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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가 밥 먹여 준다(2)

건국대학교 최배근 칼럼
문제는 이러한 '후퇴'가 일시적인 현상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윤석열 정권은 올해 들어 상반기에 정부가 성장률을 0.8%p 끌어내렸다. 2021년보다 3.2조 원 줄어든 국세 수입 감소의 결과물이다. 2000년 이래 정부의 성장기여도가 2분기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한 적은 금융위기 이후인 2009년 3, 4분기의 –0.4%와 –0.3%, 그리고 코로나 팬데믹이 있던 2020년 3분기와 4분기의 –0.2%와 –0.1%가 유일하였다.

그런데 당시 정부가 끌어내린 성장률은 2009년 0.7%p, 2020년 0.3%p로 올해보다 적었다. 문제는 지출 축소가 성장률을 다시 끌어내릴 수 있다는 점이다. 게다가 GDP 대비 국가채무 비중도 51.1%로 윤석열 정권의 올해 목표치 49.8%를 초과한 상태이다. 윤석열 정권이 최근 단기차입(돌려막기) 방식과 이자 부담을 증가시키는 방식으로 재정지출을 유지하고 국가채무를 억제하는 배경이다. 최근 발행한 엔화 외평채도 (엔화 가치가 상승할 경우) 대부분을 상환해야 하는 차기 정권에 부담으로 돌아올 가능성이 크다.

재정 파탄은 한국경제의 미래와 관련된 연구개발비의 대규모 축소로 이어지고 있다. 과기부 출연기관의 정부출연금이 올해 2조 2466억 원에서 내년에는 1조 9493억 원으로 약 3000억 원이 줄어든다. 내년 출연금 규모 또한 2021년 규모(2조 794억 원) 이전으로 돌아간 것이다. 정부 지원금의 축소는 인력 유출로 이어져 한국 과학기술 부문에 깊은 상처를 입힐 수밖에 없다. 이 정도면 한국경제의 일본화는 성장률 끌어내리기를 넘어 국가 기반을 파괴하는 수준이라는 점에서 일본보다 치명적이다. 올해 1월부터 7월까지 7개월간 월평균 일자리는 34만 9000개가 증가했다. 그런데 60세 이상 일자리가 월평균 40만 4000개가 증가하였다. 청년층 일자리는 월평균 10만 8000천개가 감소하였다.

어떤 이들은 말한다. 한국경제의 일본화가 윤석열 정권에서 시작한 것이냐고. 상당 부분은 정당한 지적이다. 고령화, 인구 소멸과 지방 소멸, 보이지 않는 산업 혁신, '충격'이 가해지면 급격히 무너질 수 있는 자산시장 등등은 윤석열 정권 이전부터 진행형이었다. 그러나 일본화 '가능성이 있었다'는 것과 '실제 일본화로 진입했다'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민주주의 추락이 분기점이었다. 민주주의가 죽은 사회는 많은 사람이 '사회 삶'(정치적 삶)을 외면한 결과물이다. 그런데 '개인 삶'을 추구하더라도 사람의 심성이 있는 한 측은지심이나 수오지심 등으로 인해 '사회 삶'을 사는 사람에 대한 미안하고 빚진 마음을 갖는다.

물론, 개중에는 '내가 뭘 잘못했어?' 하는, 이른바 (수오지심도 없는) '괴물'이 존재한다. 그리고 식민지 → 분단 → 군부독재 등 비정상 사회가 장기화하며 '괴물'의 양적 숫자가 증가했고, 여기에 비정상 사회의 뿌리 역할을 하는 조중동 등 부패언론의 지원을 업고 '괴물'은 자신을 정상이라고 주장하기 시작한다. '사회 삶'을 외면한 사람들이 가졌던, 불편한 수오지심을 내려놓을 수 있게 하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자녀들에게도 '사회 삶'을 외면하라고 요구한다. 즉 가정교육을 통해 (일베 등) '괴물'이 양산되는 배경이다. 그리고 '괴물들'은 (삶이 불안한 대중에게 결핍된) 돈의 힘에 대한 숭배를 확산시키고, 부자가 되는 대신 사회 헌신을 하는 삶을 살아간 사람을 '루저'로 이미지화하고, '돈의 힘'이 지배하는 야만적인 세습사회를 만들려 한다. 그리고 이들은 (다양한 사회적 소수자들을 공격하며 현실적 위안으로 삼는) '21세기 룸펜 프롤레타리아'를 극우 전위대로 활용한다.

극심한 자산 불평등을 낳은 부동산 카르텔 공화국의 사생아인 '한국형' 룸펜 프롤레타리아는 민주주의 실패의 산물이다. 상상을 초월한 극우 정권이 대한민국에서 출현한 것도 바로 문재인 민주당 정권에서 '특권층이 지배하는 대한민국'을 '국민이 진짜 주인인 나라'로 바꾸지 못하고, 공적 권한을 사유화한 집단을 해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부분에 대한 민주당의 반성이 없는 한 대한민국은 정권이 바뀐다고 달라질 것이 없다. 마지막으로 공허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노인들에게 바램이 있다. 대한민국을 과거에 잡아두지 마시길. (실력이 없어 자기 눈이 아니라 조중동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비겁해야 살아남을 수밖에 없었던) '과거 세대' 중 많은 이들이 비정상 사회가 장기화하며 수오지심이 없는 '괴물'로 진화하였다. 그렇지만 이들도 자기 자녀를 사랑하는 마음은 누구 못지않을 것이다. 자신들이 대한민국을 과거에 가두고 있는 '과거 세대'가 되는 순간 자기가 사랑하는 자녀의 앞길을 가로막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기를 바랄 뿐이다.

<끝>

/최배근 건국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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