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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다큐는 절망에 그치지 않고 죽어가는 산호초 무덤 위 선상 레스토랑에서 유흥을 즐기는 사람들에게 다가가기 위해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하자고 말한다. 죽어가는 산호초를 기록하는 사람들은 다이버와 과학자, 포토그래퍼들이다.
이들은 수중캠페인을 만들고 편견이 없는 어린이들에게 바다에 대한 호기심을 키워주어 지구를 좋아하게 만들며 가상 잠수영상을 통해 바닷속에 대한 관심을 높여간다. 기후변화는 피할 수 없지만 그 속도는 늦출 수 있지 않냐며 사람들 속으로 스며들어 경종을 울리는 종지기를 자처한다. 최고의 시민성은 세계문제를 자기 문제로 느끼는 사람이다. 이들이 있어 세상은 더디지만 조금씩 진보해 왔고 절망 속에서 새로운 희망을 키워낸다. 여기에 핵 폐수가 흘러들면 이들의 어깨는 더 무거워지겠지만 말이다.
〈송곳〉과 〈지옥〉의 작가 최규석의 〈뜨거운 기억, 6월 민주항쟁 100℃〉(2009, 창비)라는 만화가 있다. 반공소년이었던 주인공 영호는 대학에 입학해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해 알게 되고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을 겪으며 학생운동에 가담하게 되는데 6월 항쟁에서 싸우다 감옥으로 끌려간다. 이길 수 있는 건지, 끝이 있긴 한 건지 끝이 없을 것 같아 두렵다고 하자 장기수 어르신은 이렇게 말한다.
“물은 100℃가 되면 끓는다네. 그래서 온도계를 넣어보면 불을 얼마나 더 때야 할지 언제쯤 끓을지 알 수가 있지. 하지만 사람의 온도는 잴 수가 없어. 지금 몇 도인지, 얼마나 더 불을 때야 하는지. 그래서 불을 때다가 지레 겁을 먹기도 하고 원래 안 끓는 거야 하며 포기를 하지. 하지만 사람도 100℃가 되면 분명히 끓어. 그것은 역사가 증명하고 있네”
바다가 병들면 지구가 무사하지 못할 거라는 위기감에 기록과 말하기를 멈추지 않는 사람들은 지구가 100℃라는 임계점을 넘지 않도록 안간힘을 쓰는 동시에 사람들을 행동하게 하는 100℃로, 민주주의 퇴행 앞에 스크럼을 짜는 이들도 사람의 마음을 100℃로 끌어올리려는 사람들이다. 이들이 있어 지구는 간신히 99℃를 유지하고, 이들이 있어 100℃의 희망을 가질 수 있다. 아무 말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람들도 저마다 99℃를 살고 있을 거라는 믿음, 마지막 1℃를 올려 마음을 끓게 만들 수 있는 것은 우연이라는 카이로스가 될지 4년이라는 크로노스의 시간을 보내야 할지 아무도 모른다.
그때까지 만화가는 부조리와 불평등으로 고통받는 마음을 그림으로 그려내고 가수는 노래를 지어 부르고 시민들은 일상에 충실하면서도 눈과 귀를 열어두면 된다. 어제 원주에서 열린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월요시국미사에 함께한 한 감리교 목사님은 신의 섭리보다 우연이 더 힘이 세다고 했다. 각자 자리에서 지금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을 하다보면 언젠가 99.9℃가 되었을 때 카이로스의 앞머리를 낚아채고 그가 쥔 저울과 날카로운 칼을 거머쥘 수 있으리라.
1987년 6월 항쟁 때도 시위하는 청년들에게 소 팔아 학교 보냈더니 데모나 한다며 철없는 학생 취급하고 빨갱이라고 손가락질한 이들이 다반사였다. 식당에서 병원에서 무차별적으로 주입되는 극우 종편과 극우 포장지들은 사람들을 70년대, 80년대에 묶어두려고 안간힘을 쓰고, 촛불이 있는 곳이면 그곳이 광장이든 성당이든 가리지 않고 혐오를 내면화한 이들이 등장한다. 혐오와 증오는 느닷없이 폭발하는 게 아니라 훈련되고 양성된다는 것임을 증명이라도 하듯 말이다. 광화문에서 만난 ‘시끄럽기만 한 이들’ 무리 중 한 사람을 일상공간에서 마주쳤다고 갑자기 심장박동이 빨라지는 기묘함이 혐오로 이어지지 않도록, 분노의 대상을 헷갈리지 않게 해달라고 시국미사에서 간절히 기도했다.
언제 끝날지 몰라 두렵고 흔들릴 때도 있지만 그럴 때마다 지금이 99℃라 믿는다며 99℃에서 그만두면 너무 아깝지 않냐고 허허 웃던 장기수 어르신의 역사적 낙관을 기억하자고 말이다. 사람의 온도는 잴 수 없지만 지금은 99℃, 언젠가 100℃를 꿈꾸며 곁에 있는 이에게 한 번 더 손을 내밀자고, 그것이 하루하루 지지 않고 사는 방법이라고.
<끝>
/강미숙 소셜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