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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번 외침을 당한 우리나라와 달리 일본은 역사상 한 번도 제대로 변고를 겪지 않았다. 그런 행운은 아마 세계에 유례가 없을 것이다.
딱 한번, 13세기 말 몽골과 고려 연합군의 침공이 있었으나 때마침 불어온 태풍으로 화를 면할 수 있었다. 그러니 70여 년 전 이맘때 연일 퍼붓는 폭격으로 여러 도시가 잿더미로 되고 마침내 외국군의 점령통치를 받게 된 사태는 일본인들에게는 초유의 참변이자 미증유의 공포였을 것이다. 하지만 고통은 오래가지 않았다. 유럽의 패전국 독일(서독)과 마찬가지로 일본이 잿더미에서 일어나 부흥을 이룩하는 데는 채 20년도 걸리지 않았다.
1964년의 도쿄 올림픽은 일본을 위한 축제나 다름없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양국 국민들의 남다른 근면, 축적된 과학기술과 산업적 기반 등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유리한 국제정치의 환경이 무엇보다 결정적이었을 것이다. 종전과 더불어 시작된 미·소간 냉전이야말로 독일과 일본에게는 구원의 손길이었다.
20세기 후반의 세계사를 이해하는 핵심어 중의 하나가 ‘냉전’이고 그 냉전의 입안자로 알려진 인물이 조지 케넌(1904~2005)이다. 그는 일찍이 미국 국무부 직원으로 들어가 독일과 소련 등지에 근무하면서 히틀러와 스탈린의 통치를 현지에서 지켜보고 세계대전의 발발을 눈앞에서 목격했다. 이런 남다른 경험을 통해 그는 단순한 외교관을 넘어 “미국 대외정책에 관해 중요하면서도 원대한 질문을 던지는 재능을 지닌 일류 전략사상가”로 성장할 수 있었다.(케넌의 책 <미국 외교 50년>에 붙인 존 미어샤이머 교수의 서문 참조.)
종전 직후 그는 마침 모스크바에 근무하고 있었는데, 이때 미국은 2차대전의 동맹국 소련을 이제부터 어떻게 대하는 것이 옳을지 혼란을 겪고 있었다. 그래서 미국 정부는 1946년 2월 소련의 최근 행동을 설명해 달라는 요청을 소련주재 대사관에 보냈고, 케넌은 ‘긴 전문’으로 이에 답했다. 이 전문에 개진된 그의 견해가 바로 유명한 ‘트루만 독트린’(1947.3.)의 이론적 기초가 되었다고 한다. 전문의 내용을 보완해서 가명으로 발표한 논문이 <소련 행동의 원천>이고, 그로부터 4년 후 한 대학에서의 연속강연을 정리한 글이 <미국 외교 50년>이다.
물론 지금 우리가 케넌의 당시 생각에 관심을 갖는 것은 70년 이상의 오랜 세월이 지났음에도 그의 관점이 미국 대외정책의 바탕 속에 현재형으로 살아 있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케넌이 보기에 20세기 미국의 안보가 의존하는 몇 가지 근본 요소가 있는데, 그 중 결정적인 것은 “역사의 많은 시기에 걸쳐 우리의 안보가 영국의 위치에 의존하고 있다”고 하는 ‘미-영 공동운명체론’이다. 그런 입장에서 그는 독일이든 소련이든 단일한 강국이 유럽 전체를 지배하지 않도록 예방하는 것, 즉 유럽대륙에 적절한 세력균형이 유지되도록 하는 것이 미국 안보에 필수적이라고 본다. 그런데 제2차 세계대전의 결과 유럽에서는 영국•독일•프랑스 등 전통적 강국들이 기진맥진해지고 오직 소련만이 압도적 강국으로 등장하게 되었다고 그는 판단했다. 그리하여 케넌은 소련 권력의 작동방식에 대한 나름의 분석을 토대로 미국이 ‘확고한 봉쇄정책’으로 나가야 하며, 이 봉쇄정책은 소련이 세계 평화와 안정을 해치려는 조짐을 보일 때마다 예외 없이 반격에 직면하도록 완벽하게 설계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케넌의 관점에서 영국의 역할을 맡은 동아시아 국가는 일본이다. 그는 20세기에 들어와 미국의 정책이 아시아대륙에서의 일본의 이익을 좌절시키는 쪽으로 점차 옮겨간 데에 의문을 제기한 국무부 내 소수의견에 공감한다. 패전의 결과 실제로 일본이 ‘섬나라’로 위축됨으로써 미국은 국무부 일부 외교관들이 우려했던 대로 “일본이 반세기 가까이 한반도와 만주지역에서 맞닥뜨리고 떠맡았던 문제와 책임을 물려받게” 되었다는 것이 케넌의 주장이다. 동북아시아에서 일본의 영향력을 몰아냄으로써 결국 그 빈자리에 소련을 불러들였다는 것이다. 여기에 이르면 우리는 소련 해체 이후 과도기를 거친 다음의 새로운 현실 즉 중국의 부상이라는 21세기의 새로운 현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고, 오바마의 ‘아시아 재균형 정책’이 미국 외교사의 어떤 맥락에 닿아 있는 것인지 짐작하게 된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