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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의 역설

고전번역학자 박황희 칼럼
“만약 현상으로서 나를 찾으려 하거나 음성으로써 나를 구하려 한다면, 이 사람은 ‘삿된 도(道)’를 행하는 사람이라. 결단코 여래를 볼 수 없느니라.”
若以色見我, 以音聲求我, 是人行邪道, 不能見如來.
- 『금강경(金剛經)』 「사구게(四句偈)」 중 삼언.

중생(衆生)은 언제나 현상에 집착하는 병을 갖고 있다. 인생의 가장 큰 오류는 ‘상(像)’에 드러난 나를 보고서, 상에 드러나지 않은 나의 근원적 참모습을 보았다고 여기는 것이다. 상에 드러난 나를 보고 나의 본질을 이해하려는 사람은 ‘바른 도(道)’를 행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러므로 여래를 볼 수 없다고 하는 말씀이다.

사람은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자신의 눈을 믿는 자는 결단코 성불할 수 없다. 예수께서도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라고 하였다.

한때 나는 예쁜 여자에 눈멀었던 적이 있었다. 나만 그런 것인지, 남들도 그런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암튼 나는 예쁜 여자가 곧 착한 여자이고, 좋은 여자일 것이라는 착각을 하고 살았던 때가 있었다. 나이가 들어 육욕이 점차 쇠락해지니 이성에 대한 환상이 현저하게 줄었다. 이젠 더 이상 예쁜 여자가 좋은 여자일 것이라는 착각은 단연코 하지 않는다. 다만 여성도 인격이 훌륭할 때, 참 아름답다는 생각을 할 뿐이다.

예쁜 여자보다 인격이 훌륭한 여성이 넘쳐나는 사회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육체를 ‘상업화’하려 하거나 ‘무력화’하여 또 다른 폭력의 도구로 사용하려는 여성들을 볼 때 참으로 혐오스럽고 흉물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최근 어느 유명변호사의 가짜 미투 사건이 세간에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나는 악의적으로 편집된 짧은 동영상을 통해 선택적 미투의 함정에 빠진 것임을 직감하였다. 그 뒤로 여러 경로를 통해 원본 동영상을 보게 되었다. 이를 통해 의도된 접근과 악의적 편집과 상대 여성이 전광훈 측 변호사로 활동 중이라는 것과 뉴시스 기자가 곧바로 실명으로 기사화한 것 등, 이 모든 것이 짜고 친 가짜 미투임을 확신하게 되었다. 그러나 자칫 논란을 키우는 일이 될까, 우려되어 포스팅을 자제하였다.

사회적으로 영향력 있는 인물을 키운다는 것은 영웅 만들기가 ‘독 안의 게’ 꼴인 우리 사회에서 공든 탑보다 어려운 일이다. 공든 탑을 부수고자 하는 불순한 세력의 의도가 있다는 것은 너무나 자명한 일이다. 그는 조선일보 폐간을 위하여 외롭게 고군분투하는 이 시대의 독립군이기 때문이다.

여성의 성적 자기 결정권은 마땅히 존중되어야 한다. 그러나 자신이 비호감이라 생각하는 남성 모두를 잠정적 범죄자로 규정할 권리는 어디에도 없다. 친근한 표현마저도 선택적 미투에 이용당하는 사회라면, 출퇴근 시 지하철에서 옷깃만 스쳐도 남성들은 모두 범죄자가 될 판이다. ‘젠더감수성’이 세상의 모든 도덕과 정의보다 우선해야 하는 가치라면, 그런 사회에 사는 남성들은 모두 한쪽 발을 지뢰 위에 얹어두고 사는 것과 다름없다. 가짜 미투는 타인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사회적 인격살인이다.

우리는 양성의 평등과 보호를 위해 사회적 ‘격리’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성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조화로운 ‘공존’의 해법을 원하는 것이다. 가짜 미투 사건으로 이미 박원순 시장을 잃었다. 자신의 육체를 ‘무력화’하여 선택적 미투의 폭력 수단으로 활용하는 꼴페미들이 참으로 혐오스럽다.

한국의 보수가 진정한 정통 보수와 무관한 것처럼 한국의 페미니스트는 정통 페미니즘과 무관하다. 한국의 보수가 민족과 자유를 지향하는 양심이 마비된 것처럼, 한국의 페미니스트는 인류애를 상실한 남성 혐오집단에 불과하다. 인간에 대한 존중과 도덕을 상실한 페미주의는 사회를 이분화하는 폭력적 수단이 되었고 인격살인의 도구가 되고 말았다.

그들은 자신들의 존재 이유를 오직 ‘차별성’에 두고 지나치게 차별성에만 의존하다가 결국은 극단적 ‘배타주의’로 흐르고 말았다. 그들이 사회에 끼친 해악으로 이제는 일반 여성들조차도 걸핏하면 자신들의 육체를 무기화하여 선택적 미투에 집착하는 소모적 투쟁이 만연하는 사회가 되었다. 문을 열고 나서는 순간 대한민국은 곳곳이 지뢰밭임을 명심하고 살아야 한다. 사는 게 너무 피곤하다.

/박황희 고전번역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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