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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의하지 않는 지배의 운명

해방신학연구소장 김근수 칼럼
왜 갑자기 단테를, 그리고 또 마키아벨리를 소환하고자 하는가. 대답은 간단하다. 단테와 마키아벨리를 불러와서 지금 한국 정치 현실에 대한 대답을 듣고 싶어서다. 나는 단테와 마키아벨리를 ‘정치교황’이라고 부르고 싶다. ‘정치교황’을 이해하려면 먼저 ‘문학교황’부터 알아야겠다.

독일에는 문학교황이라는 애칭(?)이 있다. 독문학자 서장원 교수에 의하면 문학교황이 정식 직위나 직업을 가리키는 명칭은 아니나 교황 말씀처럼 무게감 있게 믿고 싶은 비평가를 부르는 일종의 애칭이다. 박식함과 촌철살인은 문학교황의 특권이기도 했다. 따라서 당시 문학교황을 사랑하고 칭송하는 계층이 적지 않았다.

그런데 원래부터 문학교황이 이같은 긍정적인 의미로 시작되진 않았다. 비판 당하는 작가 입장에선 무엇인가 마음에 들지 않는 비평가를 ‘천박하고 과장하고 독선적인 문학교황’이라고 폄훼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실력 있는 비평가를 애타게 기다리기 마련이다. 그래서 ‘문학교황‘을 사랑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나는 이 ‘문학교황’에서 한걸음 나아가 ‘정치교황’을 갈구한다. 여기서 정치교황이란 언뜻 노회한 정치인을 가리키는 ‘정치 9단’의 의미와는 결이 달라도 한참 다름을 먼저 말하고 싶다.

1300년 35살 나이에 단테는 피렌체 최고 공직에 올랐다. 그는 2년 후 피렌체에서 추방되어 이탈리아 전역을 전전하다 쓸쓸하게 죽는다. 단테는 중세의 장송곡이라 불리는 대작 <신곡>을 방랑 중에 썼다.

단테는 1308년 시작하여 1320년 완성한 서사시 <신곡> 지옥 편 제8곡 일곱 번째 구덩이에 아내의 사촌오빠인 탐관오리 코르소를 밀어넣었다. 지옥은 남의 재산을 강탈한 도둑들이 영원한 형벌을 받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단테는 <신곡> 앞부분에서 자신의 정치인 생활을 후회하고 있다. “내 인생의 최전성기에 문득 길을 잃고 뒤돌아보니, 어두운 숲속에서 방황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였다.” 그리고 자책처럼 호소한다. 단테와 마찬가지로 마키아벨리 역시 작가 이전에 당대의 유력한 정치인이었다.

말하자면 작가 출신 정치인이 아니라, 정치인 출신 작가였다. 1498년 29살 나이에 마키아벨리는 피렌체 제2 서기장으로 공직에 취임했다. 그러다 1513년 그는 뜻밖에 가택 연금을 당한 상태에서 작품 <군주론>을 펴내게 된다. 마키아벨리는 1525년 펴낸 또 다른 책 <피렌체 역사>에서 1342년 피렌체에서 일어난 ‘치옴피의 반란’을 언급했다. 피렌체를 통치하던 발테르 공작은 사람들에게 선의가 아니라 굴종을 요구했고, 백성들에게 사랑받기보다 두려움의 대상이 되기를 원했다. 이때 피렌체에서 ‘치옴피’라 불리는 최하층민들이 1789년 프랑스 혁명보다 450년 가까이 앞서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게 된다. 옷감을 짜고 역한 냄새를 풍기는 염색 작업을 도맡아 하던 노동자들이었던 ‘치옴피’는 사법 정의가 실현되지 않았던 피렌체 현실에 분노하여 독재자에게 용감하게 저항했던 것이다.

마키아벨리는 최하층민들의 저항을 옹호하면서 발테르 공작에게 가상의 질문을 하고 있다. “자유가 얼마나 중요한 가치인지 숙고해 보셨습니까? 어떤 폭력으로도 굴복시킬 수 없고, 어떤 이익으로도 대체할 수 없으며, 아무리 긴 시간이 지나도 소멸되지 않는, 자유라는 이름이 얼마나 강력한 것인지 생각해 보셨습니까?”

단테는 남의 재산을 강탈한 사람들과 폭력으로 사람들을 희생시킨 자들을 비판하고 있다. 오늘 한국의 숱한 정치 평론가들은 남의 재산을 강탈한 사람들과 폭력으로 사람들을 희생시킨 자들을 비판하고 있는가. 마키아벨리는 어떤 폭력으로도 굴복시킬 수 없고, 어떤 이익으로도 바꿀 수 없고,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자유의 가치를 설파한다. 오늘 정치 평론가들은 폭력으로도 굴복시킬 수 없고, 이익으로도 바꿀 수 없고,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자유의 가치를 충분히 역설하고 있는가.

단테는 남의 재산을 강탈한 사람들과 폭력으로 사람들을 희생시킨 자들을 ‘지옥 갈 사람’으로 꼽았다. 단테는 지금 한국에서 누구를 먼저 그 부류로 지목할까. 마키아벨리는 자유의 가치를 누구에게 먼저 가르치고 싶어할까.

윤석열 대통령의 장모 최은순 씨는 350억 원대 은행 잔고 증명서를 위조한 혐의로 최근 2심 재판에서 징역 1년 형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되었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 “장모는 누구한테 10원 한 장 피해준 적이 없다”고 말한 적이 있지 않던가. “장모 사건은 과잉 수사” “억울한 면이 있다” “사기를 당했다”라고 밝힌 바 있지 않은가. 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는 “저희 어머니는 정말 바른 사람이에요, 사위가 총장이라…” 말한 적이 있지 않은가.
단테와 마키아벨리는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에게 무슨 충고를 하고 싶어할까. 그저 그렇고 그런 정치 평론가 말고, 단테와 마키아벨리처럼 정직하고 정확하게 말할 ‘정치교황’ 어디 없나. 정치 평론가도 저리 가고 ‘정치 9단’도 저리 가고, ‘정치교황’ 어서 오라.

/김근수 해방신학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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