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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힘’의 미래(2)

‘스윙 보터’는 집권세력에게 불만을 느끼면 야당에 표를 준다. 윤석열 정부가 그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을 일이 하나라도 있었는지 모르겠다. 경제성장률은 OECD 회원국 가운데 꼴찌에 근접했다. 주가는 곤두박질했고 물가는 근래 보기 드문 수준으로 올랐다. 원화 가치가 폭락했는데도(달러 환율은 치솟았는데도) 무역수지는 일찍이 없었던 규모의 적자를 내고 있다. 법인세 감세와 부동산 거래 부진으로 60조 원 규모의 세수 결손이 나자 재정건전화라는 명분 아래 하필이면 국민경제의 미래를 좌우하는 연구개발 예산을 무지막지하게 칼질했다. 달러 표시 1인당 국민소득이 3년 전 수준으로 내려앉았고 민간가계의 가처분소득도 감소했으며 소득불평등 지표는 악화 일로를 걷는 중이다. 모두가 현 정부의 책임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대통령과 정부 여당이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시늉조차 하지 않는 현실을 보면서 시민들은 불안과 분노를 느끼고 있다.
대통령은 국민경제와 민생의 위기를 외면하고 정치적 막말에 가까운 독선적 언어를 쏟아냈다. 극우 이념과 부패 비리 전력을 가진 ‘아는 사람’과 검사 출신 측근으로 국가행정기관의 요직을 채웠다. 취임 1년 반이 넘도록 기자회견 한 번 하지 않았고 야당과 단 1초도 대화하지 않았다. 최측근을 법무부장관으로 임명하고 정치검사들에게 검찰 요직을 주어 민주당을 흠집내고 이재명 대표를 구속하는 일에 정치적 에너지를 쏟아 부었다. 이유 모를 집무실과 관저 변경에 1조 원이 넘는 세금을 탕진했고 영부인은 명품 쇼핑을 하며 ‘해외 문화를 탐방’했다. 이렇게 하면서 내년 총선에서 170석을 하겠다는 말을 했다고 하니, 국민을 검찰청 직원쯤으로 생각하는 게 아닌가 싶다.
집단적 의사결정 이론에서 유권자가 집권당에 실망해서 야당 지지로 옮겨 가는 것을 ‘이동성(mobility)’이라 한다. 유권자 이동성이 너무 높으면 정당들의 이념과 정책이 비슷해진다. 조금이라도 다수 국민의 여론에 어긋나면 선거에서 몰살당하기 때문이다. 유권자 이동성이 너무 낮으면 정당의 이념과 정책이 고착된다. 어떻게 하든 선거 결과는 정해져 있으니 정치인과 정당은 국민이 원하는 바를 살피지 않고 자신이 옳다고 믿는 대로만 행동한다. 유권자 이동성은 적당히 높은 게 바람직하다. 그래야 다수파의 뜻을 관철하면서도 소수파의 생존을 열어주는 다원적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유권자 이동성은 적당한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보수 진보 거대 양당이 각각 30퍼센트 선의 고정 지지층을 보유한 가운데 20퍼센트 정도의 ‘투표하는 중도층’이 선거의 승패를 좌우한다.
여론조사 흐름을 근거로 추정하면 지난 1년 반 동안 스윙 보터는 압도적으로 대통령을 비판했다. 국힘 고정 지지층이 강고하게 결속해 투표했지만 스윙 보터가 대거 민주당 손을 들어주었기 때문에 17퍼센트 넘는 득표율 격차가 났다. 이런 여론 지형에서 여당이 선거를 이기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총선을 앞두고 여론 지형이 바뀔 가능성이 있는가? 그럴 것 같지 않다. 두 가지 요인 때문이다. 하나는 대통령의 불통과 무능, 다른 하나는 국힘 당원의 무기력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완성형’이다. 이념, 성격, 언어, 취미, 지성, 능력, 그 무엇도 변화 또는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 그는 견해가 다른 사람의 말을 일절 듣지 않는다. 대통령직을 수행하면서 무엇인가 배우려는 의지가 없다. 선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선한 척을 할 생각도 하지 않는다. 민심의 요구를 받드는 시늉,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연기조차 제대로 하지 못한다. 여론 지형이 60:35보다 좋아질 가능성은 거의 없는 반면 더 나빠질 가능성은 농후하다. 스윙 보터의 민주당 지지율이 더 올라가고 국힘 고정 지지층의 투표율이 상대적으로 낮아지면 국힘은 내년 총선에서 2020년보다 더 참혹한 패배를 당할지도 모른다.
국힘 당원의 무기력은 대통령의 무능과 독선보다 근본적인 문제다. 당원이 무기력하면 정당은 실패를 딛고 재기하는 데 필요한 ‘회복 탄력성’을 잃는다. 최근 상황을 보면서 국힘 당원들은 자주성을 거의 완전히 상실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윤석열 대통령은 당원이 뽑은 이준석 대표를 말이 되지 않는 이유를 들어 징계해 대표직을 박탈했다. 그런데도 당원들은 항의하지 않았다. 대통령실 관계자들이 경선에 개입해 당원이 압도적으로 지지한 나경원 의원을 주저앉히고 안철수 의원을 공개적으로 협박했다. 김기현 의원은 대통령이 자신을 당대표로 낙점했다는 사실을 감추지 않았다. 그런데도 당원들은 압도적인 표를 주어 그를 당대표로 뽑았다. 김기현 지도부는 당원의 대표라기보다는 대통령실의 여의도 출장소장에 가깝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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