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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힘’의 미래(3)

김기현 지도부는 강서구 보궐선거에 집중할 뜻이 없었고 후보 공천을 포기하는 방안도 검토했다. 그런데 윤석열 대통령이 대법원 판결문의 잉크 냄새도 가시기 전에 공무상 기밀 누설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고 강서구청장 직을 상실했던 김태우 씨를 특별 사면했고 국힘 지도부는 경선 참여 자격을 주었다. 강서구 당원들은 대통령의 후광을 업은 김태우 씨를 후보로 선출해 그 자신의 유죄판결로 인해 치르게 된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 다시 내보냈다. 대통령과 국힘 지도부의 어리석은 결정에 당원도 동의한 셈이다. 
오늘의 국힘 당원제도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만들었다. 그는 한나라당 대표였던 2004-2006년 ‘기간당원제도’(현재 민주당의 권리당원제도)를 도입한 열린우리당과 정당 혁신 경쟁을 하면서 ‘책임당원’ 제도를 도입했다. 2007년 열린우리당이 대통합민주신당으로 바뀌면서 기간당원 제도를 완전 폐지했지만 한나라당은 여러 차례 당명을 바꾸면서도 책임당원 제도는 착실하게 발전시켰다. 그런데 윤석열 대통령이 그것을 사실상 해체해 버렸다.
당원은 민심을 당에 들여오는 통로다. 당원이 많을수록, 당원 구성이 지역‧소득‧직업‧연령 등 모든 면에서 국민 일반과 비슷할수록, 당원이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하고 당의 의사결정에 적극 참여할수록 정당의 결정은 민심과 가까워진다. 지금 국힘의 당원제도는 껍데기만 남았다. 당원들은 대통령이 시키는 대로 무엇이든 한다. 김기현 의원을 당대표로 뽑았고 김태우 씨를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후보로 뽑았다. 그래서 강서구 보선에 참패했다. 국힘 지지율은 지속 하락하는 중이다. 당원들은 일상의 생활공간에서 정치적으로 고립되었다. 임명 당직자만 교체한 소위 ‘김기현 체제 2기’로 총선을 치르겠다는 대통령과 국힘 지도부의 결정에 대해 국힘 당원들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국힘은 ‘회복 탄력성’을 잃은 채 너울과 파도가 일렁이는 민심의 바다를 항해하는 중이다. 운이 좋으면 침몰하지 않고 22대 국회에 안착하겠지만 운이 나쁘면 일부만 겨우 생존하게 될 것이다.
오보(의도하지 않은 허위보도)와 가짜뉴스(어떤 목적을 이루려고 일부러 만든 허위보도)가 많은 세상이라 믿기는 어렵지만, 언론 보도에 따르면 대통령실 수석과 비서관·행정관 등 ‘용산 낙하산’ 30여 명이 총선 출마를 위해 곧 사직서를 낼 것이라고 한다. 중앙부처 장차관과 공공기관 임원 등 윤석열 대통령이 공직 경력을 달아준 인사들을 모두 더해 ‘윤석열 낙하산’이라고 하자. 그들 중에는 전직 검사가 아주 많다. 총선 후보 공천이 김기현 당대표와 김태우 보선 후보 선출과 비슷한 경로를 밟는다고 가정하자. 그러면 이런 시나리오를 그려볼 수 있다.
지난 총선 국힘 강세지역은 영남 전역과 강원·충청의 농촌지역, 영남 출신과 부유층이 많은 서울 강남 3구, 경기도의 농촌지역 등이었다. 현역 의원 지역구는 대부분 이런 곳에 있다. 그들에게는 본선보다 공천이 중요하다. 그래서 윤석열 대통령이 당지지율을 떨어뜨리고 선거를 어렵게 만드는 언행을 해도 절대 비판하지 않는다. 그들은 당원들이 자신을 지켜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안다. ‘윤석열 낙하산’한테 지역구를 빼앗기지 않으려면 충성심을 의심받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당이 망해도 자신은 살아남아야 한다고 믿는다. 결국 윤석열 대통령은 김기현 지도부를 통해 공천에 대한 자신의 방침을 관철할 수 있을 것이다. 목표는 집권 후반기 대통령을 옹위하고 퇴임 후에도 지켜줄 충성파를 최대한 영남과 비영남 강세지역에 투입하는 것이다.
영남과 비영남 강세지역 중진들 중에는 하태경 의원처럼 ‘자진납세’를 선택하는 이가 더 나올 것이다. 지역구를 지키지는 못해도 명분을 세움으로써 수도권의 민주당 현역 지역구 가운데 그나마 해볼 만한 곳을 받기 위함이다. 부당하게 지역구를 빼앗긴 이들 중에는 무소속 출마를 감행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유승민과 이준석 등 ‘비윤 반윤 수괴’들은 공천 배제가 확실해지면 신당을 만들 준비를 하고 있다. 시일이 촉박하면 ‘비윤 반윤 보수 무소속 연대’로 총선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 그럴 경우 영남에서는 보수의 내전이 벌어지고 PK와 비영남의 일부 국힘 강세지역은 표 분산으로 인해 민주당이 접전을 펼칠 가능성이 있다.
결국 ‘윤석열 낙하산’은 국힘이 참패를 당하는 가운데 영남에서만 성공할 것이다. 교섭단체를 이룰 만큼 당선자가 나올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들은 윤석열 대통령을 옹위하고 퇴임 후를 지켜주는 데 앞장설까? 천만의 말씀이다. 영남 민심은 노태우를 뽑았고 노태우를 버렸다. 김영삼을 뽑았고 김영삼을 버렸다. 이명박을 뽑았고 이명박을 버렸다. 완전히 버리지 않은 정치인은 박근혜 하나뿐이다. 윤석열이 영남에서 박정희나 박근혜같은 존재가 될 수 있는가? 그런 꿈은 아예 꾸지 않는 게 좋다. 영남 민심은 결국 윤석열을 버릴 것이다. 그러면 국회의원 배지를 단 ‘윤석열 낙하산’들도 그를 버릴 것이다. ‘윤석열 사단’은 이념의 동지가 아니며 의리로 뭉친 패거리에도 미치지 못하는 집단이다. 저마다의 사익(私益)을 도모하려고 손잡은 일시적 ‘정치 카르텔’에 지나지 않는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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