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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와 대통령 권한까지 노리는 모피아(4)

건국대학교 최배근 칼럼
두 번째는 (앞에서 지적했듯이) 국가채무 최소화와 국가지출 최소화는 동의어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정부 지출은 사회의 공공선 추구를 위해 사회가 생산한 가치의 일정 부분을 ‘사회 몫’으로 배분한 것이기에 지출을 최소화하면 사회 안정이나 발전에 해로울 수가 있다. 사회 공공선에 필요한 재정 자원을 확보하면서 국가채무를 최소화하는 방법은 사회 전체의 소득(GDP)을 증대시키거나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는 부유층에 대한 세금 부담을 늘리는 길이 있다. 후자에 대해 부유층의 조세 저항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지만 부유층의 부는 개인의 능력으로만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점, 그리고 (경제 이론적으로) 지나친 빈익빈 부익부는 성장에 부정적 역할을 할 뿐 아니라 사회 공동체의 유대와 번영에도 바람직하지 않다.

윤석열 정권이 강조하는 재정건전성의 실체는 올해 1분기 재정적자 규모에서 잘 확인된다. 역대 최고 수준이다. 윤석열 정권이 올해 1년간 목표로 잡은 재정적자 규모를 크게 추월한 이유가 (지출의 통제에도 불구하고) 세수가 심하게 감소한 데서 비롯하지 않았는가. 재정적자를 인위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4월까지 정부 지출을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약 27조 원을 줄였다. (정치와 정부에 불신이 높은) 일반인은 지출을 줄이면 좋은 것이 아닌가 생각할 수 있지만, 문제는 힘이 있는 부문에 대한 지출보다 힘이 없는 부문의 지출 조정으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세수 측면을 고려하지 않는 긴축재정은 가뜩이나 취약한 성장 기반을 훼손시킴으로써 국가채무 비율을 다시 증가시키는 악수가 된다. 그 결과 재정지출 최소주의로 재정건전성 달성은 어려울 수밖에 없다.

서론이 길어졌다. 이제부터는 추경호가 추진하는 ‘한국형 재정 준칙’의 문제점을 살펴보자. 여러 번 지적했지만, (정치검찰처럼) 모피아는 사적 혹은 조직의 이익을 위해 공공자원을 사유화하려는 경제관료 집단이고, ‘재정 준칙’ 도입은 모피아가 추진하는 ‘모피아 나라 만들기’ 프로젝트이다. 따라서 (모피아가 제도적으로 해체되지 않는 한) 재정 준칙은 정권 성격과 관계없이 추진된다. 박근혜 정권 때부터 본격적으로 추진된 재정 준칙이 문재인 정권의 홍남기 기재부에서도 계속된 이유이다. 정권 성격과 관계없이 일관되게 추진된다는 것은 민주당 등 야당 정치인 다수가 ‘재정 준칙’의 문제점을 잘 모르고 있거나 심지어 동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민주당 정치인 중 상당수가 대중 앞에서는 친서민 행보를 보이고, 안 보이는 곳에서는 친재벌 행보를 하듯이, 사실 경제관에 있어서는 국힘당과 별 차이가 없는 민주당 정치인이 많다. 이재명 대표 체제이기에 둑이 무너지지 않고 있을 뿐이다.

‘추경호표’ 재정 준칙은 윤석열 정권 출범 직후인 2022년 7월 7일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구체적인 모습을 드러냈다. 기존 재정 준칙과 차이가 있다면 모피아가 발톱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는 점이다. 이 또한 후안무치를 특징으로 하는 윤석열 정권의 속성에서 비롯한다. ‘추경호표’ 재정 준칙과 기존 재정 준칙과의 차이는 (아래 표에서 보듯이) 재정적자의 기준을 통합수지에서 관리수지로 바꾸고, 국가채무가 GDP 대비 60%가 넘으면 3%까지 허용한 재정적자 한도를 강제적으로(?) 축소하고, 이를 위해 법률로 못 박아 최고 선출권력인 대통령조차 건드리기 어렵게 하겠다는 것이다. 정부가 편성권을 갖는 예산에 대해 (또 하나의 선출 권력인) 국회 권한은 매우 제한적이다. 국회는 정부 동의 없이 각 항의 예산 규모를 늘릴 수 없고, 새로운 용도의 항목을 설치할 수 없다(헌법 57조)는 점에서 사실상 권한이 없다는 말도 과장이 아니다. 그러다 보니 예산심사권을 갖고 (표를 의식한) 지역구 예산 확보용으로 사용한다. 이러한 행위는 (선출 권력에 대한) 국민의 부정적 이미지를 만들어주기에 경제관료나 부패언론 등이 볼 때 나쁘지 않은 구조이다.

학생들이 재정 준칙의 이해와 문제점을 스스로 파악하도록 다음의 질문들을 던졌다. 첫째, 60%와 3%라는 수치를 명시적으로 도입한 나라가 유로존을 제외하고 선진국 중 또 존재하는가? 둘째, 유로존이 기준으로 도입한 60%와 3% 수치의 이론적 근거는 무엇인가? 셋째, 재정수지를 관리하는 지표를 통합수지에서 관리수지로 바꾸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관리수지는 적합한 기준인가? 넷째, 재정 준칙의 수치들을 법률로 못 박은 나라가 존재하는가? 그리고 법률로 수치들을 못 박을 때 문제점은 없는가?

첫 번째 질문에 대한 학생들 조사의 결론은 여러 나라가 건전한 재정의 필요성과 준칙의 필요성 등을 거론하고 있지만, 수치를 명시적으로 도입한 나라는 유로존 이외에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유로존이 이 수치들을 명시적으로 설정한 가장 중요한 이유는 유로화를 도입한 국가는(가장 중요한 경제정책 수단인) 통화정책을 포기했기 때문이고, 그에 따라 개별 국가는 재정정책 의존성이 커질 수밖에 없기에 재정에 대한 적절한 기준이 필요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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