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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개발 예산 삭감의 수수께끼(2)

우리나라는 인구가 감소하기 시작했다. 조금 지나면 총인구뿐만 아니라 경제활동 인구와 취업자 수까지 노동투입량 관련 지표가 모두 하락할 것이다. 경제활동참가율과 고용율을 더 높인다고 해도 인구감소 효과를 상쇄하지는 못한다. 노동투입량만 보면 마이너스 성장 시대의 도래는 필연이다. 그렇다고 해서 국민의 평균 생활수준이 하락하는 건 아니다. 인구감소율이 더 크면 1인당 국민소득은 올라간다.
자본투입량을 늘리는 방식으로 대처할 수는 있다. 그러나 노동력과 달리 자본에는 사실상 국경이 없다. 저개발 국가들은 저임금으로 자본을 끌어들인다. 인구가 많은 나라는 소비시장의 매력으로 자본을 불러들인다. 한국은 어느 경우도 아니다. 발전한 생산기술 말고는 자본을 끌어들일 방법이 없다. 높은 수준의 생산기술을 확보하는 것 말고는 경제성장률을 높일 방법이 없다는 말이다.
정부는 생산의 주체가 아니다. 생산기술을 원하는 주체는 기업이다. 그런데 왜 정부가 연구개발 사업에 돈을 쓰는가? 연구개발 사업의 불확실성과 외부효과 때문이다. 과학 기술은 어떤 연구가 어떤 성과를 낼지, 성과를 낼 경우 그것이 어떤 산업에 어떤 기술 향상 효과를 가져다줄지 미리 알기 어렵다. 그래서 민간에만 맡겨둘 경우 연구개발 투자가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수학과 과학에 재능 있는 젊은이들이 과학이나 공학 분야가 아닌 의과대학에 몰린 지 이미 오래되었다. 의대 졸업생은 대부분 의학 연구가 아니라 진료실에서 환자를 보는 의사가 된다. 사회적 가치가 충분한 일이지만 생산기술과 국민경제를 발전시키는 외부효과는 매우 적다. 그렇다고 해서 의사가 되려는 이들을 비난할 수는 없다. 우리는 사회 발전에 기여하려고 태어나지 않았다. 어떻게 살지 선택할 권리는 각자에게 있다. 그러나 어쨌든 소위 ‘의대 집중’이 과학기술과 국민경제의 발전 가능성을 크게 제약하는 사회 현상임에는 분명하다.
다시 말하지만 생산기술은 사람이 체현한다. 정부안 그대로 연구개발 예산을 삭감한다면 과학기술 연구 인력은 줄어들고 연구 성과는 빈약해질 것이다. 그로 인해 생산기술의 발전 속도가 둔화할 것이다.
정부는 어느 사업 예산을 얼마나 삭감했고 왜 그렇게 했는지 밝히지 않는다. 희한한 일이다. 나는 이런 경우를 본 적이 없다. 전례가 있으면 누가 말해주면 고맙겠다. 과학기술계를 ‘사익 카르텔’이라고 비난한 대통령의 발언 말고는 지금까지 어떤 사유도 알려진 바 없다. 연구과제 선정이 불합리하게 이루어지거나 연구개발 예산이 비효율적으로 쓰인 경우가 없지는 않을 것이다. 불성실한 연구자가 예산을 횡령한 일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과학기술계 전체를 카르텔이라 비난하면서 연구개발 예산을 난도질해서야 되겠는가.
과학기술계는 현장 연구자들을 통해 예산 삭감 세부내역 관련 정보를 모으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를 위시한 여러 부처의 예산 담당 실무자들은 어느 사업 예산이 얼마나 어떤 경위로 잘려나갔는지 알지만 말을 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사업 예산이 절반 넘게, 심지어는 90퍼센트 깎인 사례가 조금씩 알려지고 있다. 예산을 절반 넘게 깎으면 사업을 그만두어야 한다. 정확하게 파악하려면 시간이 더 걸리겠지만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예산 81.6퍼센트를 삭감한 보건복지부의 백신개발 관련 사업을 비롯해 인공지능반도체, 양자컴퓨팅, 디지털콘텐츠산업 관련 예산이 집중 타격을 받은 듯하다. 흥미로운 일이다. 바이오‧인공지능‧양자컴퓨터‧디지털콘텐츠 산업은 이른바 ‘4차 산업혁명’의 핵심 영역이다. 하필이면 왜 그런 분야를 집중적인 예산 삭감의 표적으로 설정했을까? 누가 이런 짓을 할 동기를 가질 수 있을까? 한국경제가 망하기를 바라는 사람 말고는 없을 것이다. 대한민국 국민 누가 그런 것을 바라겠는가. 외국 간첩이라면 모를까. 
야당이 대정부 질문과 국정감사와 예산 심의를 통해 이런 의사결정이 이루어진 경위를 밝혀 주면 좋겠다. 장관과 공무원들이 자발적으로 했는지,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어쩔 수 없이 했는지 확인하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다. 만약 대통령이 지시해서 그랬다면 어느 참모가 건의했는지, 대통령이 혼자 판단해 참모들한테 지시했다면 누가 대통령에게 아이디어를 제공했는지 따져 보아야 한다. 그래야 천공이 시켰다는 등의 믿기 어려운 ‘유언비어’를 잠재울 것 아닌가. 지금 항간에는 그런 소문이 널리 퍼져 있다.
근거가 아주 없는 소문은 아니다. 천공은 올해 초 업로드 한 유튜브 <천공정법> 12709강에서 이렇게 말했다. 말의 앞뒤가 분명하지 않아서 발언 취지를 그대로 두고 문법에 맞게 문장을 정리했다. “우리나라는 과학자가 필요 없다. 과학은 연구하지 않고 보기만 하면 된다. 서양에서 열심히 연구해서 올려놓은 보고서를 보면 벌써 과학자다.” 가짜뉴스라고 할지 몰라서 덧붙인다. 정확하게 4분 5초부터 4분 20초까지다. 영상을 보면서 심한 자괴감을 느꼈다. 대통령과 정부의 의사결정 과정을 알고자 이처럼 헛소리 가득한 영상까지 봐야 한단 말인가! 공산전체주의 국가도 아닌데 어째서 용산 기자실에는 국민 대신 물어보는 기자 한 사람이 없는가? 있는데도 내가 몰라서 한 말이라면 미리 용서를 청한다. 기사로 확인할 수 없기에 하는 한탄이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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