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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가 밥 먹여 준다(1)

건국대학교 최배근 칼럼
한국경제의 일본화 가능성은 오래전부터 우리 사회에 회자하는 담론이다. 경제지표와 사회구조 등을 보면 '일본화'는 상당히 설득력을 갖는다. 아니 이미 '일본화'가 시작되었다. 이와 관련하여 먼저 대중이 기억할만한 세 가지 이야기로 시작하자.

첫 번째 이야기. "일본 산업은 혁신을 하지 못했습니다. 일본 산업은 미래를 위한 새로운 먹거리를 창조하는 데 있어 10년을 잃었습니다. (…) 이제는 제조업이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아요. 새로운 산업이 중요한데요, 일본뿐 아니라 한국도 이런 점에서 뒤처져 있어요." 지난해 말 KBS 시사기획 '창'이 일본을 타산지석으로 삼자며 기획한 프로그램의 첫 회에 소개된 와타나베 히로시 국제통화연구소 이사장의 인터뷰다. 그는 일본의 실수를 얘기하고 있지만, "한국, 너희들도 일본의 길을 따라가고 있어"라며 말을 맺는다.

두 번째 이야기. "나는 우리의 미래에 강한 우려를 갖고 있다. 그것은 공포라고 해도 무방하다. 앞으로 고령화가 더욱 진행되면서 사회보장 재정이 궁핍해지고 경제의 생산성은 더욱 떨어질 것이다. 대외수지도 악화할 것이다. 노후 자금이 충분하지 않아 생활 보호를 신청하는 고령자 가구가 급증할 것이다. 해결책 마련이 시급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아무런 대책도 준비도 되어 있지 않다. 모두가 비정상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이 상황에서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이와 같은 상황에 대해 국민들이 목소리를 높이지 않는 것이 현재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이다. 국민은 목소리를 낼 필요가 있다." 한국 얘기처럼 들리지만, 한국 얘기가 아니다. 대장성 관료를 지낸 노구치 유키오(野口 悠紀雄)가 일본을 걱정하며 쓴 최근 칼럼(8월 28일, '왜 일본 국민은 소리를 높이지 않는가. 주식, 부동산 등 일본 자산이 폭락하는 흉악한 미래') 내용 중 일부이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 이야기는 앞의 두 이야기에 대한 답을 담고 있다. 올해 초(1월 20일) 10년 동안 (그러나 30년 전부터 일본과 관계를 맺어오며 일본인 여성과 가정을 꾸리고 세 자녀까지 두고 있을 정도로 일본 사회에 대해 잘 아는) 영국 BBC의 도쿄 특파원으로 일하던 루퍼트 윙필드-헤이즈(Rupert Wingfield-Hayes) 기자가 고국으로 돌아가는 길에 자신의 경험을 회고하며 쓴 기사가 큰 반향을 일으킨 적이 있었다. 기사 제목은 '일본은 미래였다. 그러나 과거에 갇혔다(Japan was the future, but it's stuck in the past)'이지만 '과거에 갇혔다'에 방점이 있는 회고 기사였다. 기사 말미에 소제목으로 박혀 있는 '노인이 아직도 권력을 쥐고 있다(The old are still in power)'가 '일본이 과거에 갇혀 있는' 이유를 한마디로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앞의 세 가지 이야기들에 한국을 대입하면, 마지막 기사에서 '한국이 (일본과 달리 현대사에서 세상의) 미래'였던 적이 없었던 것만 제외하면 대부분 들어맞는다. 윤석열 정권 출범 이래 모든 경제지표가 뒤로 후퇴하고 있다. 90년대 일본의 '잃어버린 10년'과 닮은 점이 많다. 예를 들어, 지난주 화요일(9월 5일) 발표된 2/4분기 (우리나라 국민이 만들어낸 소득인) 실질 국민총소득(GNI)은 전분기 대비 0.7%가 줄어들었다. 2000년대 이후 2/4분기 기준으로, 코로나 팬데믹이 발발했던 2020년의 –2.2%와 윤석열 정권이 시작한 지난해의 –0.9% 다음으로 낮은 증가율이다. 1990년대까지 확장하면 외환위기 때인 1998년 –1.7%가 더 낮았던 유일한 해였다.

윤석열 정권 출범 이래 GDP의 누적 증가율은 1.6%인 반면, GNI의 누적 증가율은 0.1%가 줄어들었다. 올해 2/4분기 실질 국민총소득(GNI)은 473.6조 원으로 2021년 2/4분기의 476.5조 원보다 약 3조 원이 줄어들었다. 2.4조 원을 정부가 줄였다. 올해 2분기 설비투자 규모인 45조 5366억 원도 2021년 2분기의 46조 5537억 원보다 1조 원 이상 줄어든 규모이다. 올해 2/4분기 수출 규모도 1558억 달러로 2021년 2분기의 1567억 달러보다 9억 달러 줄어든 규모이다. 주요 경제지표들이 '잃어버린 3년'을 가리키고 있다.

경제지표의 이러한 변화는 일본과 대조적이다. 올해 2/4분기 일본의 실질 국민총소득(GNI) 582조 600억 엔은 2021년 2/4분기의 567조 3610억 엔보다 2.6%(14.7조 엔) 증가한 규모이다. 그런데 윤석열 정권 출범 전에는 한국이 일본을 압도하였다. 예를 들어, 문재인 정권이 출범한 2017년에 비해 2021년까지 한국의 실질 국민총소득(GNI)은 7.0%가 증가한 반면 일본은 0.6%가 오히려 줄어들었다. 그런데 윤석열 정권 출범 이후 한국은 줄어들고, 일본은 증가한 것이다. 그 결과 한일 간 격차도 축소되었다. 2017년 2/4분기 기준 2021년 2/4분기에는 7.6%p에서 2023년 2/4분기에는 4.4%p로 줄어들었다. 세계경제 불황의 탓으로 돌리는 윤석열 정권이 찌질한 이유이다.

<계속>

/최배근 건국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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