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직도 공산전체주의 세력과 그 기회주의적 추종 세력, 그리고 반국가 세력은 반일 감정을 선동하고 캠프 데이비드에서 도출된 한미일 협력체계가 대한민국과 국민을 위험에 빠뜨릴 것처럼 호도하고 있다.”
2023년 9월 1일 윤석열 대통령이 국립외교원 60주년 기념식 축사에서 한 이 말은 실로 귀를 의심케 한다. 윤석열 정부의 국가관과 세계관, 역사관을 간명하게 보여주는 이 말은 동판에 또렷이 새겨 두고두고 가르쳐야 할 말이다. 권위주의가 작동하는 정부에서 대통령의 말은 논리적 정합성 따위는 무시된 채 막강한 힘을 갖는다. 대통령 스스로 자신이 전체주의자임을 천명하니 이에 화답하듯 윤미향 의원을 일본의 수많은 단체들이 주최한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 100주년 추모식에 참석했다는 이유로 공격하고 대통령이 받아 반국가세력이라고 좌표를 찍었다. 참가단체 중 하나에 지나지 않은 조총련이 주최한 행사인 것처럼 호도하면서 말이다. 이 뿐인가. 여당 의원은 북한이 국내 반정부 세력이나 지하망에 ‘일본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오염수 방류에 반대하는 활동을 하라’는 지령을 내리고 있다며 국정원을 빌려 포털을 도배했다. 참으로 못되고 사악한 자들이다. 졸지에 역사를 기억하고 일본 핵폐수 방류에 반대하는 발언이나 행동을 하는 국민들을 반국가세력, 북한의 지령을 받는 꼭두각시로 전락시켰다.
그러나 이 말은 한 자도 빼지 않고 대통령에게 되돌려줘야 한다. 한 치의 비판도 허용하지 않고 의견이 다른 야당과 국민의 목소리를 괴담이나 가짜뉴스로 매도하는 태도가 전체주의가 아니면 무엇이 전체주의이며, 민주정과 법치라는 대한민국 통치의 근간을 무시하는 반헌법적인 태도를 가진 집단을 의미하는 것이 반국가세력이라면 그와 그 주변이야말로 반국가세력의 전형이라고 말이다. 어느 정부도 하지 않았던 일본과의 군사협력으로 국가와 민족의 안위를 지키라는 헌법과 국민의 명을 위배한 집단항명이자 자국의 국익보다 일본의 국익에 충실한 행태로 반일 감정을 부추기고 있으니 “반일감정을 선동”하고 가짜뉴스를 양산하는 당사자가 바로 윤석열 대통령이지 않은가. 1+1이 100이라고 우기는 것도 다름아닌 그 자신이다.
후쿠시마 핵폐수 무단투기를 강력하게 항의하지 않는 정부, 오히려 끝을 알 수 없는 핵폐수 방류가 인류에게 미칠 영향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를 괴담과 가짜뉴스로 매도하고 대통령실 예산으로 핵폐수가 안전하다고 홍보하는 정부,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피해보상금을 우리 기업에게 돈을 걷어 주겠노라며 돈만 받으면 되지 누구 돈이든 무슨 상관이냐는 천박한 인식으로 2차 가해를 서슴치 않는 정부는 도대체 어느 나라의 국민을 대표하는 정부인가. 가난과 무학을 지원해주지도, 따순 밥 한 그릇 내주지도 않은 나라를 되찾겠다고 이역만리 타향에서 풍찬노숙을 자처한 독립군 대장을 이데올로기라는 헛껍데기를 씌워 부관참시하고 강제 이주시키는 윤석열 정부는 진정 국민이 두렵지 않은 모양이다.
경제위기와 기후위기라는 난제 앞에 저마다 국익을 최우선으로 치열한 외교전쟁을 치르는 이때 우리 정부는 낡아서 더 이상 박물관에조차 보내기 민망한 반공 이데올로기를 전면에 내걸었다. 본질적으로는 친일파가 반공주의자로 완벽하게 변신한 한국의 수구세력에게는 분단이 유일한 무기임을 또 한번 확인시켰다.
애국심으로 기꺼이 과학적 연구 성과를 정치에 넘겼으나 인류의 미래를 위해 확고한 견해를 밝혔을 뿐인 오펜하이머와 조국의 독립을 위해 소련 공산당을 지렛대로 삼은 홍범도는 다른 듯 같은 사람이다. 영화에도 등장하듯 후버 국장과 함께 오펜하이머를 궁지로 몰아간 루이스 스트로스를 상무장관 인사청문회에서 낙마시킨 존 F. 케네디는 대통령으로 당선된 후 그에게 페르미상을 수여해 복권시킨다. 시상식을 열흘 앞두고 연설문을 준비하던 오펜하이머는 라디오에서 케네디가 달라스에서 피격되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잠시 침묵하던 오펜하이머는 “이제 모든 일이 산산조각 나는 것은 시간문제야”라고 했다고 한다. 어쩌면 성대하고 극진하게 모신 독립영웅과 함께 부관참시 당하는 우리도 이미 산산조각 나고 있는 중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부서지기 쉬운 것이 민주주의임을 상기한다면 산산조각나지 않게 만들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진화하는 민주주의 파괴자들에 맞서 ‘생각’을 하는 것과 파커 J. 파머의 말대로 빛과 함께 어둠의 유산을 견디며 정의를 계속 말하고 꿈꾸는 일이다. 징계라는 두려움 속에서도 동료를 믿고 응원하는 시민을 믿고 용기를 내며 공적인 삶의 전형을 보여주는 선생님들과 전 해병대 수사단장 박정훈 대령처럼 말이다. 빛과 어둠은 결코 함께할 수 없으며 어둠이 짙을수록 빛은 더욱 강렬하다는 것을 아는 현자들은 웃으며 기꺼이 이 시간을 견딜 것이다.
“수소폭탄 개발에 한 번도 도덕적 가책을 느껴본 적이 없으며, 그것을 나의 문제로 본 적이 없다”며 과학을 정치에 종속시킨 전쟁광 에드워드 텔러를 닮은 누군가를 역사의 강물에 띄울 수 있을 때까지 말이다. 과학이 군대나 정부에 예속될 경우, 무엇을 발견한다는 것은 곧 인류를 파멸시킬 위험한 도구를 쥐어주는 것이라는 각성은 위험한 권력에도 똑같이 적용되는 값비싼 교훈일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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