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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한국도 코로나19 엔데믹 시대에 접어들었다. 최근 Lancet Infectious Disease에 실린 한 연구는 접종 시작 후 1년간 백신이 구한 사람이 전세계적으로 약 2000만명에 달할 것으로 추정했다. 접종률이 높은 곳일수록 백신이 살린 사람의 숫자가 많았다. 안타깝게도 중저소득국가와 저소득국가의 백신접종률은 그리 높지 않았다. 만약 모든 국가의 접종률이 40%에 도달했다면 추가로 60만명을 살릴 수 있을 것이라는 추정도 같이 제시되다.
한국에서도 비슷한 효과가 관측됐다. 제가 동료들과 했던 연구의 분석 결과, 3차 접종으로 인해 오미크론 시기 확진치명률(case fatality rates)이 0.05%p 감소했다고 추정되며 이는 최소 5,000명에서 최대 12,000명의 생명을 살린 것과 동일한 수치다.
정리하면 백신은 지난 팬데믹 기간 중 수많은 생명을 살리는 긍정적인 역할을 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면역 효과가 감소하고 새로운 변이가 나타나면서 접종 초기 기대했던 ‘백신 only’ 집단면역에 의한 유행 종식은 불가능해졌다. 하지만 중증 및 사망 예방에는 백신의 효과가 컸고, ‘백신+자연감염’을 통한 혼합면역은 의료체계 부하를 최소화하면서 엔데믹으로 전환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백신의 효과(=편익)가 분명하다 해도 그로 인한 비용을 같이 고려해야 한다. 코로나19 백신 접종에는 드물게 이상반응이 따라온다. 발열, 두통, 근육통 같이 가벼운 부작용도 있지만, 아나필락시스, 심근염, 심낭염, 혈소판감소혈전증 등 중증의 이상반응도 있다. 때때로 치명적인 결과로 이어지기도 한다. 면역 반응에 의한 일시적 생리불순이나 탈모 등도 드문 이상반응으로 보고된다.
앞서 보았듯 백신의 부작용이 있는 건 사실이며 이 부작용은 백신 접종의 비용이다. 만약 비용이 백신 접종의 편익을 넘어서면 접종을 안 하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이다.
한가지 강조하고 싶은 것은 드문 부작용이 있다고 백신을 ‘독약’이라 칭할 수는 없다는 점이다. 교통사고로 많은 사람이 죽고 다치는 게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자동차가 흉기라거나, 전면 금지한다거나, 운전하는 사람들이나 자동차 생산자를 살인자라 욕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세상의 많은 행위가 위험을 수반하지만, 위험의 실현 확률이 낮고 그 편익이 충분히 크다면 위험을 감수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다. 백신 접종 역시 그렇다. 충분히 이익이 크고 위험은 감수할 만큼 작다. 개개인이 의료진의 도움 아래 스스로 판단하여 접종 여부를 결정하고 그 결과에 책임지면 된다.
앞으로 백신접종은 연 1회 정기 접종의 방향으로 변화해갈 가능성이 높다. WHO, 미국, 일본 등은 기존의 수시접종을 종료하고 특정 시기에 정기적으로 접종한다는 계획을 발표해왔다. 지난 3월엔 우리나라도 10~11월 중 한번만 코로나19 백신을 접종하는 것을 기본계획으로 발표했다. 인플루엔자(계절독감) 예방접종과 유사한 전략으로 이해하면 되겠다. 인플루엔자 백신과 유사하게, 접종권고 대상자도 접종의 이익이 큰 고령자, 기저질환자, 희망자 위주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이와 더불어 백신에 대한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지난 코로나19 유행 기간 중 백신의 효과는 과장하고 부작용은 과소평가하며, 백신패스 등 다소 강압적인 방법을 통해 접종을 독려하는 경향이 있었다. 백신에 대해 질문하지 못하게 만드는 동조압력(peer pressure)도 분명히 있었다. 이러한 ‘외부적 동기’에 의한 접종은 당장의 접종률을 올리는 데 도움이 될지 몰라도 장기적으론 백신과 보건당국에 대한 신뢰를 훼손시키고 접종 의향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안타깝게도, 최근 유니세프는 코로나19 유행을 거치며 한국의 아동 백신 접종의향이 세계에서 가장 큰 폭으로 감소했다고 보고했다. 안티백서 그룹의 활동이나 허위과장정보 유통, 언론의 선정적인 보도 등이 백신 신뢰도를 떨어뜨린 가장 중요한 요인이지만, 보건당국이 이를 효과적으로 통제하지 못하고 ‘무조건 맞으라’는 식의 의사소통을 한 것도 무시 못할 요인이다. 충분한 법적, 윤리적, 정책적 검토 없이 청소년 백신패스 같은 수단을 섣불리 도입한 것도 백신에 대한 불신을 키운 도화선이 되었다.
앞으로는 이런 실수가 반복되어선 안된다. 보건당국은 백신의 효과와 이상반응에 대해 과장하지도, 축소하지도 않은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고 그 정보를 바탕으로 한 자유로운 의사결정이 이뤄지도록 지원할 필요가 있다. 가짜 정보 유통은 적극 막아야 한다. 다른 모든 질병에 대한 백신과 마찬가지로, 코로나19 백신은 앞으로 한동안 지속될 유행에 맞서 싸울 가장 효과적인 무기이다. 이 무기를 더 잘 활용할 수 있아야 한다.
/장영욱 대외경재정책연구원 유럽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