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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시마 오염수에 오염된 정치와 과학(2)

전 한국민속학술단체연합회장 임재해 칼럼
과학이 오염된 둘째 이유는 과학자들의 행태에서 비롯된다. 과학자들이 과학의 탈을 쓰고 비과학적 주장을 하는 탓에 과학이 크게 오염되었다. 가장 대표적인 보기가 “후쿠시마 오염수를 마시겠다”는 웨이드 앨리슨 교수이다. 한국원자력연구원 행사에서 그가 ‘후쿠시마 물 1리터가 있다면 마시겠다’고 하자, 국민의힘은 즉각 초청간담회를 열고 <방사능 공포괴담과 후쿠시마>를 주제로 특강하는 자리를 마련해 줬다. 그는 주최 측의 기대에 영합하여 “오염수를 1리터의 10배 정도 마실 수 있다”고 터무니없는 장담을 하며 객기를 부렸다.

과학자가 한 말이니 과학적이라고 한다면 큰 착각이다. 과학자가 농담으로 하는 말은 농담일 뿐이고 객기로 하는 말은 객기일 뿐이다. 과학자라도 기독교 신자는 창조설을 믿는다. 과학자가 창조설을 믿으므로 창조설이 과학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그들의 신앙일 따름이다. 왜냐면 과학자가 과학적으로 실험하고 검증한 데이터를 근거로 과학적 방법을 갖추어 말할 때 비로소 과학이 되는 까닭이다.

1리터든 10리터든 오염수를 실제로 마셨다고 해서 과학이 되는 것도 아니다. 설령 그가 날마다 오염수를 퍼마시고 있다고 해도 그것은 과학이 아니라 개인적 행태일 뿐이다. 오염수를 일상적으로 마신 뒤에도 건강에 무해하다는 사실이 데이터로 입증되어야 과학이다. 오염수를 마시기 전과 일정 기간 마신 이후의 건강상태를 비교해서 이상 유무를 객관적 데이터로 검증해야 비로소 과학적이라 할 수 있다.

그는 또 처리된 오염수가 “다른 물과 마찬가지기 때문에 일본에 둘 필요 없이 더 빨리 방류해야 한다”고 억지를 부렸다. 마실 만한 물이라면 최소한 생활용수나 농업용수, 공업용수로 써야 한다고 주장하며 방류를 적극 막아야 마땅하다. 그럼에도 오히려 방류를 재촉한 것은 세상에 전혀 쓸모없는 물이어서 서둘러 버려야 하는 폐기물이나 독극물이라는 사실을 스스로 입증한 셈이다.

4박5일 동안 일본을 다녀온 우리 시찰단의 시찰 결과도 과학일 수 없다. 시찰은 과학이 아니기 때문이다. 생물학에서는 오랜 관찰이 과학적 연구의 출발이다. 그러나 방사능 오염 문제는 오랜 관찰로도 밝혀질 수 없다. 직접 시료를 채취해서 방사능 물질을 분석하고 양을 측정해야 할 뿐 아니라, 그 오염수를 먹고 자란 어패류를 장기간 추적하여 방사능 잔류 양을 검증한 데이터를 근거로 결론을 내려야 비로소 과학이 된다. 우리 시찰단은 오염수 검증 장비를 가져간 것도 아니고 민간 전문가를 동행한 것도 아니며 오염수 시료를 채취하거나 검증하지도 않았다. 일본 측에서 보여주는 것만 보고 제공하는 자료만 받아왔을 따름이다. 시찰단 명단은 물론 활동 일정과 언론 취재도 비공개인 깜깜이 시찰이어서 ‘눈 감고 아옹’하는 격이다. 따라서 과학자라도 관광을 하면 관광이고 답사를 하면 답사이며 시찰을 하면 시찰일 뿐이다.

깜깜이 시찰을 과학이라고 우기는 과학자는 과학을 정치적으로 오염시킨 사이비 과학자를 넘어 정상 과학을 병들게 만드는 과학의 적이다. 원전 오염수를 바다에 방류하는 일은 인류 역사상 초유의 일이다. 따라서 아무도 그 결과를 안전하다고 장담할 수 없다. 방류 결과에 관한 데이터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방사능 물질은 사라지거나 분해되지 않고 계속 축적되는 까닭에 시간이 지날수록 오염은 더 심각해지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이 문제에 정통한 과학자일수록 판단에 겸손하지 않을 수 없다. 태평양 섬나라 18개국 포럼(PIF)에서 핵물리학, 해양학, 생물학 전문가들이 1년 동안 공동연구를 한 결과 원전 오염수의 안전성이 불확실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일본 정부에 방류 연기를 촉구했다. 현재로서는 PIF의 연구결과가 가장 믿을 만한 과학적 결론이다.

과학적 검증 이전에 상식적 판단으로도 결론은 명백하다. 그들 주장대로 마셔도 되는 물인데도, 막대한 공사비를 들여 해저터널까지 파서 바다에 버리려고 안간힘을 쓴다면 그것은 과학이 아니라 미친 짓이다. 일본 정부가 국내외의 온갖 반대를 무릅쓰고 엄청난 예산을 낭비해가며 미친 짓을 할 까닭이 없다. 일본이 오염수를 기어코 방류하려는 것은 과학이어서도 아니고 미쳐서도 아니다. 가장 분명한 이유는 그것이 버려야 할 방사능 오염수이고 가장 값싼 처리 방법인 까닭이다. 이 두 가지 이유야말로 부정할 수 없는 과학이다.

<끝>

/임재해 전 한국민속학술단체연합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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