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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힘’의 미래(1)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야당이 압승했다. 투표율은 50퍼센트 가까웠고 득표율 격차는 17퍼센트를 넘겼다. 윤석열 정부에 대한 국민의 평가가 여론조사 아닌 실제 투표로 드러난 건 6월 지방선거 이후 처음이었다. 보선 이후 여론조사 추세는 간단히 요약할 수 있다. ‘대통령 국정수행 지지율과 여당 지지율의 동반 하락’
대한민국의 집권당 ‘국민의힘’은 특정한 이념 성향과 문화를 지닌 정치집단이다. 반면 ‘국민의 힘’은 이념 성향과 무관하게 쓰는 말이다.  ‘국민의 힘’은 신뢰하지만 ‘국민의힘’은 싫어하는 사람이 많다. ‘국민의힘’ 소속 정치인들이 ‘국힘’이라는 약칭을 싫어한다는 걸 안다. 하지만 오늘 하려는 이야기의 맥락을 분명하게 하려면 둘을 구분해야 하겠기에 약칭을 쓴다. ‘국힘’의 당원과 지지자가 읽을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혹시라도 이 칼럼을 본다면 사정을 너그럽게 헤아려 주시기 바란다. 불가피하게 쓰는 약칭일 뿐이다. 비하하려는 의도는 없다.
강서구청장 보선 결과는 2020년 총선 결과와 비슷했다. 그때 민주당 후보들은 강서구의 세 선거구 모두에서 이번과 비슷한 격차로 국힘 후보들을 눌렀다. 만약 현 정부와 집권당에 대한 유권자의 평가가 지금 수준 그대로 내년 4월까지 이어진다면 국힘은 총선에서도 참패할 것이다. 종편과 유튜브 방송에 출연한 정치비평가들은 대부분 보궐선거 패배 책임자로 윤석열 대통령, 김기현 지도부, 김태우 후보를 지목했다. ‘여론조사 꽃’에 따르면 국민의 평가도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 하나 빠진 것이 있다. 국힘 당원이 자주성을 잃었고 국힘의 당내 민주주의가 무너졌다는 사실이다. 이 현상은 내년 총선 후보 공천과 국힘의 미래에 큰 영향을 줄 것이다. 그런데도 이 문제를 지적하는 이가 별로 없다. 이상한 일이다. 그래서 내가 말하기로 했다.
국힘의 보선 참패 이유는 너무 분명해서 심오한 정치학 이론이나 복잡한 데이터를 가져올 필요가 없다. 첫째, 국민은 대통령에게 불만이 많다. 취임 직후 짧은 기간을 제외하면 대통령의 국정수행에 대한 부정 평가와 긍정 평가는 늘 60:35 수준이었다. 조금 낫거나 조금 못한 때도 있었지만, 정체가 수상한 일부 여론조사기관의 몇몇 사례를 제외하면 통계 오차 범위를 벗어나지 않았다. 긍정 평가가 조금이라도 늘어나면 친윤 언론이 환호성을 지르며 국정수행 지지율이 상승했다는 보도를 무더기로 쏟아냈지만 다 헛소리였다. 윤석열 대통령은 1년 반 동안 의미를 부여할 만한 지지율 상승 계기를 단 한 번도 만들지 못했다.
대통령이 국정을 잘 운영한다고 대답한 35퍼센트 안팎의 시민들도 정말 그렇게 믿어서가 아니라 잘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을 그렇게 표현했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우리나라 유권자 열 가운데 셋 정도는 어떤 상황에서도 국힘을 지지한다. 국힘 후보가 너무 싫은 경우에도 민주당 후보를 찍느니 차라리 투표를 포기한다. 여론조사 전화를 받으면 다음 총선에서 집권당이 다수 의석을 얻을 것이라고 대답한다. 이것 역시 객관적 판단이라기보다는 주관적 희망의 표현이다.
유권자 열 가운데 셋 정도는 어떤 상황에서도 민주당을 지지한다. 민주당 후보가 너무 싫은 경우에도 작은 진보정당에 표를 주거나 투표를 포기할지언정 국힘 후보를 찍어주지는 않는다. 여론조사 전화를 받으면 대통령이 국정수행을 ‘매우 잘못’하고 있으며 다음 총선에서 야당이 다수 의석을 얻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것 역시 전적으로 객관적인 평가는 아니다. 이념적 감정적 호오(好惡)와 희망사항이 섞여 있다고 할 수 있다.
남은 넷 가운데 둘은 아예 투표를 하지 않는다. 평소 지지하는 정당이 없고 정치에 대한 관심이 희박하며 정치 문제에 관여하지도 않는다. 마지막 둘 정도가 평론가들이 매우 좋아하는 ‘스윙 보터’다. 그들은 선거 때마다 조금이라도 낫다고 믿는 정당과 후보에게 투표한다. 투표하지 않는 20퍼센트와 그때그때 지지 정당을 바꾸는 20퍼센트를 ‘무당층’ 또는 ‘중도’라고 한다.
종합하면 우리나라 유권자의 이념지형은 보수 3 진보 3 중도 4 정도로 볼 수 있다. 투표를 하지 않는 무관심층을 제외하면 3:3:2가 된다. 작년 3월 대선 때는 투표하는 중도층이 국힘과 민주당으로 거의 비슷하게 갈라졌다. 그래서 1퍼센트도 되지 않는 격차로 승패가 갈렸다. 그러나 새 정부가 출범하고 두 달이 채 지나지 않아 중도층 민심은 윤석열 대통령에게 등을 돌렸고 정치여론 지형은 60:35로 기울어졌으며 지금까지 그대로 이어졌다. 강서구청장 보선은 그 사실을 실제 득표율로 보여주었다. 투표하지 않는 무당층 때문에 득표율 격차가 17퍼센트 수준에 그쳤지만 여론 격차는 그보다 훨씬 크다고 보는 게 합리적이다. 상황이 크게 바뀌지 않는다면 투표율이 65퍼센트 안팎인 총선에서는 강서구에서 민주당과 국힘의 득표율 격차는 이번 보선보다 더 커질 것이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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