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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3이었던 1986년에 체르노빌 원전사고가 있었다. 무서웠지만 그땐 어른들이 다 알아서 하겠지 했다.
그로부터 30년쯤 지나 또래 여성들에게 유행처럼 갑상선암이 덮쳤다. 검사능력 향상이 주된 이유라고 했지만 친구들 사이에선 체르노빌 원전사고가 10대 여학생들에게 영향을 미쳤다는 괴담(검증된 바는 없으니 괴이한 이야기 즉, 괴담이라고 하자)이 돌았고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내 친구들 사이에서도 갑상선암 발생빈도는 다른 질병에 비해 현저하게 높다.
초등학교 때까지도 머리에 이가 있는 아이들이 꽤 있었다. 선생님이 잘 안씻거나 이가 있어 다들 기피하는 몇몇 아이들을 앞으로 불러내 펌프기로 하얀 가루를 치곤 했다. 저 아이는 얼마나 창피할까 싶으면서도 행여 옮을까 봐 가까이 가지 못했다. 그게 DDT였다는 것은 한참 후에 알았다.
DDT는 디클로로디페닐트리클로로에탄(dichloro-diphenyl-trichloroethane)의 약자로 색깔이나 냄새가 없으며 염소 성분이 들어있어 유기염소계 살충제로 분류된다고 한다.
1874년 독일에서 처음 합성됐지만, 살충 작용이 있다는 것은 1939년 스위스의 화학자 파울 헤르만 뮐러(1899~1965)가 알아냈다. 2차 세계대전 때에는 군인과 시민들의 말라리아와 장티푸스를 예방하는 데 크게 기여했고 전쟁이 끝난 후인 1945년 10월 미국에서 살충제로 일반에 시판, 국내에도 미군과 함께 이와 벼룩 방제용으로 도입되었다. 뮐러는 말라리아와 발진티푸스 퇴치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1948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았는데 노벨재단은 시상식에서 DDT는 페니실린만큼 기적적인 약품으로 신이 준 물질이라 치하했다고 한다.
그러나 머지않아 곤충들이 살충제에 내성을 가진다는 사실이 밝혀지기 시작했다. DDT가 대량으로 살포될수록 곤충들은 빠른 속도로 내성을 가지게 되고 점점더 강한 살충제들이 필요해진 것이다. 결국 DDT는 1972년부터 사용 금지되었고 국내는 1979년 시판이 중단되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DDT 덕분에 말라리아로부터 1억 명에 달하는 인명을 구했다고 평가했으며 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는 2015년 DDT를 그룹 2A 발암물질로 분류했다. 이런 사례를 통해 우리가 얻는 교훈은 과학이 결코 완전하지 않다는 것, 틀릴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이상 네이버 지식백과 참조)
이런 사례는 또 있다. 석면은 불에 강하고 물에 녹지 않으며 단열성마저 갖춘 건축재료로 각광받았다. 하지만 미세하게 분해되어 머리카락보다 얇은 석면가루는 공기 중에 흩날리다 호흡기를 통해 깊숙한 폐조직까지 뚫고 들어가 암을 유발시키는 1급 발암물질로 규명되면서 1989년 이후 사용전면금지, 2009년부터 석면을 함유한 모든 건축재료가 사용 금지되었다. 석면 슬레이트에 삼겹살을 구워먹으면 그 맛이 일품이었다고 추억하는 분들이 많다. 방진복과 방진마스크가 필요할 정도로 인체에 유해한 석면을 불판으로 사용했던 사람들, 머리와 온 몸에 DDT를 살포당한 친구들은 건강하게 살고 있을까.
과알못인 내가 봐도 DDT와 석면은 눈앞에 보이는 이익이 분명했고 당시 과학역량으로는 규명해내지 못했으니 어쩔 수 없다 해도 과학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한 핵폐기물이 안전하다고 우기는 것만큼 웃기는 일은 없는 것 같다. 우리는 4대강 때처럼 과학과 정치가 만나면 어찌 되는지를 목도하고 있다. 사이비 과학이고 사이비 정치, 사이비 정부다. 그들은 그렇게 안전하면 당신들 대지에 뿌리고 농업용수로 쓰면 되지 않느냐는 일차원적인 문제제기조차도 답을 하지 못한다. 도대체 무슨 이득이 있어 일본을 변호하고 국민이 제기하는 의문을 괴담으로 몰고 가는가.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고 백혈병이 걸려도 산재로 인정해 줄 수 없다는데, 내 새끼 잘 키워보겠다고 가습기 살균제를 내 손으로 사서 자식의 폐에 들이부은 대가로 고통 속에 있는데, 기업도 아닌 정부가 나서서 방사성 물질이 고농도로 축적된 수산물을 자식에게 먹여도 된다고 한다. 살균제, 살충제보다 몇십 몇백배 더 나쁜 물을 안전하다며 과학을 무결점의 신인 양 들먹거린다. 괴담도 이런 괴담이 없다. 늘 과학적으로 오류가 없다 했지만 뒤늦게 '그때는 미처 몰랐다' 하는 게 어디 한두 가지인가.
후쿠시마 인근 미야기현 지사는 안전하다고 안심하진 못한다고 했다 한다. 당연하다. 도민의 건강과 안전을 위해 핵폐기물 해양투기를 반대한다고 외치지 못하는 단체장은 단체장으로서 자격을 잃었다. 과학에 완전무결이 어디 있다고 안전하다고 큰소리치는 과학자들은 손자녀들에게 미안하지도 않은지. DDT와 석면이 수십년이 지나 질병과 어떤 인과관계가 있는지 밝히기 어렵다는 게 당신들이 믿는 거라면 틀렸다. 살충제는 침묵의 봄을 가져왔지만 후쿠시마 핵폐수 불법해양투기는 침묵의 바다를 가져다 줄 수도 있음이다. 그 사이에 인류는 원인모를 온갖 신종 질병에 시달리겠지.
/강미숙 소셜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