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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해난수 - 觀海難水

바다를 직접 겪어 본 사람은 냇가에서 노는 사람들에게 물에 관하여 말하기 어렵고, 성인의 문하에서 직접 배운 사람은 시골 서생들에게 학문의 경지를 설명하기 어렵다.

觀於海者難爲水, 遊於聖人之門者難爲言. 맹자에 나오는 이야기다.

수년 전 미국에서 그랜드 캐니언을 비롯해서 7~8개의 캐니언을 둘러볼 기회가 있었다. 동서남북 360도 전방위로 끝없이 펼쳐진 대륙의 지평선을 보고서 나는 나의 보잘것없는 안목의 빈곤함에 인생의 허무를 깊게 탄식한 적이 있었다. 철저하게 조선 천동설에 갇혀 살았던 나의 안목이 겨울의 눈을 알지 못하고 죽었던 여름철의 매미와 같은 신세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대학(大學)』에서는 ‘격물치지(格物致知)’라 하였다. 주희(朱熹)는 이를 ‘사물의 이치를 궁극에까지 이르러 나의 지식을 극진하게 이른다.’라고 주석하였다.

‘치지(致知)’에 이르게 하는 ‘격(格)’ 에 대한 논쟁에는 학자들의 다양한 설이 있다.

정현(鄭玄)은 “격은 오는 것이다[格來也]”라고 하였고, 장재(張載)는 “격은 제거하는 것이다[格去也]”라고 하였으며, 정이(程頤)는 “격은 이르는 것이다[格至也]”라고 하였고, 호안국(胡安國)은 “격은 헤아리는 것이다[格度也]”라고 하였으며, 왕수인(王守仁)은 “격은 바로잡는 것이다[格正也]”라고 하였다.

이 담벼락의 좁은 공간에서 ‘격(格)’ 에 대한 논쟁의 의미를 다 설명할 순 없지만, ‘격(格)’이란 본래 가지치기한 나무를 뜻하는 글자이다. 나뭇가지를 다듬어 모양을 바로잡는다는 뜻이 확대되어 ‘바로 잡다’나 ‘고치다’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격(格)’ 자는 가지치기한 나무처럼 잘 다듬어진 사람의 성품이나 인격을 뜻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사람에게는 ‘인격(人格)’ 이 있고 물건에는 ‘품격(品格)’ 이 있고 만물에는 저마다의 고유한 ‘성격(性格)’이 있다. 또한, 상품에는 ‘가격(價格)’이 있으며, 신분이나 지위에는 ‘자격(資格)’이 있다.

조선 시대 문·무과 급제자에게는 ‘합격(合格)’이라 하였다. 이는 격에 합당한 자격을 가졌다는 말이다. 생원이나 진사와 같은 향시 급제자에게는 ‘합격(合格)’이라 하지 않고 ‘입격(入格)’이라 하였다. 이는 대과를 치를 수 있는 자격에 들어섰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세상만사 만물에는 모두 저마다의 ‘격(格)’이 있다. 인간 역시 도덕적 행위의 주체로서 품격(品格)과 자격(資格)을 갖추었을 때 비로소 인격적 인간이 되는 것이다. 더구나 격조(格調) 높은 인생을 지향한다면 도덕적 완결성뿐만이 아니라 예술적 풍류와 문화적 낭만도 갖추어야 만 할 것이다.

바다를 항해한다는 건 언제나 젊음이 약동하는 낭만이다. 그러나 낭만 이전에 목숨을 건 모험임을 깨달아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무모한 도전에 기어이 목숨을 거는 것은 갈라파고스 신드롬의 미몽에서 벗어나고 싶은 지적 호기심이 본성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레저 사업을 하는 후배의 극진한 도움으로 35인용 요트를 이틀간 임대하였다.

지난 8월 23일은 음력 7월 8일이다. 이날은 이순신 장군이 한산대첩을 승리로 이끈 날이다. 장군이 승리한 그 날 그 장소인 한산도 앞바다에서 인근의 대형 요트 선주들과 연합하여 학익진 대열을 갖추어 축포를 쏘고 불꽃놀이로 흥을 달구었다. 내 생에 처음 겪어보는 해전의 시연이었다. 이튿날 선상에서의 ‘우중 일배주’는 겪지 않고서는 설명이 불가한 선경이었다. 선상에서의 바비큐는 일찍이 육지에서 맛보지 못했던 선계의 진미였다. 누가 통영을 동양의 나폴리라 하였던가? 통영이 나폴리면 욕지도는 몬테네그로이고 사량도는 몰타이다. 나에게 통영의 한산도와 충무, 삼천포, 남해 그리고 여수에 이르는 물길인 한려수도는 지중해의 다른 이름이다.

구약 성서 전도서 11장 4절에는 이렇게 말하였다.

“풍세를 살피는 자는 파종하지 못할 것이요, 구름만 바라보는 자는 거두지 못하리라”
俟風息者, 必不播種. 望雲散者, 必不刈穫.

/박황희 고전번역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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