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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우병 사태로부터 4년이 지났음에도 전문가들의 의견은 여전히 극과 극이었다. 그만큼 식품에 대한 안전성 여부를 검증하는 것은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다. 오늘 보도에 따르면 미국에서 또다시 광우병이 발생했고 정부는 쇠고기 현물검사 비율을 현행 3%에서 10%로 확대하기로 했다고 한다. 16년 전, 전국민적인 광우병 반대 촛불이 없었대도 이렇게 차분하게 대응할 수 있었을까.
해당 분야의 과학적 지식을 가진 학자들이 학자적 양심을 걸고 말하든 특정세력의 입맛에 맞게 청부의견을 낸 것이든 극명하게 갈리는 의견 앞에서 시민들은 어느 쪽도 쉬 신뢰하기 어렵다. 오랜 시간과 다각적인 연구를 통해 보편적 결론에 이른 경우가 아니라면 ‘판단중지’하고 더 면밀하게 살피는 실증적인 태도만이 안전을 보장할 수 있다.세계적인 석학이라는 공허한 수사로 국민을 윽박지르는 자충수를 두는 정부를 바라보는 국민들은 일상이 불안하다.
사르트르는 <지식인을 위한 변명>에서 “지식인의 가장 직접적인 적은 사이비 지식인이다. 이들은 지배계급의 사주를 받아 마치 과학적 연구방법 · 연구결과인 것처럼 만들어진 조작된 논리를 통해 특수조직이 되어버린 어떤 한 집단, 어떤 이데올로기를 옹호한다”며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의 중간적 위치에서 오는 지식인의 실존적 고뇌는 피지배계급의 이해에 복무하는 실천으로 극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위원장을 제외하곤 면면을 알 수 없는 21명의 비공개 시찰단이 일본으로 도둑 출국했다. 21세기 신사유람단이라 할 그들이 현지에서 어떤 활동을 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오염수 투기를 목전에 둔 이 시점에 일본을 방문하는 것 자체가 국민을 관객으로 전락시키는 극장정치이며 명분쌓기 퍼포먼스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누가 봐도 일본 국익에 부역하는 정치쇼에 동원되어 과학이니 검증이니 하는 언어를 내세운다면, 국민의 생명을 담보로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지식 사기 범죄이자 사이비 지식인을 넘어 청부과학이라는 비난조차도 감수해야 할 것이다.
방사능 오염수 투기가 수산물 수입개방으로 이어질 것임은 삼척동자도 다 안다. 3면이 바다인 우리나라는 충청북도를 제외한 모든 지역이 바다를 끼고 있으니 수산업 종사자들의 생존권 문제는 전국적이다. ‘우리바다지키기위원회’라면서 ‘방사능 공포괴담과 후쿠시마’라는 제목으로 괴담을 유포하고, 10리터를 먹어도 문제없다면서도 그 문제없는 물을 일본에 두면 안 된다는 비논리와 무지성을 앞세워 일본을 옹호하는 국힘당은 이 나라의 집권여당인가 자민당의 2중대인가. 삼중수소니 뭐니 하는 전문적인 식견 없이도 국민은 직관적으로 안다. 국힘당은 후쿠시마 오염수 투기를 ‘과학’이라는 마술적 언어로 포장하고 싶겠지만 ‘권위에 호소하는 오류’라 비판할 수준도 안 되는 그것이야말로 괴담일 뿐이다.
다시 한 번 묻는다 “누가 의사결정권자인가?”
본질은 방사능 오염수가 과학적으로 안전한지 아닌지가 아니라 이 나라의 권력이 누구에게 있는가, 즉 의사결정권을 누가 쥐고 있는가에 있다. 후쿠시마 오염수를 방류해도 되는 이유가 아니라 우리에게 불안만 가중시키고 국제범죄라 할 만한 일에 한국 정부가 굳이 전향적인 이유는 무엇인가. 국민이 한사코 싫다는데 핵 폐수를 처리한 방사능 오염수를 마셔도 된다고 대신 홍보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리고 이 나라의 권력은 누구에게 있는가. 어떤 경우에도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최우선으로 받들 의무를 지니는 대통령과 정부가 국민의 뜻에 반해 일정도 인적 구성도 감춘 깜깜이 시찰단을 보냈으니 이제는 국민이 정부의 도전에 응전할 차례다. 그들이 통치의 대상으로 여기는 국민에게는 방사능 오염수 방류라는 일본정부의 반인륜적 반환경적 범죄에 들러리 서는 정부를 거부할 권리가 있음이다.
<끝>
/강미숙 소셜칼럼리스트 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