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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 쪽의 불법쟁의 행위로 인한 손해에 대해서 민형사상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적극 활용하라”
노태우 정권 시기였던 1990년 10월, 최병렬 노동부장관이 기업들에게 노조 파업에 민사소송으로 대응하라며 내린 지침이다. 이것이 이른바 ‘손배폭탄’의 시작이었다. 노태우 정권은 단지 고문하고 잡아 가두는 것만으론 노동자들의 열망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첫 번째 정권이었다. 즉 독재정권이 노동자의 인간답게 살 권리를 가로막기 위해 고안했던 비열한 장치가 바로 ‘손배폭탄’이었던 것이다.
쌍용차 파업 손배소 과정에서 자살 등으로 숨진 해고자와 그 가족들만 무려 31명에 달한다. 지난 30여 년의 세월동안 얼마나 많은 이들이 하늘의 별이 되었는지 셀 수 조차 없다. 노란봉투법은 수많은 노동자와 그 가족들의 긴 죽음의 행렬이 여기까지 끌고 온, 한이 서린 법안이기도 하다.
“근로자는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하여 자주적인 단결권, 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가진다”
대한민국의 최상위 법규범인 헌법 제33조 1항의 내용이다. 대통령의 주장처럼 노란봉투법이 기존의 법체계를 뒤흔드는 법인지는, 모름지기 이 헌법 조항에 비추어서 판단해야 한다. 오늘날 수많은 간접고용 관계에서 근로조건을 실질적으로 결정하는 원청의 사용자는 면책특권을 누리고 있다. 원청 사용자를 대상으로 한 하청노동자의 파업은 ‘불법’으로 규정되며 곧바로 손배가압류 폭탄을 맞게 된다. 헌법상 권리인 단체행동권이 규범력을 가지려면 변화된 현실에 맞게 사용자 범위를 확대해야만 한다.
우리 헌법은 단체행동권을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한 권리로 규정하고 있는데, 지난 국회가 쟁의의 대상을 ‘근로조건의 결정’에 관한 사항으로 한정함으로써, 실질적으로 헌법에 규정된 노동3권을 후퇴시켜왔다. 그러나 사용자가 단체협약이나 노동법을 위반하면 이에 대해 쟁의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은 대한민국 헌법에 물을 필요도 없이, 노동권과 노동조합이 제도화된 사회에서 하나의 상식이다.
즉 노란봉투법이야말로, 윤석열 정권과 국민의힘에서 그렇게 좋아하는 ‘대한민국 정상화’ 법안인 것이다. 독재정권이 고안해내고, 정부와 대기업, 그리고 기득권 정치가 야합해 온, 지난 30여 년의 반헌법적인 노동3권 무력화시대를 이제 끝내자는 법이 바로 노란봉투법이다.
"회사가 해도 너무 한다. 이제 이틀 후면 급여 받는 날이다. 약 6개월 이상 급여 받은 적이 없지만, 이틀 후 역시 내게 들어오는 돈은 없을 것이다"
2003년, 두산중공업 배달호 열사의 유언을 곱씹어 본다. 그의 월급통장에 마지막으로 찍혔던 액수는 겨우 2만 5000원이었다. 정치의 책임 방기가 노동자의 절규로 반복되는 이 비극을 이제는 바로잡아야 한다. 하청 노동자라는 이유로,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노동조합이 없는 사업장이라는 이유로, 이미 수많은 노동자들은 상시적인 파업권 제약 상태에 있다. 아무리 노란봉투법이 통과된다고 하더라도, 이 제약 상태를 뚫고 파업을 하기 위해서는 무임금, 사용자에 의한 직장폐쇄. 영업방해 형사고발 등 온갖 불이익 조치를 각오해야 한다.
2023년의 대한민국에서 노동조합을 한다는 것이 어떠한 각오를 담보해야 하는 일인지, 높고 편안한 책상머리에 앉아계시는 분들은 모르실 수 있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치 않다는 뜻이다. 정치는 ‘파업 만능주의’ 같은 소설같은 이야기에 휘둘릴 것이 아니라, 반인륜적 ‘손배 만능주의’를 멈춰야 할 책무가 있다. 본회의에 어렵게 부의된 노란봉투법을 21대 국회 임기 내에 반드시 통과시켜야 하는 이유이다.
/용혜인 기본소득당 상임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