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아담과 하와가 자식을 낳았는데, 큰아들 ‘카인’은 농사를 지었고 작은아들 ‘아벨’은 양치는 자였다. 두 아들이 각자 자기의 산물로 하느님께 제물을 드렸는데, 그들의 하느님인 ‘여호와’는 아벨의 제물은 받고 카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였다. 이에 카인이 분개하여 그의 아우를 죽였다.
나는 창세기에서 이 대목을 읽을 때마다 매우 강한 의문이 들었다. 저마다 처한 바가 다른 삶의 현장에서 자신들의 땀의 소산으로 정성껏 제물을 드렸는데, 어째서 누구의 제사는 받고 누구의 제사는 받지 아니하는가? 하는 의문이었다. 이런 질문을 내게 받은 목사들은 대체로 카인의 제사는 하느님께 합당하지 않은 인간적인 방법이며, 아벨의 제사는 믿음으로 드린 ‘피의 제사’이므로 ‘속죄양이신 예수님의 희생’을 예시하는 것이라는 등의 말로 얼버무렸다. 더 이상의 의문이나 의심은 순전하지 못한 신앙이나 믿음이 없는 불 신앙의 행태로 간주하며, 나의 말문을 막았다.
그러나 이 이야기의 소재는 ‘수메르인’들이 만든 인류 최초의 신화들 속에서도 발견된다. 이 형제의 살인 이야기의 원형은 고대 오리엔트 메소포타미아의 ‘목축의 신 두무지(Dumuzi)’와 ‘농경의 신 엔킴두(Enkimdu)’가 아름다운 ‘여신 인안나(Inanna)’를 두고 벌이는 투쟁의 이야기다. 이 신화는 명백하게 유목민과 농경민의 갈등을 소재로 하고 있으며, 여기서도 신은 유목민을 선택한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농업의 신 ‘엔킴두’와 목축의 신 ‘두무지’는 각각 농경사회를 기반으로 한 기존 토착세력과 메소포타미아 지역에 유입된 목축을 기반으로 한 유목민 세력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인다. 결국, 두무지의 승리는 새롭게 메소포타미아 지역을 점령하고 지배한 ‘셈족’ 자신들의 이야기인 셈이다.
이것은 농경 문화권을 정복한 유목민족의 신화가 반영되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성서 문화에서 승자가 되는 쪽, 곧 선한 쪽은 늘 둘째 아들이다. 둘째 아들은 나중 온 자 즉, ‘히브리인’을 상징한다. 둘째 아들이 그 땅으로 왔을 때, 이미 그 땅에는 맏아들 즉 ‘가나안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니까 맏아들 카인은 농경에 기초를 두고 있는 당시의 도시문화를 상징하는 셈이다.
메르 신화에서도 ‘엔킴두’와 ‘두무지’의 대결은 결국 ‘두무지’의 죽음으로 끝이 났다. 이러한 수메르의 신화적 전승은 히브리족에 의해 이런 식으로 변형되어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일반적으로 서구문화의 근원을 보통 ‘헤브라이즘’과 ‘헬레니즘’의 두 개의 서로 다른 연원에서 찾고 있다. 그러나 19세기부터 활발하게 이어져 온 고고학의 발굴 결과로 ‘수메르 문화’가 드러나면서 두 근원이 모두 수메르에서 나왔음이 밝혀졌다. 인류의 집단 지성과 과학이 밝혀낸 바로는 ‘수메르 문명’이 인류 역사에 가장 오래된 문화를 창조한 주인공으로 밝혀졌다.
구약성서의 에덴동산의 모델, 노아 홍수, 바벨탑 사건, 모세율법, 욥기의 비극, 시문학 등도 모두 수메르에서 나왔음이 밝혀졌다. 수메르어의 세계적 권위자인 미국의 크레머 교수는 「역사는 수메르에서 시작한다」라는 저서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수메르어는 고대 히브리 문학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설형문자로 쓰여진 문서를 복원하고 해독하면서 수메르의 신화가 「구약성서」 내용 가운데 대부분의 원형임을 알 수 있다.”
유일신교 ‘야훼’를 숭배하는 ‘유대교’가 본격적으로 나타난 것은, 기원전 700년 무렵이다. 오늘날 유대교가 그 이전 가나안 종교와 구분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바로 ‘유일신교’라는 것이다. 성서의 정체성 가운데 가장 중요한 핵심적인 사건은 바로 ‘유일신 사상’이 확립되었다는 것이다.
많은 신 중에 섬겨야 할 신은 오직 ‘야훼’ 뿐이라든지, 신은 오로지 ‘야훼’밖에 없다는 사상이든지 간에 성서에서의 이 주장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는 야훼 유일신론을 정립한 사람들이 성서를 집필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삼는 계통의 종교에서 아브라함은 기원전 2000년쯤 인물로 추측이 된다. 반면 수메르 신화에 기록된 ‘중동 대홍수’ 이야기는 히브리인이 존재도 하지 않았던 시절에 이미 그들이 겪고서 기록한 것이다.
이제 성서는 더 이상 신의 영감에 의해 쓰여져 일점일획도 오류가 없는 신비의 책이라 주장할 일이 아니다. 유대인들이 수집하고 편집하였으며, 그들의 머리와 사상에 의해 덧칠해진 인간의 기록에 불과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우리는 성서를 맹목적으로 신앙할 것이 아니라, 성서에 담겨 있는 옛 이스라엘 사람들의 종교적 사상은 무엇이며, 그것이 오늘날에 어떤 가치 있는 것인가를 심사숙고하여 버릴 것은 버리고 취할 것은 취하여, 인류의 위대한 경전으로서 인류가 축적한 한 지혜의 산물로서 바르게 자리매김해야 할 것이다. 신화가 암시하고 있는 농경민족과 유목민족의 이러한 갈등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채, 카인과 아벨이 실존 인물이었다고 생각하면서 성경을 읽는 것은 그리스나 로마신화를 실존했던 신들의 이야기로 착각하고 읽는 어리석음과 다를 바가 없다.
/박황희 고전번역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