였다. 지도자에게 최고의 덕목은 성찰하는 것인데 남은 임기 4년 동안 과연 성찰을 통한 국정의 잘못이 개선될까 걱정이다.

중국 노나라의 재상 자공(子貢)이 정치에 관해서 묻자 공자는 식량을 풍족하게 하고(足食), 군대를 충분하게 하며(足兵), 백성의 믿음을 얻는 일(民信)이라고 답했다. 

정치의 3대 요소를 경제, 군사, 백성의 신뢰라고 정의한 것이다. 자공이 다시 물었다. “어쩔 수 없이 순서를 정해 포기해야 한다면 셋 중에 무엇을 먼저 버려야 합니까?” 공자는 “군사를 포기해야 한다-去兵”고 답했다. 

자공이 다시 물었다. “어쩔 수 없이 순서를 정해 포기해야 한다면 둘 중에 무엇을 먼저 버려야 합니까?” 공자는 “식량을 포기해야 한다-去食”고 답했다. 그러면서 공자는 이렇게 말했다. “자고로 사람은 모두 죽게 마련이다(自古皆有死) 하지만 백성의 신뢰가 없으면 국가는 존립 자체가 불가능하다(民無信不立)” 정치가 끝까지 버려서는 안 될 것은 백성의 신뢰라는 것이다.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백성의 신뢰라는 것은 왕도정치를 주창한 공자 정치사상의 본령이다. 이처럼 ‘무신불립(無信不立)’은 믿음과 의리가 없으면 개인이나 국가가 존립하기 어려우므로 신의를 지켜 서로 믿고 의지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윤 정부가 새겨들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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