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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분 대화’와 ‘허위 인터뷰’ 프레임(1)

언론인 전 한겨레 논설실장 오태규
아마 그들이 총공세를 취하기 전에 ‘신학림-김만배 씨의 72분 대화’ 전체를 듣지 못한 게 확실합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아무리 이성을 잃었다고 해도 민주주의의 대들보인 언론을 향해 ‘국기 문란’ ‘폐간’ ‘사형’ ‘원스트라이크 아웃’과 같은 어마무시한 말을 거침없이 쏟아낼 수 없었다고 봅니다.

9월 7일 <뉴스타파>가 공개한 72분짜리 대화 녹음을 꼼꼼히 듣고 33쪽짜리 녹취록까지 샅샅이 훑어본 뒤, 저 나름대로 내린 판단입니다. 둘이 나눈 대화의 전체 녹음 외에도 검찰이 자신의 주장을 입증하는 증거가 따로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어떤 경우든 신-김 두 사람이 나눈 대화가 ‘허위 인터뷰’ 여부를 가리는 핵심 열쇠라는 걸 누구도 부인하기 어려울 겁니다.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3부(강백신 부장검사)는 1일, 압수수색영장(배임수재 및 청탁금지법 위반 혐의)을 발부받아 신 씨 집과 사무실을 뒤졌습니다. 신 씨와 김 씨가 윤석열 대통령 후보를 낙선시키기 위해 ‘허위 인터뷰’(2021년 9월 15일)를 한 뒤, 이 내용을 대선 3일 전(2022년 3월 6일)에 <뉴스타파>를 통해 보도했다는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김 씨가 인터뷰 대가로 신 씨에게 1억 6500만 원을 건넸다는 게 검찰 주장의 줄거리입니다.

검찰이 수사를 개시하자 정부·여당은 기다렸다는 듯이 ‘비판언론 죽이기’ 파상 공세에 나섰습니다. 검찰의 주장대로라면 언론노조와 뉴스타파뿐 아니라 뉴스타파 보도를 인용해 보도한 <문화방송(MBC)> 등도 한꺼번에 무력화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신 씨는 윤석열 정권이 눈엣가시처럼 여기는 언론노조의 위원장 출신이고, 뉴스타파는 무소불위 검찰 권력의 가장 아픈 곳을 줄기차게 파헤쳐온 우리나라 최고의 독립탐사 미디어입니다. 문화방송은 ‘바이든-날리면’ 사건에서 볼 수 있듯이, 이 정권에서 ‘척결 대상 1호’로 꼽히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정부·여당 관계자들의 언사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격렬합니다. 이동관 방통위원장이 4일, 가장 먼저 뉴스타파의 해당 보도에 대해 “중대 범죄이자 국기 문란 행위”라고 포문을 열었습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원스트라이크 아웃’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말도 했습니다. ‘윤핵관’으로 불리는 장제원 국회 과학기술방송통신위원장은 뉴스타파의 ‘폐간’을 입에 올렸습니다.

다음 날 대통령실이 ‘고위관계자 성명’이라는 이례적인 형식으로 이 사건에 관해 의견을 밝히자 정부·여당의 언행은 더욱더 거칠어졌습니다. 대통령실은 이 성명에서 “대장동 주범과 언노련 위원장 출신 언론인이 합작한 희대의 대선 공작 사건이라는 의심을 지우기 어렵다”라면서 “이번 기회에 악습을 끊어야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을 대통령실의 ‘지침’으로 받아들인 듯, 방통위와 문화체육관광부, 서울시, 검찰, 그리고 국민의힘이 일제히 나서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대책들을 쏟아냈습니다. 방통위와 문화관광체육부는 경쟁이라도 하듯 각기 ‘가짜뉴스 근절 티에프’와 ‘가짜뉴스 퇴치 티에프’를 가동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더 나아가 방통위는 한 번만 잘못된 보도를 해도 언론사 문을 닫게 하는 ‘원스트라이크 아웃’을 위한 입법을 검토하겠다고 나섰고, 문화체육부는 <뉴스타파>의 신문법 위반 여부를 검토하겠다고 했습니다.

방통위와 문화체육부의 수장은, 각각 <동아일보>와 <중앙일보>에서 수십 년 동안 기자로 일한 언론인 출신입니다. 누구보다 언론자유의 중요성을 잘 알 수밖에 없는 위치에 있었던 사람들이 언론자유를 지키기는커녕 억누르는 데 앞장서는 모습을 보니 기가 막힐 따름입니다.
더욱 충격적인 사실은, 판사 출신인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의 극언입니다. 그는 <뉴스타파>의 보도를 “사형에 처해야 할 국가반역죄”, “1급 살인죄”라고 연일 규탄하고 있습니다. 엄밀한 증거를 바탕으로 진실을 가리는 일을 하는 민주국가 재판관이 아니라, 증거도 없이 총질부터 하는 공산주의 국가의 인민재판관 출신이 아닌가 하는 착각마저 듭니다.

<뉴스타파>의 보도가 검찰의 주장대로 대선에 영향을 끼치려고 치밀하게 계획된 공작이었는지, 아니면 <뉴스타파>의 설명대로 기사 가치가 충분한 후보 검증 보도였는지는 앞으로 법정에서 가릴 일입니다. 확정되지 않은 사실을 전제로 정부·여당이 총체적으로 나서 반헌법적이고 반민주적인 언사와 대책을 쏟아내는 것은 이성적인 자세가 아닙니다. 광기를 불러일으켜 이번 기회에 비판언론을 모조리 쓸어내겠다는 치밀하게 계획된 음모가 아니라면 말입니다.
제가 <뉴스타파>가 공개한 자료를 나름대로 촘촘하게 검토해 본 바에 따르면, 검찰의 주장에 많은 허점이 있습니다.

신-김 대화 속에는, 이 대화가 대선 공작을 위한 ‘허위 인터뷰’라는 검찰의 주장을 물리치는 내용이 수두룩합니다. 녹음 전체를 들어보면, 이것이 인터뷰가 아니라 친분이 있는 사람 사이의 사적 대화라는 걸, 삼척동자도 쉽게 알 만합니다. 더구나 신 씨는 이 대화를 김 씨의 동의도 얻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녹음했습니다. 72분 동안의 대화 도중에 김 씨가 외부에 있는 제3의 인물로부터 걸려 온 전화를 받는 것만 다섯 차례나 등장합니다. 대화를 마치고 화장실에 가서 용변을 보면서 나누는 잡담도 들어 있습니다.

<계속>

/오태규 언론인 전 한겨레 논설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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