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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로존 국가채무 위기 사태는 미국발 금융위기의 충격이 유럽으로 확산하며 시작된다. 2008년 10월 (유로화 도입국도, 유럽연합 회원국도 아닌) 아이슬란드의 은행시스템 붕괴에서 시작해 2009년에 아일랜드와 포르투갈, 이탈리아, 스페인, 그리스 등 남유럽국가들로 확산하였고, 특히 2010~2012년에 남유럽국가들에서 절정에 달했다.
유로화 체제의 붕괴와 금융 전염 등을 우려해 유럽연합과 유럽중앙은행, IMF 등이 지원에 나섰고, 특히 2012년 9월 6일 유럽중앙은행이 회원국 국채에 대한 ‘사실상 무제한 매입(Outright Monetary Transaction)’ 선언하며 진정되기 시작했다. 국내 부패언론은 유로존 국가채무 위기를 의도를 가지고 자기들 입맛에 맞춰 내용을 심각하게 왜곡하고, 이 과정에서 그리스를 제물(?)로 삼고 있다. 그래서 재정준칙은 이번 학기 학생들이 ‘세상을 보는 자기 눈’을 갖게 하는 두 번째 훈련의 좋은 교육 재료였다. 다음의 내용들은 학생들에게 질문을 던지면 학생들이 스스로 확인한 관련 자료들로 구성한 것들이다.
학생들이 문제의식을 느끼도록 국내 유포된 주장들에 대해 사실 확인부터 하였다. 첫째 유로존 위기에서 국가채무 문제는 결과이지 원인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가장 먼저 은행시스템이 붕괴한 아이슬란드부터 아일랜드, 스페인 등의 국가채무는 금융위기 직전에 독일과 비슷하거나 심지어 훨씬 낮은 수준이었다. 아이슬란드는 2000년대 초 GDP 대비 80%대에서 금융위기 직전까지 (독일과 같은) 60%대로 줄어들었고, 같은 기간에 아일랜드는 30%대에서 20%대로, 그리고 스페인도 50%대에서 30%대로 감소 추세에 있었다. 둘째, 국가채무 수준이 높은 국가들인 그리스조차 금융위기 전까지 2000년대 내내 100%대가 지속하였고, 심지어 이탈리아는 1992년 이후 100% 밑으로 하락한 적이 없었음에도 금융위기 이전까지 아무 문제가 없었다는 사실이다. 이처럼 국가채무 수준으로 유로존 위기가 설명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시켰다.
셋째, 그러면 무엇이 문제였을까를 상식적 수준에서 생각하게 하였다. 은행시스템 위기는 은행에서 돈이 갑작스럽게 대량 유출하면서 시작하였다. 항상 그렇듯이 금융위기라는 충격이 발생하면 돈은 안전한 곳으로 이동하기 시작한다. 유로화 도입 당시 이들 국가에서 채권수익률이 독일 등보다 높았기에 금융위기 이전까지 이들 국가의 은행으로 (독일 은행 등으로부터) 자본 유입이 급증하였다. 그런데 금융위기 충격이 발생하자 이들 국가의 은행들에서 자본이 유출되기 시작하며 은행시스템이 붕괴 위기에 처했고, 은행들을 구제하기 위해 해당 국가 정부는 국채를 발행해 자본을 수혈하였다. 이 과정에서 국가채무가 급증하고 자금 차입비용이 급증하며 이른바 국가채무 위기에 직면한 것이다. 해외에서 유입된 자본을 막을 수 있는 것은 국제수지 중 경상수지이다. 그런데 아이슬란드 및 아일랜드와 더불어 남유럽국가의 공통점은 금융위기 전까지 만성적인 경상수지 적자국이었다는 사실이다.
이 과정을 통해 학생들은 유로존 위기는 국가채무 위기가 아니라는 사실, 그리고 국가채무는 위기 대응 과정의 산물이라는 점을 파악하였다. 부패언론의 (의도를 가진) 엉터리 보도 그리고 잘못된 정보를 유포하는 역할을 지원한 지식장사꾼들의 심각성을 깨닫는 기회였다. 이러한 사실은 다음 네 번째 사실에서도 재확인되었다. (현재 선진국 중 일본 다음으로 국가채무 비율이 높은) 그리스의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2013년부터 지난 10년간 한 번도 170% 밑으로 내려간 적이 없다. 유로존 위기 이전보다 국가채무 비율이 높아졌고, (일본처럼) 고공행진을 계속하고 있음에도 지난 8년간 국가채무 문제는 재발하지 않고 있다. 실제로 그리스 국채 10년물 수익률은 이른바 파산 선언이 있던 2015년 6월 말 약 14.9%를 기록한 후 계속 하락하여 21년 8월에는 0.6% 밑으로까지 떨어졌다. (길게 기록할 수 없지만 그리스 파산 역시 국민 대다수가 요구한 긴축 반대와 자금지원 조건의 재협상, 채권국의 책임 분담을 뜻하는 부채 탕감 등의 실행을 내세운 좌파 정당 시리자가 집권하자 채권단의 보복성 자금지원 중단 압력의 결과였다.
이 압력에 굴복한 시리자의 정치적 몰락은 또 하나의 결과다). 코로나바이러스가 누그러지고 경제활동이 복원되며 지난 2년간 겪고 있는 인플레 상승 및 유럽중앙은행의 기준금리 인상에 따라 국채 수익률(10년물 기준)은 상승세로 전환했으나 최근까지 (한국과 차이가 없는) 3.7% 주변에서 형성되고 있다. 국가채무 비율 170%대의 나라가 지불하는 자금조달 비용이 (국가채무 비율이 그리스의 ⅓도 되지 않는) 한국과 차이가 없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