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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사석 - 李廣射石

고전번역학자 박황희 칼럼
중국 전한 때의 맹장 이광(李廣)은 비장(飛將)이라 불렸으며, 신궁의 기예를 지녔던 사람이다. 그가 하루는 사냥을 나갔다가 취중에 야심한 밤 산길에서 맹호를 만났다.

그는 정신을 가다듬고 혼신의 힘을 다해서 호랑이를 쏘아 맞혔다. 다음 날 그 자리로 찾아가 살펴보니 화살에 맞은 것은 호랑이가 아니라 호랑이를 닮은 바위였다. 자기가 한 일이었지만 너무나 신기한 일이어서 다시 한번 바위에 화살을 쏘았으나 튕겨 나갈 뿐 두 번은 들어가지 않았다. ‘이광사석’ 즉 ‘이광이 돌을 쏘다’라는 말은 정신을 집중하면 화살이 바위를 뚫는다는 일념통암(一念通巖)의 뜻으로서, 중석몰촉(中石沒鏃), 사석성호(射石成虎)로도 불린다.

『사기(史記)』의 작가 사마천은 잘 알려진 바대로 이광의 손자 이릉(李陵)을 변호하다 무제의 노여움을 사 궁형에 처 해졌고, 이를 계기로 불후의 명작 『사기』가 탄생하였다. 그는 사기에서 이광장군(李廣將軍)을 평하기를 ‘도리불언, 하자성혜-桃李不言, 下自成蹊’라 하였다.

복숭아나 자두나무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꽃이나 열매의 향기에 끌려 사람들이 찾아들므로 그 아래에는 자연히 길이 생긴다고 하는 것이다. 아무 말 하지 않아도 뛰어난 사람이라면, 사람들이 점차 모여든다는 경우에 쓰이는 성어(成語)이다. 한 인간을 평하는 최고의 찬사가 아닐 수 없다.

궁술을 배워 사대에 오른 지 어언(?) 한 달이다. 사대에 선 첫날에 일중례(一中禮)를 하고 둘째 날 삼중례(三中禮)를 아슬아슬하게 비켜나가던 날로부터 나의 슬럼프는 시작되었다. 새로 산 활의 탄성의 강도를 이기지 못한 탓이다. 사범님은 나의 완력이 성장할 것을 고려해 내 체급보다 1~2파운드 높은 것으로 사용할 것을 권하셨다. 그러나 나는 ‘만작(滿酌)’ 이후에 ‘지사(遲射)’할 여력이 없어 줌손과 발시의 자세가 항시 불안정하였다.

화살도 중량이 낮고 다소 짧은 것을 쓰다 보니 월촉(越鏃)의 위험도 있고 번번이 과녁 중앙을 넘기기가 일수였다. 목수는 연장을 탓하지 않는다는데, 이 무능한 궁수는 활과 화살 탓만을 하다가 마침내 내 체력과 체형에 꼭 맞는 장비를 기어이 또 새로 장만하였다. ‘일시이무(一矢二無)’

한번 떠난 화살은 두 번 다시 불러들일 수 없다. 마지막 화살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딱 한 번의 화살로 끝내야 한다. 존경하는 이광 장군의 기를 모아 한발 한발에 천금의 가치를 부여하며 최선을 다하였다.
마침내 오늘, 우리 정(亭)에서 가장 불리한 신체적 핸디캡을 극복하고, 가장 단기간에, 가장 낮은 파운드의 활로 ‘삼중례(三中禮)’의 쾌거(?)를 이룩해 냈다. 육십 년 묵은 열등감이 이 한방으로 해소되었다. 내가 작호한 ‘노을에 밭을 갈다’라는 ‘하전(霞田)’이라는 나의 호가 스스로 자랑스러워 보기는 오늘이 처음이다. 드디어 인생 2막의 길이 새롭게 시작된 것이다.

남들이 하지 못하는 것을 내가 해내서 자랑스럽다는 말이 아니니 오해하지 마시라. 남들이 모두 할 수 있는 것을 나 또한 불리한 신체적 핸디캡을 극복하고 포기하지 않고 기어이 해내었기에 스스로가 대견스럽다는 말이다.

대체로 활의 장력은 47~8파운드 정도는 되어야 화살촉을 과녁의 홍심(紅心)에 직접 조준할 수 있는데, 나는 경량급 체형인지라 36파운드를 사용하기에 줌손 아래로 과녁을 조준해야 한다. 그 때문에 정확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고 탄도 역시 고각의 포물선이 될 수밖에 없다. 방향과 거리, 신체적 조건에서 모두 불리할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그간 대략 20번쯤 이중(二中)을 하였는데, 때로는 깻잎 한 장 차이로 3중(參中)을 놓치고, 때로는 김 한 장 차이로 삼중을 놓치는 일이 빈번하였다. 아무래도 장기전으로 돌입 하나 싶었는데, 마침내 오늘 사고를 친 것이다. 이젠 첫눈이 오기 전에 오시오중(五矢五中)인 ‘몰기(沒技)’를 하고 싶다. 그동안 마님 몰래 새벽에 궁정(弓亭)엘 다녔는데, 이젠 아무래도 마님께 이실직고하고 정식으로 허가를 받아야 할 듯싶다.

오늘 밤은 나의 사숙이신 ‘이광 장군’과 ‘니체 선생’을 모시고 한 잔 해야겠다.
“무슨 일을 하더라도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라. 자신을 항상 존귀한 인간으로 대하라.” 니체의 『이 사람을 보라』 중에서 

/박황희 고전번역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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