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의 심각성은 미국과 비교할 때 극명하게 드러난다. 같은 시기에 미국은 금융위기 직전에 145%p까지 벌어졌다가 금융위기 이후 2012년까지 가계부채가 축소되어 양자의 격차는 74%p로 줄어들었다. 그 이후 가계부채가 다시 증가했음에도 소득 증가 속도가 더 커 팬데믹이 발발한 2020년에 64%p로 오히려 줄어들었다. 2021년 이후 확대되어 지난해 88%p로 벌어진 상태지만 그럼에도 금융위기 직전에 비해 크게 줄어들었을 뿐 아니라 특히 한국의 격차에 비하면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작다. 금융위기 이후 가계부채 조정이 제대로 진행된 결과다.
이러한 격차 차이는 소득과 자산 가치의 격차에 그대로 반영되었다. 미국에서 부동산가격이 본격적으로 재상승하기 시작한 1995년 기준 지난해까지 한국 가계의 부동산자산은 7배가 증가하였으나 미국 가계의 부동산자산은 5배가 증가했다. 가계 소득과 가계 부동산자산과의 격차도 미국이 154%p, 한국이 270%p로 큰 차이를 보인다. 미국이 금융위기 이후 부동산자산의 가치 조정이 크게 진행되었으나 한국은 조정된 적이 없다.
그런데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한국의 경우 2002년 이전까지는 가계 소득의 증가 속도가 부동산 자산의 증가 속도보다 컸다는 사실이다. 과거 글에서 말했듯이 한국은 자산, 특히 부동산자산 중심의 사회이다. '부동산 공화국'이라는 말이 회자하는 배경이다. 한국 사회의 권력은 돈의 힘이 지배하는 시장으로 넘어간 지 오래되었다. '부동산 공화국'이라는 말은 돈이 부동산에서 나온다는 말이다. 힘이 돈에서 나오고, 돈이 가장 많이 모이고 만들어지는 곳이 부동산이기에 부동산을 매개로 이권 카르텔이 형성된다. 이른바 '부동산 카르텔'의 정점에 가장 힘이 센 자본, 즉 재벌자본과 금융자본이 있다. 재벌은 하나 이상의 건설회사를 갖고 있고, 거래 단위가 큰 부동산은 금융을 매개할 수밖에 없고, 은행 등 금융자본의 성장에서 (특히 자본시장이 취약한 한국 사회에서) 부동산은 핵심 담보물이라는 점에서 건설자본과 금융자본은 샴쌍둥이다.
이들로부터 이권의 일부를 배분받고 협력하는 또 다른 권력이 민간 영역에서 언론권력이고 공공영역에서 (국민이 부여한 권한을 사유화하여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검찰과 모피아 권력이다. '부동산 카르텔'은 권력과 신분의 세습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특권층 카르텔'이다. 이들은 자신들이 대한민국의 메인스트림(주인)이라고 생각하며,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말을 비웃는다.
한국에서는 군부독재가 종식되면서 (경제 운용에서 정부 역할이나 금융의 공적 기능까지 부정의 대상으로 내몰리며) 권력이 시장으로 넘어갔고, 그 결과 사회적 자산과 사적 자산의 복합체 성격을 가졌던 재벌은 (사회적 자산 성격을 배제한) 사적 자산으로 자리를 잡는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경제기획원과 재무부를 재정경제원으로 통합함으로써) 권한이 더 집중된 재정관료는 군부권력을 대신해 시장권력의 핵심으로 부상한 재벌과 결탁한다.
여기에 외환위기를 계기로 월가 자본은 한국 금융 시스템의 재구성을 요구하였고, (민영화를 통해 공적 기능의 성격이 약화된) 금융자본은 (월가를 뒷배로 삼으며) 또 하나 시장권력의 축이 된다. 이 과정에서 재벌자본과 금융자본이라는 시장권력의 이익 실현을 공적 영역에서 뒷받침하고 사적 이익을 챙기는 집단인 ‘모피아’가 형성된다. 김대중 정부에서 싹이 튼 모피아는 노무현 정부에서도 승승장구했고. 이들은 정권의 성격과 관계없이 등용되었다. 공직을 물러난 후에는 금융계나 로펌 등에서 (사실상 공직에 있을 때와) 같은 일을 수행하였고, 기회가 되면 다시 공직으로 진출하는 이른바 ‘회전문 인사’를 구조화하였다.
한국 가계부채의 디레버리징은 이리한 구조적 문제를 직시할 때만이 해결할 수 있다. '부동산 카르텔'의 이권 구조가 바로 가계 신용이 지난 30년간, 적어도 내부로부터의 조정이 일어날 수 없게 한 요인이기 때문이다. 즉 한국 사회 특권층의 경제적 이해와 직결된 것이기 때문이 다. 이처럼 '부동산 카르텔'은 부채 조정의 인위적 장애물 역할을 하고 있고, 일반 국민에게 (논리적으로 성립할 수 없는) ‘부동산 불패 신화’가 심어진 배경이다. 오늘은 지면 제약으로 그 결과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수치까지만 소개하자.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이 100% 이상인 가계부채가 올해 3월말 기준 GDP의 25% 수준인 539조 원이 넘는다. 이 '괴물'은 이른바 (부동산 가격의 지속 상승을 전제로 한) ‘폰지 금융’이다. 이러한 구조에서 '완만한 디레버리징'은 불가능하다. (혹시 가능한 방법을 아는 분이 있으면 가르침을 청한다.) 부채 증가를 억제하면서 디레버리징을 하려면 분모에 해당하는 가계소득이 증가해야 하는데 문제는 과도한 가계부채가 성장률을 낮추는 요인이 된 지 오래되었다는 점에서 어렵기 때문이다. 대부분 전문가나 정치인 등이 떠드는 소득과 일자리 증가 대책 역시 (불행스럽게도) 구호 수준에 불과하다. '거대한 리셋'이 가장 현실적인 전망이다. 왜 이렇게 되었고, '거대한 리셋'이 불가피하다면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는 다음 기회로 미루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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