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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바다는 하나다. 일본 바다, 한국 바다가 따로 없다. 후쿠시마 앞바다가 방사능으로 오염되면 세계의 바다가 오염된다. 이미 후쿠시마 원전 사고 1년 만에 밝혀진 사실이다. 2012년 5월 29일 BBC 보도에 따르면, 캘리포니아 해역의 참치에서 후쿠시마 원전사고의 영향으로 표본 참치보다 10배나 많은 방사능이 검출되었다는 연구가 발표되었다. 불과 1년 사이에 벌어진 일이다.
얼마 전 일본 교토통신은 후쿠시마 앞바다에서 세슘이 기준치 180배인 우럭을 잡았다고 보도했다. 이에 도쿄전력은 방사능 오염 물고기들이 빠져나가지 않도록 그물로 가두겠다고 밝혔다. 얼마나 엉성한 대책인가. 그물코보다 작은 물고기는 얼마든지 빠져나가는 사실을 모르고 하는 말일까. 해류를 따라서 어디든 가는 것이 바닷물이다. 그물로 바닷물도 가둘 수 있다는 말인가. 도쿄전력의 대책은 그야말로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격이다.
문제는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도쿄전력뿐 아니라 도쿄전력을 옹호하고 일본 정부를 대변하며 원전 오염수 방출을 과학이라고 우기는 한국 정부와 여당의 문제가 더 심각하다. 아니나 다를까, 우럭에서 180배 세슘이 검출된 사실이 보도되자, 여당 의원 성일종은 “그런 정주성 어류는 우리 바다에 올 가능성이 없다”고 헛소리를 하는가 하면, 해수부장관 조승환은 “근거 없는 불안감이 없도록 가까운 바다부터 먼바다까지 방사능을 촘촘하게 감시하겠다”고 둘러댔다.
도쿄전력이 그물로 우럭을 가두겠다는 것보다 더 기막힌 반응이다. 우럭에서 세슘이 과다 검출되었으면, 다른 어류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우럭이 오지 않는다고 해서 수많은 다른 어류도 오지 않을까. 바다 생태계에 대한 몰상식과 먹이사슬 체계에 관한 무지를 고스란히 드러낸 셈이다. 성일종은 ‘우리바다지키기 검증TF’ 위원장이라는데, 우리 바다가 아니라 도쿄전력 지키기 앞잡이 노릇을 하며 세계의 바다를 오염시키는 일에 깃발 들고 나섰다.
해수부장관의 대응 또한 졸속이다. 방사능이 돌고래라도 되는가. 해수부가 먼바다까지 촘촘하게 감시한다고 해서 방사능이 침투되지 않을까. 방사능이 한국 해수부의 감시가 무서워서 한국 바다에는 오지 않을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면, 초등 수준에도 못 미치는 과학지식이다. 그럼에도 정부 여당은 “과학을 바탕으로 괴담 정치를 불식시키겠다”고 뻔뻔스레 주장한다. 오염수 방류 옹호 담론은 과학이되, 반대 담론은 괴담이라는 전제 자체가 비과학적이다.
특정 사안에 대한 찬반 의견을 두고 과학과 괴담으로 나누는 인식 자체가 몰상식을 넘어선 독단이다. 방류 찬반 어느 쪽도 과학이거나 괴담은 아니다. 그것은 오염수 방류에 대한 서로 다른 판단일 뿐이다. 오염수 방류가 과학이라는 것은 일본 정부를 옹호하고자 하는 데서 비롯된 한갓 ‘과학팔이’에 지나지 않는다. 비과학적 사실을 두고 터무니없이 과학이라고 우기며 ‘과학팔이’를 하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첫째 이유는, 가장 값싼 방법으로 처리하려는 도쿄전력의 경제적 오염과 일본 정부에 동조하는 윤석열 정부의 외교적 오염, 대통령의 결정에 무조건 따르는 정부 여당의 정치적 오염에 과학까지 오염됐기 때문이고, 둘째 이유는 과학자들의 비과학적 행태 때문이다.
도쿄전력이 오염수를 바다에 방류하려는 것은 그것이 가장 값싼 방법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2016년 6월 오염수 처리 관련 전문가 회의 결과 (가) 해양방류, (나) 대기로 증발, (다) 전기분해 방출, (라) 지층주입, (마) 지하매설 등 5가지 방안 가운데 해양방류 비용이 가장 저렴하다는 결론이 났다. 도쿄전력은 이 결론에 따라 가장 경제적인 방안을 택하면서 과학적 방법인 양 위장하게 된 것이다.
외교적 오염은 윤 대통령이 자초했다. 한일정상회담 이전에는 대통령이 오염수 방류를 지지한 적이 없다. 한일회담에서 기시다 총리가 오염수 방류 협조를 요구하자, 단호하게 거절하기는커녕 오히려 “시간이 걸리더라도 한국 국민의 이해를 구하겠다”고 맞장구를 쳐버렸다.
이처럼 대통령이 기시다 외교에 끌려다니면서 국민들을 설득하기 위한 수단으로 과학이 동원된 것이다. 이때부터 과학이 외교적으로 오염되기 시작했다. 정치적 오염은 외교적 오염의 연쇄반응으로 이루어졌다. 국민의힘도 윤석열 정부 이전에는 민주당 의원들과 함께 방류 중단을 촉구하며 일본 정부를 강하게 규탄하는 결의안을 냈다. 당시 국민의힘 의원으로서 규탄 결의안의 대표발의자가 안보실장 조태용이며, 공동발의자가 김기현 대표와 박진 외교장관이다. 그런데 한일회담 이후 정부여당의 태도가 돌변했다. ‘우리바다지키기 TF’를 꾸리더니 오염수 방류는 과학이라고 우기고 반대 담론은 괴담으로 몰아붙이면서 과학이 오염되었다. 결국 규탄 발의자들이 괴담꾼이자 과학을 오염시킨 주범이 된 셈이다.
<계속>
/임재해 전 한국민속학술단체연합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