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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한 집 건너라고 할 만큼 암환자가 많아졌음에도 의학기술 발전과 더불어 국민건강보험의 중증환자 산정특례제도 덕분에 생존율과 완치율이 크게 향상되었다. 암 진단을 받으면 수술과 항암치료, 방사선 치료라는 표준치료가 마치 당연한 수순인 것처럼 제시된다. 후유증을 최소화한 항암제나 표적치료제가 많이 개발되었다고 해도 환자 본인이나 가족 입장에서 항암치료는 불안하고 두려울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환자들이 표준치료를 선택하는 것은 신체적 후유증을 감수할 만큼 항암치료의 이익이 크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를 판단하는 근거는 ‘전문가’인 의료진의 견해와 앞서 투병한 환자들이 축적한 데이터 덕분이다. 우리는 일상에서 무수히 많은 선택의 딜레마 상태에 놓이곤 하는데 이때 판단의 기준이 되는 것은 위험을 감수할 만큼의 이익이 있는가 하는 점일 것이다.
일부 국내 과학자들과 영국의 석학이라는 이가 후쿠시마 오염수를 안전하다고 말해도 국민들이 아니다, 못 믿겠다고 외치는 것은, 청부과학이라는 생각이 들만큼 그들의 주장이 비논리적이고 무엇보다 공론화 과정에서 소외되었기 때문이다. 방사능 오염수 투기에 대한 비판적 목소리를 괴담으로 매도하고, 객관이라는 최소한의 합리성마저도 갖추지 않은 일방통행식 대처는 여러모로 2008년 광우병 사태를 떠올리게 한다.
수의학, 분자생물학, 질병역학 등 다양한 분야의 종합적인 연구를 통해 실체를 규명해야 할 광우병에 대해 당시 해당 분야 과학자들의 의견은 ‘안전하다’와 ‘안전하지 않다’로 극명하게 엇갈렸다. 정부가 나서서 객관적 검역강화를 강조했지만 국민들이 거리로 나서 범국민적 불복종 저항운동을 벌인 이유는 ‘알지 못 한다’는 것과 설령 안전하다 해도 국민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밀어붙이는 방식이어서는 안 된다는 데 있었으니 본질은 대통령과 국민의 의사결정권 싸움인 셈이었다.
MBC를 위시한 언론과 국민들은 미국산 쇠고기는 안전한가, 우리 정부는 국민건강을 최우선 가치로 삼아 제대로 협상했는가를 재우쳐 물었지만 이명박 정부나 보수신문은 광우병 괴담이라며 일부 세력의 불순한 정치적 의도로 몰아갔다. 조선일보는 “TV 등 일부 매체의 유언비어가 소재를 제공하고 반미의 운동장으로 삼으려는 세력의 움직임과 합쳐졌다”(2008.5.4.)고 매도했고 같은 날 동아일보도 “다시 촛불로 재미 보려는 좌파세력”의 선동으로 국민들이 근거없는 공포에 휩싸였다고 비난했다. 이들이야말로 과학과 검증이 필요한 사안을 정치화한 장본인들이고 지금도 똑같이 재현하고 있다.
건강한 공론화 과정을 부정하는 이들이 매번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는 것이 전문가의 의견 또는 ‘과학적·객관적인 검증’이라는 말로 반대의견을 괴담으로 매도하는 것이다. 이번 후쿠시마 오염수 시찰단은 애초에 검증이 목적이 아닌 국민을 공론의 장에서 배제, 관객으로 전락시킨 정치외교 쇼라는 점에서 부도덕한 극장정치의 전형이다. 광우병 사태 당시 국민들은 광우병 쇠고기가 유해하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 아니라 아직 잘 모르므로 안 먹겠다, 내 아이에게 못 먹이겠다는 것이었다. 설령 무해하더라도 아직은 잘 모르니 수입하지 말라는 국민의 명령이었다. 몸에 좋은 음식도 아이가 완강하게 거부하면 안 먹이는 게 옳고, 아무리 싸고 맛있는 쇠고기일지라도 국민들이 안 먹겠다면 수입을 중지하는 것이 답이다. 미국산 쇠고기를 먹고 죽은 이는 없지 않았냐며 공포괴담이었다고 공격하는 것은, 광장을 가득 메운 촛불투쟁 덕분에 30개월령 미만이라는 최소한의 안전을 보장받았음을 도외시한 태도다.
2008년 미국에서 광우병 소가 발생하면 즉각 수입을 중단하겠다 약속했던 이명박 정부는 2012년 5월 광우병 소가 발견되었을 때 검역중단과 수입중단 사이에서 갈팡질팡했다.
<계속>
/강미숙 소셜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